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내놓고 군대가는 놈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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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철(shinbcl)등록 2014.10.17 15:33
 지혁이는 내 친구 아들이다. 얼마 전에 군대갔다. 해병대를 가야한다고 체력 단련까지 하고는 흔쾌히 군대갔다.

지혁이가 군대가면서 통장을 내 놓았단다. 여름 내내 땡볕에 일해서 모은 돈이 무려 500백만원 쯤 들어 있더란다. "엄마 이 돈 맘대로 써라"라고 말했단다. 참으로 희안한 아들이다. 군대 가면서 통장 내놓고 가는 놈 봤나?

내 친구는 딸이 둘, 아들이 하나인데, 연년생이라 모두가 대학생이다. 애들의 부모 둘은 학비 대느라 엄청 고생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 고생하는 걸 이 딸, 아들이 잘 알고 있다. 사립대학 좋은 대학을 모두 포기하고 딸들은 등록금이 제일 싼 교원대학교, 국립대학교에 들어갔고, 공부가 오지게 싫은 아들은 고향의 사립대학에 들어갔다.

한 학기 대학다니다가 아들 지혁이가 군대 것이다. 셋이 모두 대학 재학하기에는 너무 빠뜻함을 알고 군대 지원해서 간 것이다.

딸들은 기회만 있으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번다. 절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모가 필요한 경비를 보내주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들은 짠돌이가 되었다.

아들 지혁이는 체격이 좋다. 올 봄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졸업했다. 힘도 세다. 공부는 오지게 싫다면서 노동하는 것은 힘들어 하지 않는다. 해병대를 지원했다. 어릴 때부터 해병대가려고 작정했단다. 그 어머니는 모태해병대라며 아들을 놀린다.

이번 여름 내내 뙤약볕 농사장, 공사장에서 보냈다. 한푼 두푼 모았다. 노동력을 인정받아 하루 일당이 10만원 안팍이란다. 그래도 500만원을 모으려면 일학기 기말고사 치고 난 뒤로 거의 매일 노동하러 갔다는 셈이 된다. 요즘 으례히 군대가면 질탕 술 한잔 마시고 이상한 짓도 하고 그러는데, 이 아들은 오로지 돈만 모았나 보다.  그리고는 군대가는 날, 자식들 키우느라 학비대느라 어렵게 살아가는 부모님에게 불쑥 통장을 내놓았단다.

평소 딸과 아들들이 부모 대하는 걸 보고는 우째 요즘 세상에 저런 자식들이 다 있나 라며 감탄했는데, 이건 그것의 결정판 같다. 난 친구 가정을 보면서 참으로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맞다. 잘 산다는 게 뭔데.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을 성심성의껏 배려해주는 게 최고로 잘사는 거지.

부럽다. 가진 것 별로 없지만, 이것보다 더 큰 것 가진 사람도 드물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는 나는 자식들을 그렇게 살아가게 못했다. 나보다 훨씬 자식들을 잘 가르친 내 친구가 부럽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자식들을 위해서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그건 고생이 아닐 것이다. 어울려 술판이 벌어졌을 때 남들보다 더 많은 술값을 흔쾌히 내지 못해도 내 친구는 누구보다도 부자다.

"엄마, 이 통장 돈 맘대로 써라" 군대 가면서 엄마에게 통장 건네주는 아들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나까지도 덩달아 행복해지고 있다. 난 통장 건네고 군대가는 아들을 둔 사람의 친구니까.

부디 해병대 잘 근무하고 무사히 귀향하기를 바란다. 그 날은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와 술 한잔 거나하게 사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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