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직업의 제도적 차별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한무제의 상인정책이 오늘날 시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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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옥(qkrruddhr)등록 2013.06.11 08:53
중국 역사에는 상인들이 부당한 탄압을 받은 일이 많다. 돈은 있지만 사회적인 힘은 없는 상인들은 국가가 큰돈을 필요로 할 때 만만한 대상이 되었던 탓이다. 재산이 많은 만큼 한 명당 일반 백성보다 훨씬 많은 돈을 걷을 수 있었고, 추가세금을 물리거나 재산을 압수할 때 상인만 대상으로 하면 상인이 아닌 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의 반감을 살 일도 딱히 없었던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업 자체를 억압하는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나라의 무제는 철저한 상인억압책을 실시했다. 상인 호적을 따로 두어 국가에서 허가하고 명부에 등록시킨 자만 상인이 될 수 있었고, 상인 호적에 올라 있지 않아도 재산을 신고해야 했다. 상인은 재산 2천전마다 120전의 세금을 내야 했는데, 일반인보다 훨씬 세율이 높았다. 그 외에 상인이 아닌 자는 수레 1대마다 120전의 세금을 내는 데 비해 상인은 수레 1대당 240전의 세금을 내고, 배 1척마다 따로 120전씩의 세금도 물렸다. 상인이 국가에 보고하지 않고 숨긴 재산이 있으면 전 재산을 몰수했고, 고발하는 자에게는 몰수한 재산의 절반을 포상으로 내렸다.
한무제와 관료들은 백성이 어렵게 사는 것은 상인이 백성을 핍박하고 착취하기 때문이라 여겼고, 상인들을 억압하면 그만큼 백성의 처지가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인 억압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처벌받은 상인과 몰수된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한무제의 전방위적인 상인억압정책은 상인들이 엄벌을 두려워하며 보다 양심적으로 물건을 사고팔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상업 활동 자체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소규모 상인들은 상인 호적에 이름을 올리기도 힘들어, 물건을 사고팔 수 없는 경우가 속출했다. 대규모 상인들은 재산을 상업에 재투자하여 수준을 향상하는 데 도모하기보다, 상인에게 특별세를 걷지는 않는 품목인 부동산, 사치품 등을 사는 데 주력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한무제의 정책은 상업자본이 사회에서 선순환되는 대신, 부동산 확보에 묶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중평이다. 또한 포상금이 지나치게 높으면 포상금을 노리고 허위고발을 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인데, 한무제 때의 상인 은닉재산 몰수 정책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지라, 두려움에 떤 상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면 사회 전반의 활력을 저하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착실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것보다 남의 트집을 잡거나 모함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후자에 솔깃할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무제는 상인이 백성에게 물건을 강매하고 착취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산하는 물건을 사들여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재산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세금을 물리는 것이라면, 납득은 했을 것이다. 정책이란 만족할 수는 없을지언정 납득은 할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정책은 결코 안착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한무제는 상인의 재산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재산이 많으니 억압당해 마땅하는 식의 논리를 기초로 하여, 상업이라는 직업 자체를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상인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세금과 가혹한 대우를 감내하게 만든 것이다.
특정 직업을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부정행위 없이 정정당당하게 직업 활동을 하는 이상 절대 용인될 수 없을 일이다. 설사 그 직업이 많은 돈을 버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억압당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처럼 제도적인 차별 역시 없어야 마땅하다.
또한 어떤 직업이건, 그 직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특정 직업을 탄압하는 것은 그 직업의 활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한무제의 상인억압책이 상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상업자본이 부동산과 사치품에 몰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자본의 선순환을 막아버린 것은, 상인을 통해 물건을 사고팔던 백성들에게도 많은 불편과 악영향을 초래했을 개연성이 높다.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는 특정 직업을 지목하며, 그 직업만 사라지면 사회 환경이 당장 개선될 것처럼 말하는 논리가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자본을 무턱대고 억압하면 대자본이 억압을 덜 받는 분야로 빠져나가고, 자본 투자 및 순환 대신 세금을 덜 내는 품목으로 몰리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 역시 오늘날에도 많은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나라와 사회는 많은 요소가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구조물이다. 그렇기에 한 가지 요소를 없애거나 도입했다고 사회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마녀가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라며, 특정 여성을 지목하고 처단했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다. 원흉으로 지목된 것이 특정 직업군이라면 더한층 부당한 일이 된다. 법을 어기지 않은 이상, 어떤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식적인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일이 될 수 없다. 사회정의에도 어긋나고, 사회적으로도 좋지 않은 결과로 직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한무제 시기의 상인처럼 권력이 없어서 만만한 대상으로 지목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는 비단 한나라 시기의 고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 전반에서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한무제의 상인정책과 그로 인한 결과는, 비단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직시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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