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

우주 재난 에서 얻은 삶의 지혜+스토리 전개 아쉬워

검토 완료

조재호(sambory)등록 2013.10.22 21:32
.
 
인류가 아폴로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며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지 약 50년이 지났으며 인류가 만들어낸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난 것은 올 해의 일이다. 무인 우주선 보이저 호가 무려 30년간의 긴 비행 끝에 태양계를 벗어나 지금도 비행 중이다. 또 미국의 큐리오시티 호가 화성을 탐사 중이다.
 
인류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지구로부터 600km 바깥의 세상, 즉, 인공위성의 궤도에서 펼쳐진 재난으로부터 여성 우주 비행사가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귀환하는 스토리로 구성된 <그래비티>는 참 담백한 영화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이라는 본능적인 것 외에는 추구하는 바가 따로 없다. 남녀 간의 사랑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기타 등등의 잡스런 이야기도 없다. 오직 이 영화에서 추구하는 것이라고는 리얼리티와 여성 우주 비행사 라이언 스톤(산드라블록 분)의 본능적인 생존 욕구뿐이라고 해야 한다. 아니 하나 더 추구하자면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의 미국식 농담이다.
 
휴스턴 본부와의 교신에서 보여주는 클루니의 농담어린 대화는 물론이고 매우 진지한 상황에서도 클루니의 농담은 멈추지 않는다. 가령, 우주 공간에서 산드라 블록을 줄에 매달아 이끌고 우주정거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속도를 못 이기고 자칫 둘 다 죽을 수 있는 순간에서 스스로 줄을 끊고 우주 미아가 되어 가는 순간에도 클루니는 본능적인 농담의 욕구를 멈추지 않는다.
 
우주 미아로 혼자 우주의 망망대해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무선을 통해 클루니는 "모든 여자들이 나의 갈색 눈동자의 매력에 사로 잡혔는데, 혹시 당신은 나에게 빠지지 않았나요?"라고 묻는다. 산드라 블록은 이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클루니의 프로포즈성 농담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자 클루니는 "나의 눈은 갈색이 아니라 흑색이다."고 말한다.
 
참 미국식 농담은 언제 들어도 감칠맛이 난다. 우리 식 농담이 직설적인데 반해 미국식 농담은 언제나 이처럼 상황에 적당히 미끌어지면서 들어가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할까.
 
허블 망원경 결함을 수리하는 임무를 맡은 산드라 블록과 이 우주 비행의 책임자인 클루니가 대기권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지구의 장면은 3D로 보았기에 더욱 인상 깊게 남아있다. 고요함, 정적이 감도는 우주에서 이들 주인공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고요의 순간을 깨우는 것은 휴스턴의 무선 한 통이었다. 러시아가 오래된 인공위성을 처리하기 위해 미사일을 쏘았고 파괴된 위성의 파편이 이들이 작업하는 공간의 궤도를 지나갈 것이란 것이다. 재난 상황이 언제나 그렇듯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장면이 처참한 광경으로 변하는 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산드라 블록은 파편의 충격으로 우주의 망망대해로 흘러들어가며 철저히 혼자 버려지는 고독감을 느낀다.
 
 
 
조지 클루니와의 교신도 끊어지고 산드라 블록은 무중력의 우주 공간에 미아처럼 버려져 간다. '고요함 속에 버려진 나', 바로 이 순간을 현대인은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다. 학교에서 왕따가 두려운 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도 외로움이다. 사고하는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고요이니까. 산드라 블록은 바로 이러한 무중력 상태에서 이를 느낀다.
 
아무리 불러도, 악에 받쳐 소리쳐도 대답하지 않지만 산드라가 철저히 버려진 뒤 클루니와 교신이 된다. 인생도 이와 같다. 서둘러 포기할 이유가 없다. 살기 위해 발버둥 쳐도 소리쳐도 나의 잘 못이 없다고 목 놓아 울어도 소용없다. 비로소 나를 완전히 버려야만 삶의 구원의 손짓이 오는 법이다. 클루니와의 교신은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라이언. 라이트를 켜야 내가 찾지."라고 클루니가 말했을 때 재난의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게 시작이었음을 알게 된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루니의 줄에 매여 끌려가면서 산드라는 이제 죽음을 담보로 한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미래를 본다는 건 죽음보다 처참할 수 있으니까. 우선 클루니에 끌려서 러시아의 우주정거장으로 가야한다. 그러나 우주라는 공간은 한 번 가속이 붙으며 그 속도가 일정하게 이어진다. 제어장치가 없으면 말이다. 우주정거장에 도달하는 순간 제어장치가 오로지 모선과 충격을 통해 무언가를 잡느냐는 싸움이란 것을 아는 순간. 두 사람의 운명이 뒤바뀐다는 사실도 참 절망적이다.
 
산드라는 우여곡절 끝에 모선에 매달린 끈이 그녀의 발을 붙잡지만 클루니에게는 이런 행운이 없었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산드라에게 매달린 줄을 잡지만 클루니는 이 줄을 계속 잡을 경우 산드라 마저 목숨을 잃는다는 걸 직감하고 끈을 스스로 푼다. 우리는 이별의 순간 손을 놓으면서 절규하는 경우가 많다. 놓은 연습이 부족한 탓일까. 무거운 짐이라면 놓아야 하겠지만 진짜 소중한 걸 놓는 연습은 너무도 덜 돼 있다. 부모님과의 사별, 연인과의 이별 등등.
 
이제 혼자가 된 산드라는 혼자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간신히 러시아 우주정거장에 도착해 산드라가 가장 먼저 한 행위는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 있던 모습이었다. 우주복을 벗고 무중력의 상태에서 둥둥 떠있는 산드라의 모습은 초음파 사진에 나오는 태아의 모습 그대로다. 우주정거장 내부의 화재를 피해 비행선에 도착한 산드라는 비행선에 추진연료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생을 포기하려 산소 공급기를 꺼버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것을 내려 놓는 순간이 곧 끝이 나는 순간이지만 다시 그녀는 생명을 얻는 기회를 잡는다.
 
자신이 우주 유영 세계 기록을 세웠다고 농담을 하며 클루니가 그녀가 탑승해 있는 비행선에 몸을 구겨 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륙은 착륙과 같은 원리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클루니의 모든 행동은 사실 꿈이었다. 원리를 깨달은 그녀는 다시 산소공급기를 켜고 중국 우주정거장으로 향한다. 러시아 정거장서 중국 정거장으로의 징검다리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소화기를 가지고 추진과 제어를 반복하면서 무사히 중국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산드라는 결국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에서 얻은 것은 삶의 지혜이었으나 잃은 것은 알콩달콩한 스토리였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