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는 무얼 말하고 있나

파멸의 시대에 새겨진 감정의 겹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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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영(woodway)등록 2013.09.12 20:25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 선언을 했다. 앞으로 토요일엔 휴식시간을 갖고 싶고, 10년간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은퇴작으로 알려진 영화 <바람이 분다>를 보고 실망하거나 불편하다는 평들이 많다.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무얼 보고자 했을까. <이웃집 토토로> 같은 캐릭터, 아니면 <벼랑 위의 포뇨>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기대했을까.

감독은 전작들과 달리 판타지적 요소를 과감히 버렸고, 주인공 역시 실존 인물인 호리코시 지로를 택했다. 그렇다. 그가 각본을 쓴 소인들의 세계를 다룬 <마루밑 아리에티>는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예술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기 모방일지도 모른다. <취화선>의 장승업도 그랬다.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릴 수는 없다"고 창조자는 그렇게 나아갈 뿐이고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왜 하필 호리코시 지로였느냐는 것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호리코시 지로(1903~1982)는 흔히 제로센(Zero Fighter)이라 불리는 일본 해군의 함상전투기를 설계한 인물이다. 태평양전쟁 초기 제로센은 미국 전투기를 압도하여 일본의 승리에 이바지했지만, 미국이 신형 함상전투기를 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공격에 사용되었다. 한 마디로 일본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 안고 있는 비행기인 셈이다.

지로는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 공학부 항공학과를 각각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츠비시 내연기제조(현 미츠비시 중공업)에 입사한 항공기술자로서 제로센의 설계주임이었다. 신미츠비시 중공업 고문, 도쿄대학 우주항공연구소 강사, 도쿄대학 공학박사, 방위대학교(National Defense Academy of Japan) 교수, 일본대학 생산공학부 교수를 지냈다. 한마디로 일본의 대표적인 엔지니어이자 지식인이다.

미야자키는 영화 엔딩에서 지로와 다쓰오에게 경의를 보낸다는 헌사를 남겼다. 지로와 동 시대를 살았던 호리 다쓰오(1904~1953)는 요양원에서 약혼녀를 사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인 소설 <바람이 분다>를 남겼다. 이 작품은 주인공과 그의 연인이 함께 지내며 죽음을 마주한 마지막 시간을 서로 깊이 사랑하면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절로 그려 낸다는 이야기이다. 감독은 처음부터 지로의 이야기에 다쓰오의 소설을 결합시키기로 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의 바람은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주는 사랑의 바람이다. 지로와 미래의 연인이 될 귀여운 나호코와의 만남도 바람이었다. 나호코가 바람에 날려가는 지로의 모자를 잡아주면서 그 인연은 시작되었고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던 나호코의 파라솔을 날려 지로를 다시 만나게 한 것도 바람이었다. 요양중이던 나호코가 지로를 만나러 눈밭을 뛰어갈 때도 바람이 불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곁에 있고 싶은 어쩌지 못할 격정의 바람. 두 사람은 그렇게 맺어진다. 이 영화에서 나호코의 사랑이 없었다면 어쨌을까.  

<바람이 분다>의 바람은 파괴의 바람이면서 전쟁 속 미친 바람이기도 하다. 지진으로 난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게 하는 것도 바람이다. 영화는 전투기들의 추락한 잔해를 보여준다. 날아가서는 한 대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지로의 대사는 파멸의 시대, 상실과 허무의 전언이다. 미야자키 스스로 인생의 선배라고 말하는 카프로니는 영화에서 '비행기는 멋있는 꿈'이라고 했다가 후엔 '비행기는 저주받은 꿈'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부탁하는 나호코의 환영과 목소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폴 발레리

"호리코시 지로는 군의 요구를 많이 받았지만 이것에 대항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죄를 업고 가야 한다. 전쟁에 가담한 제 아버지도 좋은 아버지였다. 그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지로가 맞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열심히 살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참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속의 지로는 순수하고 예의 바르고 다정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여인이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전투기 제작에 힘을 쏟았다.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나호코는 지로의 전투기가 완성된 것을 예감하며 요양원으로 떠난다. 그는 무엇을 위해 산 것인가. 그는 시대에 갇힌 채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웃집의 토토로>와 같은 작품으로 어린이들이 밖에서 뛰어놀길 바랐지만 결과는 빗나갔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오히려 아이들은 TV를 열심히 보게됐기 때문이다. 즉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고 좋은 결과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태평양 전쟁의 전범들도 제국주의자에겐 영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전과 평화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라면 우리는 단죄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무정부주의나 양비적인 자세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유태인이 학살당했던 당시, 그 불의에 침묵한 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친일파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삶이 슬픈 것이다.

현실 속의 지로는 그의 아들의 기억처럼 '제로센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요구를 받고, 심한 고생을 했지만, 마지막은 특공이란 너무나도 괴로운 추억이 들러붙은 비행기' 정도이다. 지로가 무슨 고뇌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영화 속의 지로는 비행기를 좋아하던 미야자키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으며, 지로의 전투기는 미야자키에게 애니메이션였을 것이다.

영화는 많은 논란처럼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경화하는 일본을 향해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눈은 사회적 메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정적인 풍경들과 인간의 섬세한 감정에 있다.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흔들리고 구름이 흐른다. 비가 오고 무지개가 뜨고 햇살이 순식간에 펼쳐진다. 인물들의 형상은 상투적이지만 그 인물들이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은 소품들과 배경이며 감정선을 연결시키는 것은 근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화법이다. '당신이 여기로 오길 기다렸어요' 나호코의 말을 빌려 우리를 초대한 것일까. 세계의 비밀을 보고자 하는 이라면 그가 그려낸 움직임 속에 명암을 보고 파멸의 시간에 새겨진 아름다운 감정의 겹무늬들을 봤을 지도 모른다.

'악역을 만들고, 악역과 싸우고, 악을 이긴다. 이것을 보고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얻고 만족한다. 이런 패턴들에 우리는 화가 난다. 뭔가 다른 길이 없을지 생각하고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은목서 잎들이 맹렬하다, 머지 않아 바람이 불고 하얀 향기가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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