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은 왜 송년회에서 '2015년 통일' 말했나

[분석]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위험하고 무모한 발언

검토 완료

지용민(hanfan)등록 2013.12.26 11:10
지난 21일 국가정보원의 간부 송년회가 열렸다. 남재준 원장은 "2015년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통일돼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조국 통일 달성을 결의하는 자리였다."며 "국가 보안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조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남 원장은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 한 점도 거리낌 없이 다 같이 죽자"는 고위관료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와 같은 그의 발언은 보수일간지 1면에 소개됐다. 역대 국정원장의 송년회 발언이 이런 식으로 공개된 적이 또 있었던가. 국정원의 송년회 분위기가 이토록 생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신문의 취재력보다는 국정원의 친절한 소개 탓으로 해석된다.

송년회에서는 애국가뿐 아니라 남 원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독립군가'가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라는 내용의 독립군 군가 '양양가(襄陽歌)'를 떼창했다는 후문이다. 그들이 이 한 몸 기꺼이 바치겠다는 대상은 '대한민국'인가 아니면 '박근혜 정부'인가. 이후 보게 될 국정원장 발언을 분석해 보면 자연스레 이런 의문과 마주하게 된다.

국정원 송년회 관련해서 궁금한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남 원장이 통일이 되어야 할 시기로 왜 '2015년'을 특정했는가 하는 대목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 플랜'을 과연 정보기관에서 세우고 결의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대목이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모토로 삼는 국정원이 '플랜'을 세우고 달성을 위한 '결의'를 한 것은 지난 대선 때의 선거개입처럼 이상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2015년 통일'이 의미하는 것

21일 국정원의 송년회 내용을 보도한 23일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PDF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중했던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통일에 대해 거침이 없었다.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2010년 12월)"라든지 "노을을 보고 해가 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통일은 정말 가까이 왔다(2012년 7월)"는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남 원장의 '2015년 통일' 발언과 비교하면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은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다. 정보기관 수장의 구체적인 발언이 당황스러웠던지 국무위원들이 앞다퉈 발언내용을 부인하기에 이른다. 지난 장성택 숙청 당시에도 국정원과 통일, 국방부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일더니 상황이 이쯤 되면 국정원에 대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4일 국회에 출석하여 남 원장 발언에 대해 "(통일이) 당장에, 특히 어떤 시점이나 조만간에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역시 "(통일의) 시기에 대해 말하기는 조금 이른 것 같다"고 같은 입장을 취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북한이 현재 지극히 불안한 정세인데 이렇게 마치 무력통일을 시사하는 듯한 국정원장 발언이 한반도 평화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거세게 질타했다.

다른 장관들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국정원측에서는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24일 <조선일보> 보도 후 각 언론에서는 후속 취재에 나섰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에서는 해당 발언의 진위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발 물러섬으로써 발언의 후폭풍을 잠재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국정원은 확인해주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015년'은 어떤 의미이기에 그 해를 타깃으로 세운 것일가. '곧 통일이 될 것' 정도로만 표현하면 될 것인데 국정원은 2015년이라고 못 박았다. 이날 이들은 애국가를 1절에서 4절까지 부르고, 앞서 언급했듯이 독립군가를 함께 불렀다. 이는 송년회로 보기 어렵다. 출정식을 방불케 한 것이다. 그리고 나온 2015년 통일.

국정원은 북의 '급변사태'를 가정해 통일플랜을 언급한 듯 싶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대통령은 헌법상 권한인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질서 유지' 목적의 '계엄'을 선포할 가능성이 크다. 계엄이란 단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가 됐지만 박근혜 정부 밑에서 이미 관련된 움직임이 나왔음에 주목하자.

지난 7월 말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인 김재원 의원은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본인은 만일을 대비해서 법 개정에 나섰다고 개정 취지를 밝혔지만, 지난 33년 동안 선포된 적 없는, 이제는 사문화된 법률로 인식되었기에 당시 논란이 컸다. 김 의원은 이 정권의 공신인 '무대' 김무성 의원에게 충성을 맹약한 것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인사이기도 하다.

계엄이 선포되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의 행위가 제약되며 정상적인 정치행위 자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계엄사령관이 행정, 사법의 전권을 휘두르게 되는데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성급에서 임명하게 된다. 그리고 15년 급변사태로 계엄이 선포된다면 이듬 해인 16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그리고 1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야당으로서는 최악의 언론 환경에서 선거운동을 맘대로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계엄 하 선거가 치러지면 최악의 언론 환경에서 집권여당은 야당 후보에게 '북한과의 관계'를 묻고 또 물을 것이다. 2010년 천암함 당시에 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를 국민들에게 물을 수 있었지만, 군이 언론을 장악한 상황에서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눈에 띄는 대목으로는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육사 37기)의 육사 동기들이 기무사령관을 비롯해, 합참 작전본부장, 특전사령관, 군단장, 국방부 정보본부장 등 주요 보직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의 경우에는 계엄사령관으로 그들이 유력할 것이고, '만사제통(모든 일은 동생을 통해 이루어진다)'하는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이는 물론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나, 그 확률이 아주 없어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15년 통일'이 의도성을 가진 발언이라면 그것은 다음 총선인 2016년 이전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2016년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 상황이라면 '계엄'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라 계엄은 '제적 의원수 과반'이 요구하면 즉시 해제된다.

국정원 통일 플랜? 자기현시 욕구와 오지랖 사이

2012년 11월 <신동아>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게재됐다. '북 급변사태 대비 매뉴얼'이 그것이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닥쳤을 때 경찰청, 과학기술부 등 여러 부서에서 대응 매뉴얼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동아>가 가장 주목해 보도한 기관은 국정원이었다. 이 매뉴얼이 작성된 때는 1999년 2월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부시로부터 'This man'이라는 모욕까지 당할 정도로 독자적인 대북 정책인 '햇볕정책'을 고집한 DJ정부 시절에 매뉴얼이 준비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DJ는 대화와 대비를 병행한 대통령이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국정원은 '고당계획'을 펼칠 준비를 한다. 조만식 선생의 호를 딴 이 계획은 북 급변사태 시 한국정부 주도로 비상통치를 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각 기관별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정원은 이 때 '북한 지역 평정 합동대책반'을 운영한다. 평정요원을 북한에 파견해 북한의 통일저항세력을 제거, 체포하게 된다. 노동당을 접수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대북 작전계획은 한-미 연합군에서 수립하는 O-5026, 5027, 5029, 5030 등이 있다. O-5026은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 등을 선제공격하여 정밀타격하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O-5027은 북의 남침 시를 가정한 한반도 전면전 상황 시 대응계획이다. O-5029는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 등장하는 계획인데 '북의 급변사태'를 가정한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의 반대로 작전계획에서 '개념계획'으로 후퇴하게 된다.

O-5030은 최근에 알려진 개념으로 '북한 고사작전'으로 불린다. 북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선제 작전 개념이다. 북의 제한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북 군부의 동요를 유도하는 것으로, R-135 정찰기를 북 영공에 근접 비행시켜 북한 전투기 출격을 유도해 북의 에너지난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다. 미군이 사전 예고 없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대비태세를 갖추게 함으로써 식량 등 자원을 소진시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전시작전권이 한국에 이양된다. 한국군이 주도하여 북한을 상대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작전권 이양 시점과 맞물려서 한-미 양국은 '신작계 5015' 수립을 협의하고 있다. 5015는 전면전 작계인 5027과 급변사태 대비 5029,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포함한 작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공개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북의 급변사태와 관련해 등장하는 '플랜'은 크게 매뉴얼과 작전계획이 존재한다. 국정원 송년회에서 논의됐다는 '통일플랜'이 DJ정부 시절에 수립된 '메뉴얼'의 최신 업데이트 수준의 내용이라면 그것을 가지고 애국가와 양양가 떼창을 한 국정원 간부들의 태도는 낯설게 느껴진다. DJ정부 시절처럼 조용히 대비할 수는 없었던가. 이 같은 자기현시적 욕구가 또 다른 대선개입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만일 국정원의 통일플랜이 매뉴얼 수준이 아닌 선제적 공격까지 포함된 '신작계 5015'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날 송년회에서 그들이 보여준 엄숙한 분위기는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르나, 합동참모본부에서 주관하는 군의 작전계획을 가지고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고 한 국정원의 오지랖은 과거 중앙정보부를 연상시킨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군인인가 정보기관 수장인가

남재준 국정원장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회의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1일로 돌아가 본다. 국정원장이 간부들과 함께 송년회라는 명목의 '2015년 통일'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 한 몸 기꺼이 바쳐서 통일조국을 이뤄낼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의 모임에서 그와 같은 우국충정이 나왔다면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R&R (권한과 책임, Roles & Responsibilities)이 명확히 구분되는 정부 조직 상 기구가 본인의 역할을 벗어나 행동한다면? 그것은 징계사유다.

작전계획은 군에서 수립한다. 그리고 정부조직법 상 대북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기구는 통일부다. 국정원은 원훈에서도 드러나듯이 '무명의 헌신'을 하는 기구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이 정부에 대해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인지 R&R을 고려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를 보여 관련 부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와 같은 독주의 지향점이 그들이 말하듯 나라가 아닌, 박근혜 정부인 듯 보이게끔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있다.

국정원이 무엇을 성취해내는 '실행기구'였던가. 국정원장의 '2015년 통일' 계획은 생각해 보면 위험하고 무모해 보인다.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생각이기도 하다. 그것을 언론에 흘린 대담함도 걱정된다. 국회에서 '국정원 개혁 특위' 활동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그들은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남 원장은 음지에서 일하며 무명의 헌신을 하는 정보기관의 수장인가 아니면 작전계획에 충실한 군인인가. 전자라면 송년회에서의 발언은 대단히 부적절했다. 후자라면, 군인정신에 입각해 '이 한 몸 기꺼이'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도움이 되는 결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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