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평등 그 실체를 말하다

보이지 않는 장벽, 사회 구조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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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환(lute1004)등록 2014.03.08 17:42
언젠가부터 유력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그리고 일반 교육계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말이 남녀 평등이 된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고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을 느끼고 있을까? 

여성은 지난 세기 동안 여성이 억압의 대상으로 살아오면서 남성의 권위가 여성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며 현재 그것을 정상화 하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페미니스트 혹은 여성 운동가라 부르면서 남성과의 전쟁에 최전선에 서 있는 여장군 처럼 여긴다.

반면에 남성들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를 두고 봤을 때) 남성의 권위는 이미 무너졌으며 생물학적인 차이에 기반한 불평등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권위가 신장 되었다고 여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여성의 권위가 더 높아 졌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찍이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공통질문이었던 가부장과 모계 사회는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인간 사회 구성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모계 사회가 씨족과 인류학상 반드시 거치는 사회 구성이라고 보는 반면 일부 학자들은 모계 사회를 진정한 의미의 사회 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모계 또는 혈연 집단들의 동거 집단을 사회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양측은 서로 불평등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먼저 사회학 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모든 이론들을 무시한체 이들이 강조하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해 보자. 특히 대다수의 사회학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개념중의 하나인 보이지 않는 손은 단순히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잘 정돈된, 그리고 스스로 개선이 가능한 경제 구조를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익명이 보장된 무언가의 힘을 강조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문에 우리는 자본이라는 거대한 사회 구성 단위를 개인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 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유무는 사회학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판단 기준이 되는데 자본이 있는 자를 부르주아 혹은 유산자로 구분하고, 없는 사람들을 무산자 또는 프롤레타리아 라고 부른다.

여기서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사회주의 이론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용어는 사회주의 용어이나 이는 일반적인 사회학 이론에서 사용되는 용어일뿐, 사회주의를 옹호하거나 호도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개념을 차용했을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앞서 밝힌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을 움직여 무산자 계급들의 유일한 경제 도구인 노동력을 요구하게 된다. 반대로 무산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노동력을 통해 유산자 계급으로의 상승을 꿈꾸게 된다.

이러한 시대가 바로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전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유산자와 무산자의 단순한 이분법이 통하며, 자본을 통한 시장의 운용이 가능했던 시기, 어쩌면 보이지 않는 손이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분화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분화를 요구하게 되어있다. 이때문에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계층은 더욱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효율성이다.

효율성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으로 초기에 이를 위한 산업은 대량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포드의 분업화는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획기적인 변화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고 넘어가야하는 계층이 바로 "장인" 들이다. 이들은 산업 혁명이 몰고온 사회 분화에서 가장 애매모호한 계층으로 유산자, 또는 무산자도 아닌 계층이었다. 실질적으로 세련된 기술을 보유한 이들은 숙련된 기술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대량생산이라는 산업 변화에 도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산자의 가장 끝에 존재하던 이들은 자신들의 자본인 기술을 잃어 버리면서 반대로 무산자 계급의 가장 우두머리인 공장에서 숙련공의 지위를 얻게 된다.

바로 이 시기가 중산층의 분화가 시작되는 시기로, 숙련공들은 스스로 유산자 계급이었던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무산자와의 계급차이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로서 우리는 중산층과 함께 서민 혹은 하층민을 만들어 내게 된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중산층의 붕괴를 말하면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남녀의 임금 격차이다. 임금은 앞서 밝힌 무산자 계급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댓가로 얻게 되는 일종의 자본인데 이는 항상 유산자들 보다 적게 보유하게 되어 있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이를 자본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바로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반대되는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현대 사회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대변되는 유리벽이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차단하고 있는데 이는 다분히 남성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낸 장벽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고 있는 평등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즉, 현대 사회는 여성이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을 여성을 위한 서비스로 규정하고 혜택을 배풀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임금과 여타 차별은 정당한 것이라고 암묵적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 반대로 남성에게는 이미 50% 가까운 노동력이 여성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낮은 임금과 낮은 수준의 복지는 당연하며 이는 평등을 위한 최소한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불평등으로 몰고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를 규정할 때 포스트 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이는 정리 되지 않은 혹은 후기 라는 뜻으로 아직까지는 미완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더 정확히 보자면 이는 정리 되지 못한 사회가 아니라 이미 포스트 라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앞서 말한 자본가 혹은 유산자들은 자신들의 자본, 그리고 계급을 지키기 위해 무산자들보다 많은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이때문에 효율이 강조되고 있는 것인데 현대 사회는 효율을 무산자들에게 배분되어야 할 부의 분배를 막아 자본가들에게 제공하면서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 구조적인 효율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바로 이때문에 "포스트"라는 개념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불평등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일까?

남녀 평등과 관련해 좀더 진지하게 접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가해자 피해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회가 그리고 자본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지배하는 사회의 효율성의 대상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때문에 우리 모두 피해자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서로 다른 기능을 하도록 주어진 생물학적인 차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남녀는 평등 할 수 없다. 서로 반드시 달라야 하며 다르다는 것은 차별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한다. 이때문에 평등이라는 개념은 보이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낸 허구이며 이를 통해 서로를 적대시 하게 만드는 아편과도 같은 것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남녀 평등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적어 보았습니다.
일부 사회이론과 용어를 차용 했습니다만, 특정 사회이론을 염두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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