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휠체어맨’? 유전무죄·무전유죄의 부활

재벌엔 특히 관대한 검찰과 법원..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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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회(miraeyeon)등록 2014.02.25 16:33
김인회/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큰 사건 뒤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자, 누구인가

최근 정말 큰 사건들이 많았다. 굵직굵직한 사건만 해도 한 두 개가 아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국정원 정치・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수사 은폐・축소 사건 1심 무죄판결,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았다가 23년만에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강기훈 재심 무죄판결, 부산의 민주화운동 사건인 부림사건 재심 무죄판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1심 유죄 판결, 이에 더하여 서울시 공무원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 대한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조작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나같이 모두 한국 사회를 바꿀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사건들이다. 야당은 국정원・국가기관의 대선개입 특별검사제 도입을 넘어 서울시 공무원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증거조작에 대한 특검까지 주장하고 있다. 강기훈・부림사건 재심 무죄판결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무죄판결을 받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 과거사 정리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은 반대 정파에 대한 탄압, 민주주의의 위기, 다양성의 말살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모두 극렬한 대립과 분열, 투쟁을 불러올 만한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진정으로 웃고 있는 자는 누구일까? 검찰의 공안부? 안보정치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 비서실? 새누리당? 역사는 항상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 역시 이번에도 웃는 자는 재벌회장님들이시다.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과 LG그룹의 구자원 회장이 최근의 혼란상황의 진정한 승자들이다.

노동자는 때려잡고 재벌은 봐주고.. '경제발전 공로'의 불평등

지난 2월 11일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과 LG그룹의 구자원 회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두 사람은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되었으나 제1심에서 법정구속 되었다. 범죄에 비하여 형이 무거웠던 것은 아니다. 사실 양형기준에 의하여 가장 가벼운 형을 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구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범죄는 무거운 것이었다.

계열사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포탈, 계열사 소유회사 주식저가매각, 대출금 횡령,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제출 누락 등이 김승연 회장의 범죄사실이다. LG그룹의 구자원 회장의 범죄사실은 경영권 유지를 위해 2천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을 발행한 것이다. 주주와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미친 죄질이 나쁜 기업범죄였다. 그래서 1심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횡령, 배임죄에 관해 정한 양형기준을 적용해 권고형 범위를 철저히 준수"하여 김승연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이들은 고등법원에서 석방되었다.

석방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가관인 것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건강상의 이유'이다.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는 참 가소롭게 보인다. 평생을 기술자로 살아온 노동자가 체포, 구속되었을 때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석방된 예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한국 경제발전에 재벌이 기여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재벌만 기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왜 여기에서 항상 배제되는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으면서 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구조조정된 노동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섰을 때 검찰과 법원은 이들을 가차 없이 처벌한다. 이들 노동자들이 우리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하면서도 법정에서는 경제발전 공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경제발전 공로도 불평등한 것이다.

재벌회장님들도 경제발전의 공로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부와 권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으로 보상은 충분하다. 법률상의 더 이상의 특혜는 용납할 수 없다. 재벌회장이라고 매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석방하면 우리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특권계급, 귀족계급을 만드는 것이 된다. 귀족은 원래 평민과 다른 법률이 적용된다.

멀쩡하던 회장님이'건강 악화'.. 건강 안좋으면 경영복귀도 말아야

건강상의 이유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해외출장까지 다닐 정도로 건강하던 회장님들이 왜 수사와 재판이 시작되기만 하면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는 이유를. 수사와 재판, 구속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므로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수사와 재판, 구속을 당하는데 왜 유독 재벌회장, 사장들만 거의 죽을 정도로 아픈걸까?

익숙한 풍경은 재벌회장들이 휠체어에 앉아서 법정에 나가는 모습이다. 회장의 영어명칭은 체어맨(Chairman), 정확하게는 체어퍼슨(Chairperson)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회장님들은 여기에 하나가 더 붙어야 한다. 의자가 휠체어(Wheel Chair)이므로 '휠체어맨', 또는 '휠체어퍼슨'이라 할 만하다. 우리의 재벌은 영어로 마땅한 번역이 없어 그냥 재벌(Chaebol)이라고 번역한다. 그렇다면 우리 재벌회장들은 휠체어맨이라고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수사와 재판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수형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석방되었으므로 경영에 복귀하면 안 될 것이다. 경영은 어렵고 또 스트레스도 엄청 받는다고 들었다. 재벌경영으로 건강이 악화되었으니 다시 경영에 복귀하면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들은 경영에 복귀한다. 한화와 LG그룹이 회장의 석방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한 것도 법원이 이들을 석방한 것도 이들을 경영에 복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법원에 인정한 이들의 건강상의 문제는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지 아닐까?

자본 앞에서 무너진 '법의 정의'..무전유죄・유전무죄 계속될 것

이번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LG그룹 구자원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석방은 이유모순의 판결이다. 심각한 기업범죄라는 것은 변함이 없고 이들의 건강상태도 의심스럽다.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부끄러운 이유일 뿐이다.

이번 재판은 다시 한번 자본 앞에 법률이 무력해지는 순간을 보여준 것이고, '무전유죄・유전무죄'의 법칙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판이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과 기업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는 자본과 기업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사회이다. 하지만 자본과 기업만 소중한 것은 아니다. 노동과 법률 역시 소중하다. 사회 유지를 위하여 법률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것은 정의이다. 이번 판결을 두고 과연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자본과 권력은 이미 법률을 손안에 넣고 강력한 지배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자들에게는 재판은 통과의례일 뿐이다. 솔직히 얘기해서 우리나라 재벌 회장들 중에서 법무부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법무부가 제공하는 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무전유죄・유전무죄는 자본과 권력, 법률의 카르텔이 유지되는 한 쭉 계속될  것이다.

재벌 회장에는 상고포기・강기훈씨에는 상고한 검찰의 슬픈 자화상

마지막으로 검찰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검찰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상고를 포기했다. 그런데 재심 무죄를 받은 강기훈씨에 대해서는 상고했다. 너무나 상반된 결정에 놀라울 뿐이다.

강기훈씨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미 2007년 무죄임을 확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과수는 유죄판결의 근거였던 국과수의 감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강기훈씨가 무죄라는 새로운 감정결과를 내놓았다.

재판은 이때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반발로 무죄판결을 받는데 6년 이상이 걸렸다. 게다가 이제 또 상고를 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현재의 정치와 법원 분위기로 강기훈씨 상고심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 억울함을 풀기위한 재심재판이 고통의 재심이 되어 버렸다. 한번이라도 강기훈씨의 억울함, 고통을 생각했다면 감히 상고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는 상고를 포기해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되었다. 자본에 관대한 검찰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 이 정도 되면 누구의 지시로 상고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하는 것임을 능히 알 수 있다. 자본과 권력을 위하여 봉사하다가 스스로 자본과 권력이 되어버린 검찰의 슬픈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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