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유죄선고 하루만에 9번째 위헌제청

검토 완료

정재영(jy830)등록 2013.07.15 11:34
7월 10일 대법원(1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7월 11일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김영식 판사)은 현역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병역 거부자 김모(21)씨가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양대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의 다수 의견은 유죄와 합헌을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 법규인 병역법 제 88조 제1항 제1호에 대한 법원의 위헌제청은 2002년 제청 이후 이번이 9번째이다. 민·형사 사건을 통틀어 이렇게 집요하게 판례 변경을 요구하는 위헌제청이 제기되는 사건은 양심적 병역거부뿐이다.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판례로 삼기에는 엉성하기 그지없다. 억지 논리가 반론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다수 의견의 기저는, 국가 안보가 지고지상의 절대적인 진리임을 전제로 한 후 합헌 논리를 펴고 있다. 최고의 가치인 안보 앞에 인권과 양심이 설 자리는 축소되다가 소멸된다. 그러나 하급심 법관들은 현실의 상황 논리에 근거한 노회한 법관의 다수 의견 보다 기본권의 신장에 초점이 맞추어진 최고 재판소의 소수 의견을 보다 더 헌법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고 재판소가 인권의 영역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확장시켜야 함에도 축소일변도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급심은 위헌제청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하급심의 위헌제청 결정문을 읽어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인 법원은, 국가 기관이 헌법 제 37조 2항의 "국가 안보와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문을 마치 똥파리를 잡을 때 내리치는 파리채처럼 사정없이 막 휘두르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형벌권이 남용되면 국민이 받는 상처는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법자는 야수의 속성을 가진 국가 권력이 제한권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법 조문의 후단부에서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해 놓았다. 모든 기본권에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핵심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는 이와 유사한 조문을 다 가지고 있다.

민주적인 문명국가일수록 법 해석을 할 때, 전단의 자구가 아니라 후단의 자구에 더 비중을 둔다. 대한민국의 병역거부자들은 해방 이후 70여 년 예외 없이 처벌을 받아 왔다. 살인범일지라도 극형으로 처벌하는 것을 재고해 보자고 하는 시대다. 그런데 살인과 폭력을 훈련조차 할 수 없다는 소수의 병역 거부자를 징역형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너무나 야만적이다.

대체복무로 이들이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출구를 마련하는 해 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국가가 그 의무를 방기할 때 사법부는 판결로 경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 재판소는 설득력 없는 판결로 국가에 의해 가해지는 폭력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아니 폭력을 계속 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2004년 이후 대법원의 판결문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다수와 소수의 의견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대립하고 있다. 소수 의견의 무죄 판결과 위헌 결정은 일관된 논거인 반면, 다수의 의견은 정치권력의 호불호를 반영하면서 상황 논리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법률 공부를 한 법관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권의 문제임을 모를 리가 없다. 2004년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신의 판사는 헌법학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판결했다고 했다. 다수 의견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먼저 내린 후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무리한 법리를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안은 법률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 등을 유죄 판결 이유로 들었다. 대법원의 해석대로라면, 공부를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권고이니 구속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말 안 듣는 아이가 떠 오른다. 매를 들어야 움직이는 건 고집센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착한 아이는 권고만 해도 실천을 한다. 이번 판결로 한국 정부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명확하게 해 주었다.

양보하여 '권고'라고 치자. 2006년을 시작으로 4회에 걸쳐 UN자유권 규약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의 처벌 관행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관보에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결정을 게재하는 조처만 취하고 있다. 꾸중하는 선생님 앞에서 히죽거리면서 반성문을 쓰고 있는 못된 아이의 모습이다 그러면 UN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결정은 단순한 권고에 불과한가? 분명 아니다.

국제 협약 체결의 실무 부서인 외교 통상부는 홈페이지에서 자유권 규약의 이행에 대해서 당사국이 취하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도덕적 구속력만을 가진 세계인권선언을 바탕으로 하여 법적 구속력을 가진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국제인권법으로 마련된 것이 각각 1966년에 채택되고 1976년에 발효된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B규약)' 및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A규약)'입니다."

이처럼 국내용과 대외용의 이중적 기준은, UN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인 한국 정부가 스스로 도덕성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제출한 이행보고서에서 '권고'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고 말 한 적은 한번도 없다. 국제 협약의 불이행에 대한 UN회원국들의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 보고서에는 '대체복무 편입 정책을 연구하는 중에 있다'는 식으로 부정직하게 대응하고 있다. 어느 때까지 위선적으로 행동할 것인가? 법원 따로, 국방부 따로, 외통부 따로, 인권이사국의 현재 모습이다.

또 판결 이유 중 '자유권 규약에서 병역 거부권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해석은 오만의 극치다. 자유권 규약 제 18제 1항을 두고 "도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UN회원국은 한국 정부가 유일하다. 자유권 규약의 규약 해석권은 UN자유권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한국 정부는 가입 당시에 이미 동위원회의 규약 해석 권한을 따르기로 동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위원회의 해석권을 부정하고 있다. 이뿐인가?

UN외교 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이중성은 뻔뻔하기 그지없다. UN인권이사회 산하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결정은 권고용으로 평가 절하하면서도 한편, 북한 인권과 관련하여서는 수시로 UN인권이사회 등에 결의문 통과 및 압력을 행사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혹 한국 정부가 북한이 더 인권친화적이고 감수성이 있는 국가라서 UN이 권고만 하면 즉시 따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하다.

UN자유권규약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의 처벌관행을 시정해 달라는 대한민국 병역거부자의 신청으로 인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매년 쌓이는 신청서는 UN 창설 이후 회원국들의 모든 개인 청원을 합한 것 보다 더 많다고 한다. 국제적인 망신이다.

이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그때가 올 때까지 매년 600명의 병역거부자 전원이 상고와 위헌제청신청으로 소신을 가진 법관의 양심을 계속 두드려야 한다. 자유권규약위원회에도 권리구제신청을 꾸준히 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국가폭력의 박해를 피해 병역거부를 인정해 주는 국가로 난민 신청을 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것이다. 받아들여진 후, 대체복무 법안이 통과되면 귀국해서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역수입도 가능하다. 7월 1일 시행된 난민법 제 19조 제 2항과 제 4항은 난민인정 제한 사유로 "국제 조약 또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서 정하는 세계 평화에 반하는 범죄, 전쟁범죄 또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나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로 되어 있다. 바꾸어 해석하면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는 난민자격승인취득의 최우선 사유임을 알 수 있다. 국내외의 공조가 필요하다. 권리는 찾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