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이 가져올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기대

'소매 걷어부치고' 진행될 미중 두 정상간의 개인적 대화를 지켜보는 국제적 시선

검토 완료

박기용(gideonpky)등록 2013.06.06 17:32
 미국과 중국의 비공식 정상회담이 6월 7일과 8일, 미국시간으로 이번 주말인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 미국 캘리포니아 휴양도시에서 열린다.

왜 오바마 - 시진핑은 양자간 첫 정상회담을 워싱턴이나 베이징이 아닌 캘리포니아 휴양지에서 열까?

명실상부하게 G 1 과 G 2 로 자리매김한 미국과 중국이 산적한 국제현안에 대해 마음을 열고 진지한 대화를 가져야한다는 필요성,  새로운 양자관계 구축의 시급성에 대한 동감, 시진핑의 정치적 야심 및 실용주의, 양국 두 정상의 대화술에 대한 자신감 등이 이번 미중 비공식 정상회담을 태동시킨 배경이 될 듯 싶다.

2년전 오바마-후진타오의 워싱턴 정상회담은 국빈방문, 백악관 만찬, 21발의 축포 등 외형은 화려했으나 민감한 상호관심사를 심도있게 논의하기 보다는 양국 실무진들이 준비한 자료를 읽는 데 더 치중했다.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정상회담에 임했던 후진타오는 미국대표단이 아닌 자국의 대표단을 향해 발언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었고, 화려하고 격식에 얽힌 정상회담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두 나라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이번 미중정상회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도 내심 기대하는 바가 클 듯 싶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오바마는 그의 측근에게 후진타오와 십여차례가 넘는 회담을 가졌지만 후진타오의 알맹이 없는 두루뭉실한 발언에 -특히 북한핵문제 해법을 촉구했을 때 - 좌절감을 맛볼 때가 많았음을 토로했다고 한다. 장쩌민 등 원로그룹의 간섭, 태자당의 견제 등으로 권력기반이 확고하지 않았던 데다 개인적 기질까지 더해진 탓일게다. 그러나 시진핑은 전임자와 달리 국내적으로 권력기반을 빠르게 다져가고 있고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번 주말 오바마를 만나서 자신의 속내를 어느 정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번잡한 의전을 다 걷어내고 두 정상이 '소매를 걷어부치고' 현안을 논의하는 비공식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주제는 북한핵,중국의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 중국의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 및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 ,미중 무역역조 등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코 앞에 닥친 현안 뿐 아니라 글로벌 리더쉽을 둘러싼 두 나라의 보이지 않는 각축과 협력, 또한 원만한 세계경영을 위한 밑거름이 될 두 정상의 친밀한 개인관계형성 등이, 눈에 보이는 협상 테이블이 아닌 두 정상의 두뇌를 사로잡을 묵직한 현안이 될 것이다.

미국의 진보진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전문가 케네스 리버탈은, 뉴욕타임스 및 LA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휴양지에서 편안하게 전개될 미중정상회담은 두 정상에게 상대방을 개인적으로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회담의 성공이 미리 예정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미중관계는 어려움에 직면해있으며 따라서 일반적이고 관례화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을 두 정상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시진핑이 오바마와 만나 세간의 이목에서 잠시 벗어나 허심탄회하게 개인적 대화를 성공적으로 공유해낼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얼마전 미국 재무장관 류(Lew)을 접견한 자리에서 시진핑은 talking points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실무진이 작성한 대화의 요점들) 를 제쳐두고 얘기를 나눠 그를 놀라게 했다. 이번 주말 정상회담을 사전 조율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황제를 상징하는 듯한 큰 의자에 앉아 의전적으로 그를 맞이하는 대신 테이블에 마주보고앉아 실무사항을 곧바로 체크했다고 한다. 이러한 시진핑을 두고 미국 외교가에서는, 강한 지도력과 아울러 상식에 입각해 일을 풀어나간 덩샤오핑을 연상시킨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죠지 슐츠는 "중국은 미국과 대립적 관계가 아닌 건설적인 관계를 희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측에 전달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미중 정상회담을 낙관했다.

랜초 미라지는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차로 두 시간  가량 동쪽으로 쭉 달리면 나온다. 인근에 팜 스프링즈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풍광과 기후가 좋은 곳은 일반적으로 태평양 연안을 끼고있는 서부해안지역이다. 이곳에 대부분 인구가 몰려있다. 그런데 랜초 미라지는 해안선에서 차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동쪽 내륙쪽으로 들어간 사막지역이다. 이곳을 골프휴양지로 개발한 것이다.  주변에 역시 골프 휴양도시로 유명한 팜 스프링스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이 있다., 2차대전이후 각광을 받기시작한 랜초 미라지 안에 있는 '서니랜즈'는 - 200 에이커 규모 -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명사들을 위한 프라이빗 오아시스라 할 수 있다. 사막이지만 주변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밥 호프,게리 쿠퍼 등 일세를 풍미했던 인기엔터테이너들이 공화당 출신의 닉슨,포드,레이건 대통령들과 사교모임을 가졌던 공간이다.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단골고객. 캘리포니아 출신 레이건 전 대통령이 특히 좋아해 거의 살다시피 했던 곳이다. 서부의 '캠프 데이비드'라는 별칭이 있다. 바로 이 곳에서 이틀간 미중 정상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번 이틀간의 미중정상회담은 각료 및 참모들 없이, 그리고 언론의 이목으로부터도 벗어나 편안한 분위기에서 많은 대화를 나눌 것으로 기대가 되고 있다. 최소한 6시간 이상 갖게 될 두 정상간 대화는,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대화내용이 극도로 제한된 일반적인 정상회담과 달리 폭넓은 주제에 대해 각 정상의 정치적 식견과 안목이 자연스레 잘 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제 막 국제무대에 새롭게 얼굴을 내민 초강대국 중국의 지도자가 심중에 어떤 야심과 외교적 복안, 세계경영의 복안을 갖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두 정상이 아주 친밀하게 개인적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두 정상의 대화에 끼여들 통역이 필요하며 시진핑의 부인 펑 리위안은 이번 미국방문에 동행하지만 미쉘 오바마는 함께 하지 않는다. 시진핑 부부는 랜초 미라지 서니랜즈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한다. 인근 하이야트 호텔에 머물 게 되는데, 미국측 도청을 우려한 조치라고 알려졌다.

미중 정상이 딱딱한 사무공간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만남을 가졌던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중국의 장쩌민 주석은 텍사스 크로포드에 있는 부시 대통령의 목장을 찾았다. 그러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장쩌민은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퇴임하기 직전이었고, 8년에 걸친 집권기간중  2년차에 접어든 부시는 이제 막 그의 시대를 열어가던 때였다. 한 시간 가량 가볍게 환담하고 부시가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목장을 둘러보고 바베큐를 먹고 기자들 앞에서 사진찍고... , 글로벌 헤게모니를 둘러싼 숨막히는 '수 싸움'의 현장이라기보다 미중관계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예고하는 상징적 행사였다.

지난 10 년간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는 미국으로 하여금 격세지감을 실감케 할 것이고 따라서 오바마에게 시진핑은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이다.

전 CIA 중국전문가이자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 크리스토퍼 존슨은 중국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외교행보를 이렇게 설명한다. " 자 봐라, 우리는 우리식의 외교게임을 펼치려고 한다. 우리는 미국과의 좋은 관계설정을 원하지만 미국 없이도 얼마든지 외교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제프리 베이더는 이렇게 말한다.  "시진핑은 비공식적 자리에서 협상하는데 능한 인물이다. 전임 지도자들처럼 실무진이 미리 작성한 자료를 읽는 것을 선호하거나 사전에 짜여진 시나리오가 필요하지 않다."

분석가들은 시진핑이 사전에 리허설을 하지 않는 오바마와의 비공식 실무회담에 응했다는 점에서,  그가 세계 최고 지도자인 오바마와 같은 토대위에서 밀고 당기기식 협상을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의 이미지를 - 거칠게 말해 오바마와 맞장을 떠도 전혀 밀리지 않는 지도자의 듬직한 인상을 - 중국인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베이징의 저명한 경제학자 마오 유쉬는, 전임 지도자 후진타오가 공산당내부의 입지가 약했던 반면 시진핑은 공식적으로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오른 이후 빠른 속도로 중국공산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나가고 있는 매우 강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도 '새로운 유형의 초강대국관계'를 형성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시진핑 역시 이 부분을 직접 거론했다. 미중 정상회담 준비차 중국을 방문한 백악관 안보보좌관 톰 도닐론을 대면한 자리에서 시 주석은 "미중 양국관계는 지금 중대한 국면에 놓여있으며, '새로운 유형의 초강대국관계'를 향해 나아갈 시점"이라고 밝혔다. 물론 미중양자간 새로운 관계가 무엇인지 손에 잡히는 건 아직 없다. 워싱턴에 있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니콜라스 라디는 "미중 양국 모두 '새로운 형식의 초강대국 관계'가 구체적으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개념을 명확히 하기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려는 시점이어서 실체성의 그림은 아직 흐릿하지만 오바마 - 시진핑 두 정상을 통해 미중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어떤 점에서 보면, 미중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해지고 있다. 양국간 무역과 기술협력은 유례없는 규모를 자랑하며 학생 및 관광객들의 방문도 증가추세다. 양국간 무역규모는 지난해 5,350 억달러 (한국돈으로 600 조원 가량) 로 지난 10년간 세 배 이상 커졌다.

양국간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갈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미중 무역역조현상이 미국기업의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수출기업에 대한 중국정부의 보조금 지급 및 지적재산권 침해가 주요 원인이라는 시각이다. 정상회담에서 오바마는 중국정부의 이같은 불공정 무역관행의 시정을 요구할 개연성이 크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불만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미국의 외교정책이 불편하다. 오바마행정부의 '아시아를 축으로 하는 안보전략'이 결국 중국을 포위하거나 봉쇄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국의 10 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 시진핑의 등극, 그리고 앞으로 4년여 미국을 더 이끌어나갈 오바마, 기존 질서의 상징인 미국, 그리고 이제 새롭게 G 1 을 향해 떠오르고 있는 중국, 두 초강대국을 대표하는 이 두 정상은 모두 양자간의 새로운 관계를 조속히 정착시킬 시급성에 직면해있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상대방에 대해 중대한 '전략적 도전'이자 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동반자' 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때문이다.

이에따라 두 정상이 이례적으로 휴양지에서, 정상간 첫 대면에서부터 소매를 걷어부치고 허심탄회하게 현안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동시에 개인적 차원의 소위 '화학적 결합'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미중 비공식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교관의 하나로 기록될 헨리 키신저는 그의 저서 '외교 (Diplomacy)' 에서, 인류역사상 국제관계에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이 유지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론을 지금 외교무대에 적용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사이좋게 국제사회의 패권을 나눠 가지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미국과 중국은 앞으로 어떤 경로를 걷게 될 것인가? 일정한 주기로 패권국가가 등장하고 사라진 역사가 증명하듯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중국의 시대가 힘차게 떠오를 것인가? 이 두 나라는 파열음을 내며 경쟁하다가 국제사회에 큰 상흔을 남길 것인가?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두 정상은 서로간의 만남을 통해, 세계의 정치지형을 한 단계 고양시킬 지혜로운 청사진을 우리 모두에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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