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반가운 심장 뛰는 소리

유산 경험 있는 그녀의 임신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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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organ)등록 2014.04.30 18:37
"샘! 조마조마했는데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어요!"
"우와! 대박이다 축하해!"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2주 전에 첫 번째 검진에서 의사가 아기집은 보이는데 집만 보일뿐 다른 사람들에게서 다 보이는 난황이 보이지 않는다고 어쩌면 좋으냐고 울먹거렸던 그녀였다. 나는 운전도 하지 말고 기도하고 절대 안정하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도닥거렸다.

30이 넘은 그녀의 나이를 밝힐 수는 없지만 그녀는 연하남과 오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무척 인상깊었던 것은 그녀에게 바치는 편지를 신랑이 낭독했는데 처음 몇 분간은 무척 감동이라고 느꼈지만, 편지가 5분이상 길어지고 10분 가까이 되어버리니깐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쳐다보면서 '아이구 길다' 하는 눈치를 주고 받았다. 신부였던 그녀도 '어쩌면 이렇게 결혼식을 하면서 바쁜데 언제 저런 것을 자상하게 준비했을까?' 하고 무척 기특하고 뿌듯해서 눈물이 그렁 그렁 맺힐려고 하였다. 그러나 처음 만났던 심정에서 연애이야기와 앞으로의 희망까지 담은 내용의 편지가 길어지니깐 자기도 모르게 하객들에게 미안한 느낌도 들고 '이제 그만 했으면...' 싶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진정성이 담긴 편지를 읽고 마지막에 자기와 결혼해주어서 고맙다고 마무리를 한 시랑은 편지를 읽고 갑자기 "만세! 만세! 만세!" 하고 아주 크게 만세삼창을 했다. 하객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지루하게 느껴졌던 몇 배보다 더 큰 느낌으로 청량하게 웃었다.

그 후 일 년 그녀는 아이가 생기기 않는다고 시댁에서 기다리는데 하고 약간은 초조해 하였다. 몸매가 한 없이 가냘픈 그녀라서 은근히 나이가 신경쓰이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나는 친구의 자녀들, 또는 후배들, 직장동료들의 참 많은 결혼식에 참가했지만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 결혼식은 그녀의 결혼식이었다. 편지와 만세삼창 덕분에.

어느 날 그녀가 "샘! 저 임신했어요! 축하해 주세요!" 하고 해밝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나 또한 "와우! 축하해!" 하고 말했지만 곧 그녀의 임신이 이제 갓 2달이고 3달이 되지 않은 때라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왜냐면 아이를 낳기도 하고 유산도 경험한 나 인지라 안정기에 접어들기까지는 소증한 씨앗일 수록 은밀하게 잘 품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그녀의 울음소리가 내게 전해져왔다. 그리고 한 동안 만날 수 없었다.
임신했다고 해서 특별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평소와 같이 봉고차도 운전하고, 요양보호사가 하지 않는 일도 도맡아 하다 보니 복통과 함께 유산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의 슬픔에 젖은 눈에는 별이 반짝이었다. "다음에 두 사람 몫을 할 인물이 나올려고 그러나봐..!" 하고 위로하고 희망을 다시 가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한동안 요양을 하고 다시 씩씩하게 일을 하였다. 다시 만난 그녀에게 나는 만약 다음에 또 임신을 하면 안정기에 접어들기까지는 은밀해야 하는 게 좋다고...아기를 낳았어도 삼칠일까지는 외간사람 접하지 않고 백일이 되어야 비로소 일가친척 축하를 받고, 돐이 되어야 잔치를 하는 그러한 옛 풍습도 일리가 있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허약하기 그지 없었던 내가 아이를 쑥 쑥 잘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친정엄마가 해마다 해준 염소와 몸을 데우는 한약덕분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염소이야기를 했더니 그녀가 말했다.

"샘! 나도 애기 잘 배라고 울 엄니가 시골에서 새끼염소를 봐놓고 선금을 주었는데 지난 번 홍수에 그 염소새끼가 둥둥 떠내려가 버렸어요!"
"에이그..아까운 염소! 왜 하필 그때 떠내려가버렸을꼬?"
그녀는 친정엄마에게 말해  염소대신 한약을 먹고 매일 108배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어느 날 그녀가 혼자서 테스트를 해보니 임신인 것 같은데 기쁨보다 겁이 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번에는 3개월이 지나기 까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자구...엄니와 신랑과 혈육빼고..그리고 절대 운전도 하지 말고..하반신은 따스하게 하고 다리는 자주 올리고..."  남남이지만  당부를 하는 내 마음은 친정동생에게  또는 내 큰 딸에게 하는 그런 정마음이었다.

그렇게 함구해서 어제 병원에 가서 아이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온 그녀는 너무 기뻐했다.
나도 덩달아 기뻐서 입이 절로 절로 헤죽헤죽 벌어진다. 그녀가 얼마전 유산했던 적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은  "신랑이 연하라서 애기가 잘 들었나 보아요" 고 농담도 한다. 그런 농담에 " 뿌리는 씨가 중요하지만 밭이 기름지고 좋아야지..밭에 정성을 잘 준 덕분이지요..".하고 나도 웃으며 받아쳤다.

아들이든 딸이든 그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잘 나오기만 하면 더 원이 없다는 그녀이다. 모락모락 빵을 잘 굽는 소녀에서 사랑을 하는 여자에서 결혼을 한 여인이 되었다가 이제 엄마의 길로 접어든 그녀이다.

엄마의 길이 이렇게 임신한 아이의 심장뛰는 소리에도 무척 감격스럽지만 앞으로 창자가 끊어지는 일도 겪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그녀는 걸어가면서 알게 될 것이다. 그저 지금은 그녀가 마음껏 기뻐하고 그 기쁨이 아기에게 잘 전해지고 아이가 무탈하게 뱃속에서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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