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더러 바르게 살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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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jeiege7)등록 2014.11.10 15:35

어느 공원에 서 있는 바윗돌 ⓒ 송준호


'찬 비 맞으며 눈물만 흘리고 하얀 눈 맞으며 아픔만 달래는 바윗돌….'

정오차의 <바윗돌>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바윗돌>은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1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들어보면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이라는 대목이 반복해서 나온다. 가수 정오차가 쉬지 말고 구르라고 목청을 높였던 '바윗돌'이 당시 '높은 사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 노래는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런 세상이 다 있었는지 모르겠다.  

돌은 단단한 광물질 덩어리다. 저 유명한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심순애가 김중배에게 받았다는 다이아몬드도 따지고 보면 돌의 일종에 불과하다. 그 다이아몬드를 빼면 주변에 돌만큼 흔한 것도 없지 싶다.

돌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맨손으로 쉽게 집어 들거나 던질 수 있는 크기면 그냥 '돌'이라고 부른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이 소녀를 향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화풀이하듯 시냇물 속으로 집어던진 건 '조약돌'이다. 최루탄을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진압경찰을 향해 손수건 마스크를 두른 시위대에서 던졌던 돌에는 '짱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적이 뒤떨어지는 어린 학생을 '돌대가리'라고 불렀던 선생님들도 과거에는 흔했다.    

<소나기>에서 소년이 소녀를 기다렸던 돌다리나, 충북 진천의 명물인 '농다리'처럼 냇물을 건너는 다리가 되기도 하는 게 돌이다. 냇물 속의 돌과 돌 사이는 또 물고기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수천 킬로를 헤엄쳐 온 연어들도 그곳에 알을 낳는다.  

돌은 쓸모에 따라 인위적으로 깨트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잘게 부수어서 마당에 깔기도 하고, 모래 대신 쓰기도 한다. 잘게 부순 아스콘으로는 도로를 포장한다. 제법 큰 돌은 축대를 쌓는데 쓰인다. 납작하게 연마해서 건물의 외벽도 장식한다. 대리석 같은 고급 돌은 주택의 각종 내장재가 된다. 최근에는 맥반석이니 옥돌이니 하는 걸로 침대까지 만든다.

공들여 연마해서 불탑과 같은 갖가지 예술품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이는 게 돌이다. 이때는 당연히 덩치가 큰 바윗돌을 쓰게 마련이다. '바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주홍 글씨>를 쓴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htorne)의 <큰바위 얼굴>이다. 가깝게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을 배웅했던 '부엉이 바위'가 있다.

그 성질이 차갑고 투박하긴 해도 생김새에 따라서는 적잖은 품격을 지닌 것이 또한 돌이다. 선이 부드러운 커다란 돌은 비석 같은 장식용으로 쓴다. 거기에 지명이나 단체나 기관의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 회사나 학교 같은 데서는 사훈(社訓)이나 교훈(校訓) 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는 문구를 새겨 넣기도 한다. 그림과 같이 공공장소에 세워서 특별한 뜻을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커다란 돌에 뜻을 새겨서 품격을 높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그림 속의 돌도 원래 그곳에 그런 모습으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받침돌까지 있는 걸 보면 문구를 새긴 뒤 그곳으로 옮겨왔을 게 분명하다.

거기에 '바르게 살자'라고 적혀 있다. '바르게'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비뚤어지거나 굽은 데가 없이 곧거나 반듯하게'라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삐딱하지 않게'가 '바르게'인 것이다. '바르게 살자'는 '삐딱하지 않게 살자'는 뜻일 게다. '진실'한 마음을 갖고 '질서'를 잘 지켜서 모두모두 '화합'하며 살아가자는 말까지 그 아래 또박또박 덧붙여 놓았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세상에 바르지 않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이런 것까지 돌에 새겨 넣었을까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런데 거기 적힌 '바르게 살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몇 가지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말을 웬만큼 구사할 줄 아는 어느 외국인이 그 부근을 지나다가 돌에 새겨진 말을 발견하면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아,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바르게 살지 않으면 이런 말을 이렇게 써 놓았을까. 하긴 일리가 없지는 않아….' 바르지 못한 사업주로부터 부당하게 혹사를 당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이라면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맞아. 우리는 누구나 바르게 살아야 해.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여기서 이 말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했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지 뭐야. 얘들아, 너희들도 이리 와서 여기에 적힌 것 좀 읽어 봐라. … 어때? 참 좋은 말이지? 앞으로는 엄마하고 아빠도 바르게 살아가도록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너희들도 이걸 꼭 실천해야 한다, 알겠지?" 이렇게 깨닫거나 말할 사람은 또 과연 몇이나 될까.

잘 가꾸어진 공원 한쪽에 이런 큼직한 돌을 세우고 거기에 '바르게 살자'고 적어 넣어서 이 땅의 수많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된 의식과 생활방식을 뜯어고치고 싶어하는 이들은 또 과연 얼마나 바르게 살아가고 있을까 싶다. 문득 오래 전에 어느 드라마를 통해서 유행했던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너나 잘 하세요"라고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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