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예언자 피트 시거 (Pete Seeger) 를 떠나보내며

반전평화와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영원한 청년가수 피트 피거를 추모

검토 완료

박기용(gideonpky)등록 2014.02.06 12:12
  좌파와 우파가 서로 갈라져 쉴 새 없이 싸우는 이 나라, '종북이다' 아니 '종미이다' 논란이 뜨거운 용암처럼 솟구치는 나라, 경상도와 전라도가 신라와 백제가 그랬던 것보다 더 물어뜯는 이 나라...이를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광야의 선지자가 있어 치유의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것은 아닐까?  "이 땅은 너의 땅, 이 땅은 나의 땅"

좌우이념갈등으로 생살이 찢겨져 나가는 현실을 보며 "This Land is Your Land", 이 노래를 불러 대중을 각성시키고 역사의 물꼬를 새로운 방향으로 트는데 기여한 미국의 가수, 민권운동가, 반전사상가, 피트 시거 (Pete Seeger) 가 95세 생일을 한 달 여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This Land is Your Land
이 땅은 너의 땅, 이 땅은 나의 땅
이 땅은 너와 나를 위한 땅.
위로는 끝없는 하늘 길, 아래로는 황금빛 계곡
이 땅은 너의 땅, 이 땅은 나의 땅.
나는 걷고 또 걸었네 발 길 닿는대로
이 아름다운 산하를.
나를 휘감는 소리 크게 울리네
이 땅은 너와 나를 위한 땅이라고.
햇볕이 빛날 때 나는 걸었네
밀밭이 물결치고 먼지 구름 올라가네.
안개 걷힐 때 한 목소리 들려 외치니,
이 땅은 너와 나를 위한 땅.
길을 걷다 나는 보았네, '통과금지'라는 팻말을
그러나 그 팻말 뒤에는 아무 말도 없네.
바로 그것이 너와 내가 가야할 길.
첨탑의 그늘 속에 가려진 굶주린 형제를 보았네
나는 거기 서서 묻고 있네
이 땅은 너와 나를 위한 땅인가?
자유의 고속도로를 걷는 나의 발걸음
누구도 막지 못하네
나를 뒤돌아서게 못하리 그 누구도
이 땅은 너와 나를 위한 땅.

피트 시거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우린 승리하리' (We Shall Overcome)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1950년 후반과 60년대 초반, 미국의 비폭력 흑인민권운동을 상징하는 주제곡과도 같은 노래이다.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곡조가 약간 구슬픈듯 하면서도 꺽이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노래하는 대중들을 강한 매력으로 각성시킨다. 원래 이 노래는 흑인 작곡가 찰스 틴들리가 1948년 가스펠 송의 형식으로 만들었으며, 1960 년을 전후로 해서 피트 시거, 조안 배이즈 등 유명가수들이 시위현장에서, 콘서트에서, 포크 페스티벌에서 자주 불러 유명해졌다. 80년대 초반 대학다니던 시절, 군사독재 반대시위 현장에서 학우들과 어깨를 결고 "우리 승리하리,우리 승리하리..." 함께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시거는 청중들이 가수와 함께 노래부르는 작업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무대에 솔로가수가 노래부르고 청중은 수동적으로 듣는 행위는 상업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시거에게 노래는 돈을 벌기위한 가수의 생업이 아니며, 대중들이 수동적으로 즐기는 오락도 아니다. 그에게 노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선지자의 외침이자 세상을 바꾸는 변혁의 촉매제이다. 삶의 의미를 철학자와 같은 깊은 통찰력으로 바라보게 하는 통로이다.

1950 년대 미국의회에 공산주의자를 색출해서 낙인을 찍으려는 이른바 '매카시 광풍'이 몰아쳤을 때 피트 시거 또한 그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의회 청문회에서 시거는 "우리가 서로 의견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하나이며, 나는 이 나라를 정말 사랑한다"고 증언하면서 자신의 악기 밴조로 '이 땅은 너의 땅, 그리고 나의 땅'이라는 노래를 불러보겠다고 제안한 일화는 유명하다. 60 년전 미 의회에서 피트 시거가 '하나됨'을 호소하면서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한 갈등을 해소하자는 제안은 권력자들의 비웃음 속에 파묻히고 말았지만 역사는 이를 헛된 일로 만들지 않았다. 피트 시거는 바락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지난 2009년 축하 콘서트에서 'This Land is Your Land' 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의 나이 아흔이었다. 매카시 광풍에서 살아남아 흑인민권운동,반전운동,환경운동 등 그가 평생을 통해 노래로 추구한 새로운 삶의 지평이 먼지로 사라지지 않고 결실을 맺어나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피트 시거는 사실 공산주의자였다. 세월이 흘러 스탈린의 악정과 소련 정치수용소의 참담한 상황을 접하고 회한어린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는 소문자 c로 시작하는 communist에 머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제도적인, 국가권력으로서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 대립과 갈등을 넘어선 평화의 세상, 모든 인류가 하나되는 세상은 언제나 그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무차별적 폭격과 흑인 민권운동을 거쳐, 월남전 개입 찬반여론과 갈등이 전 미국을 음울하게 뒤덮었을 때 피트 시거는 역시 노래를 통해 반전평화사상을 올곧게 외쳤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그의 사상을 담아.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 그 많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
노래의 가사가 노골적으로 반전사상을 담고 있지만 해학적이다.

"그 많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 소녀들이 따갔지. 그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젊은 남자와 결혼했지. 그 많던 젊은 남자들은 어디로 갔나? 군인으로 전장터에 나갔지. 그 많던 군인들은 어디로 갔나? 죽어서 무덤으로 갔지. 그 많던 무덤들은 어디로 갔나? 다시 꽃으로 돌아갔지. 아, 사람들은 언제나 깨달을까? 언제나 알게될까?"

1960년에 피트 시거와 조 히커슨이 함께 가사를 완성했고, 1964년 발매된 노래,이 노래로 2002년 피트 시거는 '그래미 (Grammy)영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으로부터 벗어나고 평화를 지키자고 외치면서도 자연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가사가 아닐 수 없다.

반전평화를 노래한 풍자적인 노래로 '내 귀에 콩' (Beans In My Ears) 이 있다.
이 노래의 가사도 매우 우화적이다.
"엄마는 귀에 콩을 집어넣지 말라고 하셨지. 귀에 콩을 넣으면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들을 수 없다고. 그런데 왜 나는 지금 귀에 콩을 집어넣고 싶을까? 당신은 우리 모두 귀에 콩을 넣자고 말을 하지.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우리는 지금 귀에 콩을 넣고 있지.훌륭한 소년은 귀에 콩을 넣지 않지. 그런데 모든 어른들은 귀에다 콩을 넣지."

이 노래는 월남전을 반대하는 노래이다. 이 가사에서 '당신'은 당시 대통령 린든 존슨을 지칭한다. '귀에 콩'은 반전평화와 정의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당시 정치인들의 완고함을 풍자하는 동시에 온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고가는 뒤틀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대중들의 심리를 함께 묘사하고 있다.

피트 시거의 대표곡으로 '돌아서,돌아서,돌아서' (Turn, Turn, Turn :To Everything There Is a Season) 를 뺄 수 없다. 1950년대 후반 피트 시거가 작사작곡했다.솔로몬 왕이 지었다고 알려진 구약성서 전도서 3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전쟁없는 세계평화를 노래했다. 전도서 3장의 내용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건설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로울 때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작사하면서 시거는 지금은 평화를 실천할 때라고 목놓아 외친다. 그리고 이 노래의 제목이 된 "턴,턴,턴" 이 후렴구로 반복되면서 전쟁의 광기에서 돌아서라고 촉구한다.마치 거친 광야에서 악의 소굴을 향해 회개하라고 꾸짖는 선지자처럼...이 노래는 1965년 미국의 포크락 밴드 바이즈 (The Byrds) 가 불러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1965년 12월에는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피트 시거가 손으로 쓴 악보는 지난 2007년 미국 공산당이 뉴욕대에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때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하고 열정을 쏟아붓던 역사적 현장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의 의식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잊을 때, 역사의 숨소리를 외면할 때 앞서간 사람들이 맞닥뜨렸던 암울한 현실은 우리에게 또다른 현실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한 세기에 걸쳐 역사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노래하는 예언자를 역사의 무대에서 떠나보내는 이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면 너무 naive 한 것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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