경제난에도 대학 사은회 ‘호화호식’

‘백수’ 학생들 큰 부담… 본래 의미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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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영진(box51)등록 2014.11.21 09:53
신입생으로 캠퍼스에 들어선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대학생활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20대를 관통하면서 지난 4년을 돌아보면, 미완성된 청춘을 성숙의 길로 이끌어 준 교수님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4학년들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인 사은회를 마련, 대학 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한다. 마지막으로 교수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고가의 회비 모금으로, 사은회가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방 모 대학 졸업반인 손아무개씨(남, 25)는 지난 주말 내내 막노동을 했다. 사은회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손씨는 이틀간 건설 현장에서 삽질을 하고 받은 돈 대부분을 학과 대표에게 송금했다. 그는 "교수님들께 감사를 표하는 자리의 돈이라 어쩔 수 없이 냈지만, 모금액이 많이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졸업반 박아무개씨(여, 23)는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여의치 않아 집에 손을 벌렸다. 돈의 용도를 묻는 어머니에게는 학원비로 둘러댔다. 하루 모임에 쓰일 돈이라고 하면 꾸중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박씨는 "왜 자신이 거짓말까지 해 가며 돈을 마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교수님께 감사하자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야 되겠느냐"고 토로했다.

이 학교 A학과의 경우 사은회 비용으로 걷는 돈은 한 사람당 15만 원. 수년 전 10만 원이었던 것이 재작년부터 5만 원 더 올랐다. 돈의 쓰임은 크게 식대와 교수 예닐곱 명의 선물 비용이다.사은회는 주로 졸업 시험을 치른 날 저녁, 시내 고급 음식점에서 뒤풀이 식으로 이뤄진다. 많은 학생이 거의 와본 적 없는 화려한 분위기와 비싼 음식이 수놓아진 곳이다.

하지만 사은회 장소는 학생들의 마음보단 교수들에게 맞춰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과대표 김아무개씨는 "처음엔 비용 절감 차원에서 단출한 곳에서 (사은회를) 열 것을 교수님께 전했더니 난색을 표하셨다"면서 "어쩔 수 없이 유명 음식점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아무리 의미가 큰 행사라 해도 호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요즘 같은 경제난을 외면하는 처사"라며 "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는 사은회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그간의 노고를 치하 받으며 음주가무를 즐긴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교수들에 대한 선물 증정식이 이어진다. 선물 역시 학생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선물을 받아든 교수들은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학과 부대표 양아무개씨는 선물을 고르는 과정에서 학과 대표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최소한의 성의를 표하자고 주장한 자신과, 값이 나가는 것을 고르는 학과 대표와 의견이 부닥친 것이다.

양씨는 "선배의 조언을 구한 끝에 결국 비싼 것으로 구입했다"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닌, 교수님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선물을 산 것 같아 찜찜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관행 아닌 관행을 거친 선배들은 매번 학생들의 부담으로 다가오는 사은회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걱정한다.

3년 전 사은회에 참석했던 졸업생 이아무개씨는 "경기는 날로 어렵고, 졸업반 학생 대다수가 취업을 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현실에 사치스럽고 허례허식적인 사은회를 왜 여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학생들이 고가의 회비를 모아 행사를 여는 것을 알텐데 함구하는 교수님들이 섭섭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졸업생 류아무개씨는 "진정한 감사의 마음 이전에 돈 걱정부터 해야 하는 '물질 만능 사은회'는 없어져야 한다"면서 "학생들이 나서서 이러한 관행을 깨지 않으면 앞으로도 개운하지 못한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사은회비를 벌기 위해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했다는 후배. 4년간 짊어진 짐을 벗자마자 무거운 벽돌을 둘러 멘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3년 전 내 모습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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