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싱크홀 위에 서다.

창조경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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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창(ryudesign)등록 2014.03.27 10:17

인간의 활동 창조가 발생하는 영역 ⓒ 류한창


인간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A)과 그 외의 일(B)이다. B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대게 '돈'을 위한 일이다. A영역 역시 순수하지 않다. A영역은 다시 두 개의 영역, 즉 자본으로부터 연유된 의지의 영역(C)과 자기존재로부터 연유된 의지(D)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C영역을 지배하는 보편적 가치는 '돈'이다. 우리 부모님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될 것이다. 뉴타운이나 4대강이 바로 이 영역에서 성장한 이들이 이루어낸 '창조'이다. 반면에 세월을 견딜 수 있는 콘텐츠의 '창조'는 D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를 핵심가치로 내세우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꿈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는 있는 B영역에 속한 이들이 D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바로 복지(주거, 의료, 교육 등)의 문제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만 지킬 수 있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창조의 영역(D)으로 뛰어들 것이다. 사실 국가의 존재 근거가 여기에 있다. 개인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국방, 의료, 치안, 교통, 에너지 등)를 공공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둘째, 피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C영역에 속한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는 삶의 영역인 D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교육의 문제이다. 타자(자본 권력)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어야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따라서 인간과 세계를 비판적으로 관조할 줄 아는 능력, 곧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것은 일정 부분 교육에 의해 키워질 수 있다.

즉, 창조의 바탕은 복지와 교육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부는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포기한다며 국가는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결국 창조의 영역(D)으로 뛰어들어야 할 수많은 청춘들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통계는 우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교육은 어떠한가? 중,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대학 도서관마저 영어교재에 점령당해 버렸다. 철학, 예술, 문학 교육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는데 꼭 필요한 내면적 힘을 거세하고 있다.

정부는 싱크홀 위에 '창조경제'라는 빌딩을 세우려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모순은 '창조경제'라는 단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용어는 창조의 목적이 '돈'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창조의 공간인 D영역은 돈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이 머무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인간'이라는 가치에 집중하는 이들이 거하는 곳이다.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것은 부차적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책임은 천박한 정부에게 있고 우리는 피해자일 뿐인가?

대한민국에서 '잘 산다.'라는 말은 '돈이 많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잘 산다.'는 말은 삶에 대한 가치 평가이지 '돈'과는 무관한 말이다. '돈이 많음'을 표현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 바로 '부자'이다. 이렇듯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이것이 가장 무서운 말이다.) 돈으로 삶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살펴봐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창조적인 국가이길 바란다면 정부는 먼저 인간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정체 모를 단어를 써가며 강조하지 않더라도 창조적인 국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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