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물음’ 은 실은 ‘우리 삶’ 에 대한 물음

[책 읽어 주는 여자 7] 피하지 않고 죽음을 마주하였을 때 <만남, 죽음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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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lightand)등록 2014.09.10 16:13

▲ 만남, 죽음과의 만남 ⓒ 궁리 ⓒ 정진홍

정진홍 저자가 집필한 <만남, 죽음과의 만남> 에서 "우리 삶은 홀로 사는 것이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의' 죽음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어떠한' 죽음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죽음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죽음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라는 글을 읽으면서 얼마 전 일어난 사건이 단순히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닌 사회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3일 새벽, 빗길에 미끄러져 교통사고로 가수 '레이디스코드'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사고 당일 '레이디스코드' 멤버 은비가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권리세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권리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건 mbc '위대한 탄생' 이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본인이라는 발음의 핸디캡을 안고도 한국에서의 가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현실가능성과 권리세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땀방울이 전파를 통해 공유되었기에 죽음의 책임 또한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자 실시간 기사가 올라오면 관심을 갖고 애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조우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가족이기에 사별이 남기는 얼룩들로 인해 더 아파하고 싶지 않아서 인지 아직도 우리집에는 아버지가 사용하던 유품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말기 때 암을 발견하여 1년 전부터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집에 가면 정적이 흘렀다. 처음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농담도 해보았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당시 슬픔을 슬퍼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아픔을 아파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슬픈 아픔이기에 마음껏 슬퍼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난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랬었는지 그 자연스러운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 때는 고등학생으로 깜깜한 밤, 별을 보는 천문학 동아리에 들어갔다. 과학책에서만 보아왔던 행성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라는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는 텅 빈 집에 들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거 같다.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서 계모 왕비가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독이 든 사과를 먹여 깊은 잠에 빠뜨리지만 왕자가 나타나 공주를 살리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는 성안에 잠들어 있는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받아 100년간의 잠에서 깨어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자랐기에 '죽음' 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거 같다.

▲ 플라이 피쉬 ⓒ 모터보트에 로프로 연결한 가오리 모양의 고무보트에 매달려서 타는 수상 스포츠 ⓒ SBS


옆 사람 혹은 공인의 죽음 말고 나 스스로 '죽음' 을 느낀 건 2012년 여름 북한강 물놀이였다. 여러 명이 함께 '플라이 피쉬' 를 탔는데 앞쪽에서 운전하던 아저씨가 고의로 물에 빠뜨렸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쉽게 물에서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계속 물에 가라앉는 느낌이었으나 눈을 감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내가 살던 세상을 보고 싶었나 보다. 그러다 붕 하고 몸이 떠오르는 걸 느끼면서 비로소 "난 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수면 위로 올라오니 나도 모르게 떨어지면서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나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안정을 되찾고 나서는 "그 당시 왜 그렇게 진지 했나." 라며 피식 하고 웃었다. 죽음은 삶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있는 현실이기에 죽음을 '삶의 현실' 이라고 말할 수 있을수도...

분명이 사람은 나처럼 '죽고 싶지 않음' 만이 아니라 '죽고 싶음' 도 지니고 있어 자살이라는 의도된 죽음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현재 삶에 대한 불만족일 것이다.

우리의 죽음 물음은 실은 우리 삶에 대한 물음이다. 죽음에 대하여 물으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묻고 싶었던 것은 삶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삶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묻고 싶었던 것이다. 삶의 삶다움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죽임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지만 사실 그 물음 속에 스며 있는 것은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아울러 도대체 왜 죽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그 속에는 깃들여 있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역시나 현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연예인의 교통사고에 대해 한 친구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우리 지금 현실에 충실하게 살자." 사실 우리나라는 나를 포함하여 미래를 더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친구가 나에게 조언해 준 것 같다. 몇 년 동안 돈을 모아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 10년 만기 장기 저축, 사망 후 남은 가족들 앞으로 보험금 지급 등.

위와 같은 상품이 존재 하고 인기를 끄는 것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명언처럼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이런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저자 정진홍은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 삶을 초조해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삶을 감사하는 사람은 죽음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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