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그럼에도 그린다는 것은...’(2)

낙원을 그리는, 작가 황지현

검토 완료

김양균(seesunkimkija)등록 2014.01.09 22:50
기자 주) 언제부터인가 전시에 걸린 그림이 슬퍼 보이기 시작했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비단 창작의 고통에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아주 없는 상황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현실과 이상간의 사투를 의미한다. 젊은 작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봤다. 본 기획은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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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 작가(33세)는 동덕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거쳐 현재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7회의 개인전과 50여회의 기획·초대전을 비롯해 다수의 강연과 전시 연출 등 왕성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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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길,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3 ⓒ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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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충돌 지점,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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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작품 속의 식물과 집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질적인 소재를 붙여 놓은 이유가 있나요?

황지현: 변형된 자연과 그 속의 집. 작품 속의 집은 안식(安息)의 공간이자 탈출하고픈 욕망을 의미합니다. 상반된 욕망이 충돌하는 중간에 위치하는 공간이에요. 동시에 안식의 공간을 얻기 힘든 현실을 꼬집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집을 소유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공간이에요.

김: 작가만의 이상향은 어디죠?

황: 마음, 늘 파도에 요동치는 마음이죠. '잘하고 있어'라고 위안하다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이렇게 작업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나'라는 좌절의 반복. 그렇게 흔들리면서 천천히, 그러나 반듯하게 원하는 단계로 가고 싶은 겁니다. 대가를 꿈꾼다는 게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바람이죠. 처음의 열정이나 설렘을 잃지 않고 작업하고 싶은 마음. 그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요.

김: 서서히 만들어가자?

황: 빨리 오면 더 좋고(웃음). 여러 번 떨어지던 공모전에 붙고 그림이 팔려 재료값을 마련한다거나 강의가 들어온다든지. 무엇보다 작업에 대한 연구가 작품에 잘 배어져 나올 때 희열이 있죠. 빠르진 않지만 천천히 만들어가고 싶어요(웃음).

김: <끝나지 않은 길(플레이스막, 2012. 10.19~11.1)>전시에서 그 전까지 선보이지 않았던 작업을 시도했어요. 기존 틀을 부수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요?

황: 설치로의 확장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물감을 굳혀 표현한 작업을 보고 주변에서 내심 걱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작업 되겠냐고(웃음). 막상 전시에 선보였을 때 작가들과 예술관계자들의 호응이 좋았어요. 작가로서도 가장 솔직한 전시였다고 봐요.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똑바로 마주하고, 제대로 폭발시켰다는 점에서.

김: 그런데 이전 작업을 통해 어쨌든 계속 감정의 분출은 이뤄지지 않았던가요?

황: 반복된 작업 과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보여주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답답함도 있었고. 앞으로의 작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전시 준비하면서 매일 부수는 과정을 반복했고 결국 모든 감정을 완전히 토해낼 수 있었어요. 그 전까지 구축해온 저 만의 세계에서 한편으로 자유롭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고. 이 과정들을 통해 작업 영역의 확장과 함께 재료와 접근 방법도 다양해졌습니다.

실업자, 50x31cm, 다이어리 종이·나무·아크릴, 2012 ⓒ 황지현


김: 그 전시에서 선보였던 <실업자(50x31cm, 종이·나무·아크릴, 2012>의 에피소드가 재밌더군요.

황: 한번은 친척 어른이 5만 원을 흔들면서 누가 갖겠냐고 말했어요. 그 때 '지현이는 실업자잖아. 쟤 줘'라는 말을 들었죠. 전 자존심에 금이 갔고요(웃음).

김: 그래서 그 돈 받았어요?

황: 일단 받았어요(웃음). '돈을 못 버는 사람=실업자' 라는 논리였는데, 그게 작업으로 이어진 겁니다. 사실 벌지 못하는 작가가 맞으니까 내심 와 닿기도 했고.

김: 실업자보다 센 말을 들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군요. '루저'라든지.

황: 실업자라는 말은 아파요. 결론적으로 작업의 영감을 줬지만, 그래도 역시 이 말은 여러 의미로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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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지만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반쪽자리 어른. 그러나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것. ⓒ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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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를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의 단어를 매일 노력했던 흔적(痕迹)으로 채웠다'는 구절이 작가노트에 적혀있다. 작가는 일기를 조각내 작품을 메웠다. 차마 인정할 수 없는 '아픈 지적'의 부정을 위한 몸부림이 곧 <실업자>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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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작가노트에 적었는데, 사실 여기에는 안정된 월급을 받으며 편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숨겨져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그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황: 작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면 퇴근한다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스스로 컨트롤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가야만 하는 겁니다. 자율적인 창작활동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죠.

김: 만약 손에 문제가 생겨버려서 작업을 할 수 없다면요?

황: 발가락으로 작업을 하겠죠, 아마.

김: 정말요?

황: 왜냐하면 그게 절 행복하게 해 주니까요. 전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작업과 연결될 때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맛봅니다. 환경적인 이유로 작업을 못할 때면 어떻게 해볼까 '잔머리'를 굴려요(웃음). 그래야 행복하니까.

김: 아무래도 작업을 하다보면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는 일도 많지 않나요?

황: 사람들과 섞이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으려고 해요. 역시 균형은 중요하니까.

김: 감정의 밑바닥을 치는 게 두려워서?

황: 생각은 갑니다. 다만 돌아오는 법을 알죠.

김: 작품을 즐기는 비법을 알려준다면?

황: 우선 직관적인 감각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궁금한 것은 작가에게 물어볼 것. 관심과 질문, 작품의 공부가 선행되면 더 좋다고 봅니다.

김: 결국 아는 만큼 재밌다?

황: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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