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유여! 그조르그여!

이스마엘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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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pleamore)등록 2013.09.22 14:58
오 자유여! 그조르그여!
"오오, 하느님, 모든 게 규칙 그대로군요!"

1.카다레의 삶과 글쓰기

이 소설을 쓴 이스마일 카다레는, 글쟁이가 아니다.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정치에 관심을 갖고 발언하고 참여하는 삶을 살았고, 문학은 그런 삶을 담아내는 문학을 하는 이다. 그는 1962년 첫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펴내 여러 나라에 이름을 알렸고, 공산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유배流配되었다. 물론 그의 작품이 판매가 허가되지 않았다. 권력에게 탄압을 받다가 1990년에는 결국 프랑스로 망명한다.

그는 프랑스에 살면서도 조국 알바니아를 삶과 문학에서 놓지 않는다. 알바니아는 어쩌면 그의 '정치적' 삶과 글쓰기의 전부였다. 알바니아에 대한 역사적 기억과 구전口傳 전통은 그의 글쓰기의 중요한 두 축이었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슬픈 역사, 기독교와 이슬람문화가 혼재된 문화적 특수성은 이스마엘 카다레의 문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에는 좋지 않은 날씨, 전제주의, 죽음, 지옥을 상징하는 문서실, 도로 등의 이미지 등이 자주 보인다. 긴장감 넘치는 작품에는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데, 카다레만의 문학적 재치로 보인다.

그는 고대신화, 전설, 구전민담의 내용을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듯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발칸반도는 굉장히 문학적인 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아주 예술적인 땅이다. 아주 중요한 문학적인 주제들이 존재했고 신비하고 고대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다. 알다시피 알바니아는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사이, 중간 지대입니다. 문학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나라이지요. 구전문학의 전통은 당시 공산 독재정권의 독트린과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구전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들이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2012.12.17치 한국일보). 이러한 그의 발언은 이 소설을 읽는 데도 도움이 된다.

2.그조르그의, 부서져 나가버런 4 월

이 소설에는 알바니아의 관습법에 따라 희생된 한 자연인이 등장한다. 그조르그라는 이가 바로 그다. 그가 관습법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살인하고 살해당하는 과정을 이 소설의 관찰자는 비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알바니아의 고원 지대에서 중앙정부와 별개로 통용되던 관습법인 카눈을 소재로 삼고 있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카눈(규범, 관습법)'은 이른바 '복수와 피의 회수'로 알려져 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살인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은 피해를 입힌 상대 집안사람들에게 피해자가 당한 그대로 되갚을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된다. '피의 복수'는 집안의 아들들에게 대물림되며 이에 연관된 가족들은 평생을 숨어 지내야 한다.

물론 알바니아의 고원 지대가 그렇게 삭막한 것만은 아니다. 손님을 '올려놓는' 관습이라는 경이롭고도 놀라운 문화가 거기에 있다. "손님이라는 지위는 이곳에서는 군주와도 같은 존경을 받는 위치지. 그런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는 단도를 휘두를 필요도, 독약을 준비할 필요도 없어. 단지 대문을 톡톡 두드리기만 하면 되지(123)."

이 소설은 아주 오랜 옛날의 살인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사건은 평범한 살인 사건이 아니다. 피의 보복을 부르는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을 따라 연쇄적인 살인사건이 생기고 이에 따라 수많은 후손들이 관습법을 따라 희생되는 악순환을 부른다. 주인공 그조르그도 이 관습법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이 법과 법을 따르는 관습, 그 문화에 끌려 다닌다. 그도 피의 복수를 하고, 이어서 자신도 다시 제 피를 내놓아야 할 운명에 놓인다. 그리고 결국 그도 이 관습법을 따라 살해된다. 그조르그가 죽음을 유예 받고 4월 한 달을 고원을 떠도는 과정을 이 작품은 그려보이고 있다.

물론 그조르그는 그 여정 동안 돌며,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유를 동경하고 몹시 집착하고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그조르그의 여정에 베시안 보릅시와 그의 아내 디안의 여행이 겹친다. 디안은 이 생경하고도 신비로운 관습과 전통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그조르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거대한 관습법과 조직의 작동체계에 따라, 살해되고 만다. 그는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자신의 명과 자유를 조직과 관습법에 맡긴 채 죽음을 따라간 것이다. 4월 한 달을 온전히 채우지 못한 채.

3.죽음에 대하여

카다레는 소설 속에 나오는 베시안의 시각을 통하여 삶의 부조리성을 언급하고, 죽음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질병에 의한 것이든 노쇠에 의한 것이든 자연사는 고원 지대 주민들에겐 수치스러운 것이며 살아가는 동안의 유일한 목표는 죽을 때 그 같은 종류의 자그마한 기념물이 세워지게 해줄 며예라는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결국 죽음이라는 차원은 그 자체의 위대성으로 인해 인간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부여해주는데, 그것은 죽음이 삶의 비천함과 왜소함으로부터 인간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려 애썼다." "그것(죽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헌법 체계 중의 하나이며, 우리 알바니아인들은 그것을 창조한 것에 대해 긍지를 가져야 한다는 거야." "살아있는 자들이란 이승에서 살도록 허락받은 죽은자들"(171).

이러한 입장은 물론 카다레의 바람이라 할 수 없다. 이 소설이 쓰일 당시의 알바니아의 공산전제정권 치하의 야만적인 정치현실과 그런 현실 속에서 신음하던 알바니아 인민人民들이 겪고 있던 자의적인 살해와 고문 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조직과 법, 그리고 개인의 자유

이 소설에 나오는 관습법에 대해 그것이 정당한가를 두고 미개한 것이라는 입장과 "실제로는 살인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만약의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살인을 제지하는 역할을 한다(동태복수법)"는 입장 등 두 입장을 카다레는 소개한다. 일종의 자력구제로 여겨지는 '살인법'이라 할 수 있는 '카눈'을 따라 살아가는 고원 지대 사람들에게 과연 법은 그들의 권리를 지켜준 것이었을까? 이 소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카다레가 이 소설에서 언급하듯 카눈은 생명을 지키는 관습법이 아니라 "죽음의 메커니즘(221)"일 뿐이다.

이 보복과 피의 메카니즘은 조직과 관습에 갇힌 개인의 자연인으로서의 삶과 자유를 지켜줄 수 없었다. 그조르그의 짧디 짧은 여정이 쓸쓸하고 허망할 수밖에 없던 것도 그 때문이다. 돌 무덤을 보며 그조르그가 이렇게 중얼거린 것으로 이 소설의 관찰자는 그린다. "내 삶에서 남은 것이 저것뿐이라니. 아니었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의 삶이 남길 것은 바로 저것 뿐이로구나(236)." 그의 고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느님, 이토록 고통스럽다니요! 그는 설사 지옥이라 할지라도 이곳에 머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침내 몸을 움직여 가능한 한 그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려 했다(237)."

카다레는 그조르그의 여정을 통하여, 조직과 법의 통제를 따라야 하는, 따라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의 삶이란 게 얼마나 어둡고 우울한 것인가를 고발하고 있다. "죽음의 사월. 만일 죽지 않는다면, 그는 유폐탑에서 시들리라. 어둠 속에서 시력은 약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그는 이 세상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238)." 그조르그의 서글픈 최후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오, 하느님, 모든 게 규칙 그대로군요! 그는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을 뜨려고 애썼다. 그의 눈에는 자신을 쏜 살인자가 아니라. 아직도 녹지 않은 하얀 눈덩이 몇 개만이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올 게 왔구나. 하지만 실은 모든 게 지나치게 길었어....(326)" 카다레는, 독립적으로 존속하여야만 하는,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는, 한 자연인의 삶과 운명적인 죽음을 자기소설에 올려놓음으로써, 개인이 찾아가야 할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왜 찾아야만 하는지를 또한 보여준다.

5.마무리하며
나는 카다레가 궁금했다. 한 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인간을 읽어내는 그의 시각이 나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그에게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조르그는 고꾸라졌다(325)" 나는 이 장면에서 거대한 조직과 관습과 법에 무력한 인간의 현실을 읽어 낸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역사나 조직을 채택한 이래 자연인들이 만든 조직과 문화체계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어처구니없지만 결코 웃어버릴 수 없는 이상한 실재다.

* 이스마엘 카다레, <부서진 사월>, 유정희 옮김, 문학동네, 2011
첨부파일 부서진 사월.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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