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제로 6월정국 람세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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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sambory)등록 2013.07.01 13:32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6월의 정국에서
크리스티앙 자크 <람세스>를 읽어야하는 이유

조재호

책이란 참 묘한 것이 읽힐 때가 있다는 것이다. 람세스가 그랬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무척이나 오래전이다. 내 서고에 이 책의 1권이 꽂히던 때가 몇 년 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일상이 바쁘단 핑계로 서재를 멀리하다 우연히 책장을 바라보면서 골라낸 책이 람세스였다. 서재에 얼마나 오랫동안 꽂혀 있었던지 손에 먼지가 배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바로 사서 몇 장은 읽었던 모양이다. 평소의 버릇대로 책갈피 표시를 해 놓은 게 보였다. "람세스라 한 번 읽어 볼까." 하는 마음이 동했다. 한 번 책을 잡으면 몇 페이지를 읽다 눈이 어질어질 해 지면서 곧바로 책갈피를 표시하던 버릇이 있기에 다시 책꽂이에 꽂힐게 분명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어린 람세스가 고뇌하며 청소년기를 보내는 과정이 사뭇 나의 청소년기로 회귀 시켰던 까닭이다. 이집트 왕자의 청소년기는 반항의 시기였지만 야심을 키워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버지 세티 왕이 람세스를 시험에 들게 한다. 세티는 이미 장자 라세르를 왕세자로 책봉한 상태였지만 차남인 람세스를 파라오의 후보로 시험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 람세스는 갈팡질팡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버지 세티의 가혹한 시련에 대해 힘겨워했던 것이다. 그의 성장과정에서 나의 성장을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이던 지난 80년대 초반 난 무척이나 감수성이 예민해져 있었다. 손대면 곧바로 터져버리는 활화산과도 같았다. 그러나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학교 교훈이 극기였다. 나를 이겨라. 당시에 이 엄청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나를 이기라니 무슨 소리야 하고 혼자 끌끌 대기도 한 존재였다. 모든 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펼쳐져 나갔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해도 제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신체적으로 무척이나 쇠약했고 정신적으로도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 그럼에도 자존심하나만 전갈이 적을 보며 곧추 세운 독침처럼 하늘을 향해 치켜세웠던 것이다. 람세스는 궁을 빠져나와 시내로 가서 술을 마신다. 그의 평생 친구가 되는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왕자였지만 그는 동기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차기 파라오를 계승하리란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동기들 이지만 람세스는 이들이 먼 훗날 자신의 힘이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람세스가 청소년기에 맞이한 인간사슬은 동기들, 스승인 매형, 누나, 왕세자 라세르, 엄마인 왕비가 고작이다. 람세스는 친형인 라세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라세르는 교활한데다 이미 왕세자로서 지위를 공고히 한 상태라 람세스를 매우 홀대한다. 아마 라세르가 람세스에게 매우 자애로운 형이었다면 라세르는 세티를 이어 파라오에 올랐을 것이다. 이 당시 어린 람세스가 이런 한계적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사랑이다. 그것도 육체적인 사랑. 람세스 재위 기간 말기에 왕비가 되는 인물을 이 시기에 만난다. 열병처럼 청소년기의 사랑은 깊어만 가고 그럴수록 람세스는 무언가 허탈감을 갖는다. 청소년기에 왕자의 신분에, 경제적 자유로움에, 사랑까지 모든 것을 다 얻은 람세스지만 무언가 빠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임이었다. 라세르의 교활함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허탈함은 더욱 커진다. 람세스는 허탈함을 메우는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마침내 세티의 눈에 들어온다. 이집트는 당시 문명국이었으며 야만족과 화친을 맺고 있는 상태였다. 세티는 문명국의 파라오로서 이들의 반란에 대해 마하트 법률에 의거, 정벌에 나서게 되며 여기서 람세스는 기적에 가까운 용맹을 떨치게 된다. 드디어 라세르와의 경쟁상대가 된 것이다. 세티는 영면하게 되고 람세스는 파라오가 되지만 라세르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작가는 최대한 라세르를 교활하고 영리하게 그려 놓고 있다. 람세스가 이 파도를 넘어야만 하도록, 쇠를 강하게 하기 위해 담금질을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람세스가 파라오가 되던 해 나일강이 넘치며 신비의 새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람세스는 자연의 기적을 통해 라세르의 야욕을 깨버린다. 람세스의 위대함은 항상 기적이 동반한다. 기원전 2천년의 세계를 작가가 상상으로 써내려가기에 이처럼 좋은 칼은 없었을 것이기에. 하지만 언제나 독자의 눈을 떼놓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 둔다. 이 책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불행히 이 무렵 서재에 꽂힌 람세스의 책은 바닥이 났다. 이 책은 무려 5권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서재에는 2권에 불과했다. 나머지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생각을 거듭했다. 인간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일까.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류를 보면, 또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등에서 현실을 기반으로 추측하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자유이며 외연의 확장태라는 것을 쓸쓸하게 뇌까렸다. 왜냐하면 내게는 없는 자질들이므로. 람세스는 신도시를 건설한다. 책임자로 친구인 모세를 임명한다. 구약의 주인공 모세. 이집트의 유태인을 모두 데리고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는 선지자 모세 말이다. 헉, 람세스와 모세. 이 작가가 이집트 학 대가라고 하더니 정말 대단 하구나 모세를 자기의 소설에 등장시키다니 말이다. 구약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 모세는 신적인 존재가 아닌가. 그런 인물과 람세스가 친구였다니 하고 적잖이 놀랬다. 모세와의 만남과 배신, 헤어짐, 용서의 과정은 이 책의 상당부분 할애된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다. 물론 픽션이겠지만 사실처럼 읽힌다. 람세스의 재위기간은 평화롭지만 평화만 가지고 5권의 소설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세르는 언제나 람세스를 돋보이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외무부 장관으로 람세스의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파라오의 자리를 암중모색하게 된다. 이집트와 당시 맞설 수 있던 대국은 시리아. 지금의 터키이다. 몇 년 전 터키의 이슬탄불을 다녀 온 경험이 있어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 곳이다. 라세르는 시리아 첩자와 관계를 맺고 람세스를 궁지에 몰아넣지만 그것은 언제나 람세스가 극복할 정도이다. 흑마술을 사용하는 첩자를 상대하지만 람세스는 신전 건축을 통해 신의 힘을 빌려 언제나 이를 넘어서곤 한다. 시리아와의 전쟁에서도 람세스는 기적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그리고 이집트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시리아와의 화친을 맺는데 성공한다. 국가 간 힘의 균형에서 작금의 한중일 삼국의 영유권 분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국방력과 외교력, 그리고 지도자의 냉정한 형세판단이 현 시점의 최대 화두가 아닌가 보인다. 람세스가 재위 기간 50년을 평화롭게 지켜온 것은 문명국으로서 국민을 사랑했고 귀족의 권위를 최대한 억압한데 있다. 그리고 국가 간 분쟁에 있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마하트 법의 제대로 된 인식에 기반 한다. 극우화 된 일본, 풋내기 독재자의 핵장난 속에서 현재 한국의 정세는 람세스의 지혜가 절실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덮으려 NLL 물타기 전략을 펼치고 있는 새누리당과 한국의 우파들에게 람세스를 꼭 읽어보도록 조언하고 싶다. 만일 이 상황에서 람세스가 한국에 재림한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의 인물, 람세스가 보여줄 기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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