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크렘린궁이 각기 달리 소개한 ‘푸틴 방한’ 일정

지연 방한? 그는 과연 ‘외교적 결례’를 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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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민(hanfan)등록 2013.11.13 20:53
박근혜 정부의 한-러 정상회담 일정이 석연치 않다. 외교의 격(格)을 중시하는 정부임을 고려하면 일정상 의문은 커진다. 지난 11월 1일 청와대와 러시아 대통령 홈페이지에서는 동시에 '한-러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정상회담 일정이 서로 달랐다.

푸틴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한 시각은 13일 새벽. 한국언론 보도내용을 보면 푸틴은 12일에 오기로 약속했었는데 늦게 도착한 셈이다. 그 이유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침묵했지만, '외교적 결례'인지 아닌지를 다루는 기사들이 주류를 이뤘다. 과연 그러한가?

시계를 잠시 거꾸로 돌려 보자. 11월 1일 청와대 김행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11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새정부 출범 후 주변 4국 정상 중 첫 방한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푸틴 대통령의 방한 의미를 설명했다. 

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한 같은 날 러시아도  크렘린궁 웹사이트(http://eng.kremlin.ru/news/6204)를 통해서 한-러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전했다. 제목이 '푸틴 대통령 13일 한국 방문(Vladimir Putin will visit the Republic of Korea on November 13)'이다. 러시아는 양국 정상이 '한-러 3차 포럼'에 참여할 것이며, 몇 가지 협정에 서명할 것임을 공지했다.

푸틴 대통령 13일 방한 크렘린궁 웹사이트는 푸틴대통령이 13일 한국을 방문한다고 안내했다 ⓒ 크렘린궁 웹사이트 화면


청와대 소개처림 뜻깊은 한-러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리는데 한국 정부는 푸틴이 12일에 온다고 안내했고, 러시아는 13일에 방한한다고 공지했다. 뜻깊은 방한치고는 각국이 소개한 일정부터 달랐다. 박 대통령이 영국 국빈방문에서 경험했듯이 정상회담은 의전과 일정이 중요한데 박 정부는 무슨 이유로 러시아와 달리 12일 방한이라고 기자들에게 브리핑했을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지난 11월 1일에 공지한 내용대로 13일 한국에 도착했다. 12일 방한할 것이며 1박 2일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고 안내한 박 정부가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언론에서도 청와대 설명과 달리 13일 새벽에 푸틴 대통령이 방한하자 이상했었나 보다. <연합뉴스>는 '푸틴 '새벽 도착ㆍ늦은 점심ㆍ당일 출국' 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애초 푸틴 대통령은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12일 밤 한국에 도착, 하루를 묵은 뒤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전해졌으나 최근 일정이 급작스럽게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덧붙여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다만 베트남 방문 과정에서 일정 변경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푸틴의 외교 결례? 12일 오기로 했는데 13일 방한한 것을 '외교적 결례'라며 메인 뉴스로 보도한 국내 언론 ⓒ 조선닷컴 화면 캡쳐


푸틴은 크렘린궁 사이트에서 공식 안내한 바와 같이 11월 13일에 방한했다. 지금이 순간에도 크렘린궁 웹사이트는 '푸틴 13일 방한'이라고 안내돼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 및 언론에서는 '베트남 일정의 갑작스런 변경'으로 마치 푸틴을 '외교적 결례'를 범한 대통령으로 묘사하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외교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이례적 일정(?)에 대해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일정이라는 건 오는 분의 사정에 따라 융통성있게 잡을 수도 있다"면서 "이를 두고 외교적 결례라고 지적하기는 무리가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당혹스러운 박근혜 정부, 더 당혹스러울 푸틴 대통령

한국에 오기 직전인 12일 푸틴은 베트남을 공식방문했다. 러시아-베트남 양국은 17개 협력협정에 서명하는 성과를 냈다. 원료, 군사무기, 금융 등 광범위한 내용에 협력하기로 하는 등 양국은 더욱 긴밀한 파트너십을 형성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장문기사로 보도되는 등 베트남 방문에는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러-베트남 정상회담 성과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지 17개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한 러-베트남 정상회담 성과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지 ⓒ 월스트리트지 화면


그런데 방한한 푸틴이 '외교결례'로 주목받는 현 상황은 '주변 4강 정상 중 첫 방한'이라며 방문의미를 한껏 부여한 박근혜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더욱 당혹스러울 듯 싶다. 과연 외교적 결례는 누가 범하고 있는 것인가?

본질적인 질문 하나. 러시아 정부는 13일 방한이라고 소개한 건에 대해 왜 박근헤 정부는 12일에 방한이라고 국민들에게 안내했을까? 격이 떨어져 보이는 당일치기 방한에 대한 부담 때문은 아닌었는지 이제 청와대대변인이 마이크를 잡을 차례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busase.tistory.com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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