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그럼에도 그린다는 것은...’(3)

낙원을 그리는 작가 황지현

검토 완료

김양균(seesunkimkija)등록 2014.01.09 22:43
기자 주) 언제부터인가 전시에 걸린 그림이 슬퍼 보이기 시작했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비단 창작의 고통에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아주 없는 상황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현실과 이상간의 사투를 의미한다. 젊은 작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봤다. 본 기획은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황지현 작가(33세)는 동덕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거쳐 현재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7회의 개인전과 50여회의 기획·초대전을 비롯해 다수의 강연과 전시 연출 등 왕성한 활동 중이다.
<!--[if !supportEmptyParas]-->

Light House, 117x73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1 ⓒ 황지현


<!--[endif]-->
김양균: 푸른 빛 발광식물(發光植物)과 등대, 어떻게 시작된 것이죠?

황지현: 지친 날이었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광판에서 빛나는 식물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말해주는 존재에의 열망(熱望)이 녹아있어요. 동시에 치유 받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작용했고요. 파란색 계열을 많이 썼고, 발광식물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집을 이상향과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김: 색 선택에 대한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황: 어떤 의도를 두지는 않고, 즉흥적이에요. 색에 대한 대략적인 계산을 두기도 하지만 특정 색을 얼마나 써야겠다는 제약은 두지 않아요. 느낌의 흐름을 기억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기약할 수 없어요. 흔하게 볼 수 없는 빛나는 식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물론 심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시작한 작업이라 밝은 색은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요.

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황: 그냥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를 두고 '작가는 명료한 이해보다 감성적 전염을 원하는 것 같다'는 평론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김: 이 작품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황: 치유 받고 싶었던 순간.
<!--[if !supportEmptyParas]-->

Sweet Shelter, 80x90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2 ⓒ 황지현


<!--[endif]-->
김: '달콤한 은신처'보다 '달콤 쌉싸름'이 어울리지 않겠어요?(웃음)

황: 그래요?(웃음) 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서의 '집'은 사실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죠. 작품속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행복하지만 도망치고 싶고, 터놓고 이야기하지만 숨고 싶은, 상충되고 모순(矛盾)된 감정을 표현했어요. 일상생활에서 집에 오면 곧장 방으로 직행해서는 컴퓨터만 보고 있잖아요? 집이란 이렇게 관계의 모순과 연속성을 지닌 공간이죠.

김: 전체적으로 밝고 예쁜데, 가만 보면 어딘가 모르게 컬트영화의 느낌이랄까요?(웃음) 식물의 한 부분이 무너져 있다든지.

황: 마냥 예쁘지만은 않다?(웃음) 사실 그 변형(變形)은 복합적입니다. 약간의 장난기도 있어요. 건드리고 싶은 충동을 닮아있죠. 손에 쥔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보고 싶고 개구리를 꽉 눌러보고 싶은. 꼬여있는 나뭇가지를 보면 꿈틀대는 연상, 그 색을 바꿔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죠. 작업의 시발점인 셈이죠.

김: 안테나와 등불은?

황: 안테나에는 세상으로 쭉 뻗어있는 관심이자 멈추지 않는 호기심을 상징합니다. 잔잔하지만 꺼지지는 등불은 의지(意志)를 뜻해요. 절대로 꺼뜨리지 않겠다는 의지 말이에요.

김: 계단도 자주 등장하는데,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건가요?

황: 어떤 특별한 곳에 도달한다? 그건 아니라고 봐요. 완성(完成)이란 없을지도 몰라요. 다만 끝없이 갈 뿐입니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회사의 승진처럼 어떤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테나를 세워놓고, 불을 꺼뜨리지 않으면서 계단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죠.

김: 작품성과 대중성. 고민한 적 있죠?

황: 대중성의 고려는 어떻게 보면 대중과의 소통(疏通) 의지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작가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의 사랑을 얻으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렇지만 저만의 작업을 해 나갈 뿐이에요. 사람들은 휴식을 얻고 싶어 하는데, 제 그림이 너무 자극적이고 피곤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결국 '활력과 자극(刺戟)도 필요하다'로 정리했죠(웃음).

김: 작품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황: 장난스러운 따뜻함, 시끌벅적하지만 싫지 않은 쉼터.
<!--[if !supportEmptyParas]-->

Twinkle Tree, 70x70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2 ⓒ 황지현


<!--[endif]-->
김: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버섯이 떠올랐어요(웃음).

황: 작품이 버섯을 닮았을 뿐이지, 제가 버섯을 추구한 건 아니에요(웃음). 이 작업을 하면서 채움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공간의 활용이 한결 자유로워졌어요. 작업의 시작은 사실 '선풍기 난로'였어요. 거기서 온기(溫氣)를 전하는 나무로 확장됐죠. 사실 버섯처럼 독특한 모양의 생물체에 끌리는 것도 있고요.

김: 이를테면 플라나리아와 같은?

황: 네. 그 꼬물대는 생명력 말이죠(웃음).

김: 소재 선택에 작가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황: 무엇보다 작품안의 사물은 우선 제게 '다가오는 것'이어야 해요. 작품 속 빨래를 예로 들자면, 제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엄마가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나풀거리죠. 그 나풀거림에는 향긋한 냄새가 배어있어요. 거기에 따사로운 햇빛이 어우러지면 이내 노곤해져요. 제게 다가오는 소재들이 곧 작품 속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죠.

김: 빨래의 경우에는 더할 나위없는 나른함이군요(웃음).

황: '쉼'이라고 말해 주세요(웃음). 이런 겁니다. 베란다에 햇빛이 오면 바닥에 눕죠. '난 광합성이 필요해'라고 하면서. 그런데 정말 광합성을 한 것처럼 힘이 나요.

김: 아래에 보이는 소용돌이는 뭐죠?

황: 아지랑이의 느낌으로 무엇이든지 일어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허락(許諾)되는 바람, '산타아나스'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것은 계속될 것 같아요.

김: 유독 창문과 문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황: 문, 계단, 끝없는 길, 종착점의 이미지는 제가 작업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빛이 새는 어떤 문에 대한 이미지에요.

김: 한 줄로 정리한다면?
<!--[if !supportEmptyParas]--> <!--[endif]-->
작가는 '눈부신', '빛나는', '꺼지지 않는' 단어를 나열할 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판타지 속 소녀의 감성으로 보이기 싫어서 그러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가의 대답은 명료했다. 소녀의 감성이 뭐 어떠냐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작가의 세계는 긍정에 바탕을 둔 채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확장되어 간다 ⓒ 김양균 기자


<!--[endif]-->
김: 향후 작품은 어떻게 변할 것 같아요?

황: 자연을 통한 이상향에서 조형적인 미학(美學)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아요. 표현의 변화라기보다 그 안의 메시지의 진지함과 의미의 확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김: 그렇지만 결국 긍정에 뿌리를 두고 말이죠?

황: 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