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공자는 시장에서 술을 사지 않겠다고 말했나

고대 중국 기록으로 바라본 국영과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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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옥(qkrruddhr)등록 2013.06.03 11:06
 중국 4서3경 중 서경, 역경과 함께 3경으로 꼽히는 <시경>에는 '無酒?我'라는 구절이 있다. 술을 마실 일이 있는데 술이 떨어지면, 술을 사오겠다고 자청하는 내용이다. 또한 4서3경 중 대학, 맹자, 중용과 함께 4서로 꼽히는 <논어>에는 '?酒不食'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시장에서 사온 술은 먹지 않겠다는 뜻이다. 요컨대 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술이 없다 해도, 시장에서 술을 사오지는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경>은 기원전 6세기 이전의 저술이며, <논어>의 공자는 기원전 500년경 활동한 인물이다. 그런데 술에 대해 판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차이는 비단 화자가 다르다는 것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중국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측면이 크다.
고대 중국에서 술은 단순한 음료수나 기호품이 아니었다. 복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거나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술이 있어야 했고, 쇠약한 사람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하여 의약품으로도 사용되었다. 요컨대 일반적인 의미의 생필품은 아닐지언정, 사회적으로는 필수품으로 여겨지던 품목이었다.
<시경>이 쓰인 주나라 때에는 국가가 술을 제조하고 판매했다. 국가행사에도 종종 쓰이는 사회적 필수품을 국가가 관장하는 것이니만큼 품질은 엄정히 관리되었다. 옛 기록에 주나라 시기 관청에서 제조, 판매, 유통을 담당했던 술을 두고, '조화롭고 맛이 있어 서로 권할 만하였다.'라는 구절이 전한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가 되면서 상황은 일변한다. 천하를 두고 여러 세력이 다투는 형국이 되면서 일원화된 중앙권력이 붕괴하자, 자연히 국가가 술의 제조와 유통을 전담하던 구조도 무너진 것이다. 이 때에는 민간에서 술을 만들고 팔았는데, 빈약한 재료로 무성의하게 제조한 술이 많아, 서로 의심하느라 마음 놓고 술을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관건은 술이라는 품목 자체가 아니라, 고대 중국의 술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실상 단일품목인 동시에, 중대한 목적에 사용되던 필수품의 성격을 지닌 물품이라는 것에 있다. 선택의 여지가 많고 취향과 기호가 다양하며 필수품목이 아니라면, 민간에서 독자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보다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품목이 보장되어야만 하며, 사실상 필수품으로 여겨지는지라 선택의 여지가 좁은 품목이라면, 일괄적으로 관장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나라 단위로 대대적으로 관리하려면, 단연 국가가 그 일을 맡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보다 품질과 원칙을 우선할 개연성도 높고, 사회 전반과 직결되는 일을 국가가 관장하는 것이니만큼 당위성도 있다.
제조 및 판매망이 대형화, 일원화되면 품질이 고정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관건은 이 상황을 발전 없이 정체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품질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보장되는 것으로 여기느냐는 것이다. 동일한 성격이 상황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술은 단연 후자에 속했다. 오늘날의 술은 후자보다 전자에 훨씬 가까운 물품이 되었지만, 사회적으로 후자의 성격을 띠는 물품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다. 그렇기에, <시경>과 <논어>에서 술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날 단순한 옛이야기 이상의 시사점을 지닌다.
불매하려면 얼마든지 불매할 수 있는 품목이라면, 민간에서 제조하고 유통한다한들 하등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발전의 동인이 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비자가 사지 않으면 그만이고, 자연히 판매자는 소비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게 된다. 하지만 필수품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아무리 품질이 나빠도, 아무리 터무니없는 가격이 매겨져 있어도 살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일반 서민의 손해로 이어지게 된다. 춘추전국 시대 시장에서 파는 술이 아무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한들, 스스로 술을 만들어먹을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 선택지는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전술했다시피 고대 중국의 술은 단순한 음료수나 기호품이 아니라 대체품 없는 필수품이라, 의식 등 여러 행사를 치르려면 술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불만을 터뜨리지만, 결국에는 그 품질의 제품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술 이야기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것은, 술은 국가가 제조하고 유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늘날의 술은 사회적 필수품이 아니라 개인적 기호품이며, 다양한 종류가 있고 대체제도 많은 품목이기 때문이다. 이런 품목이 국영으로 운영되면, 종류가 고정되고 품질도 발전 없이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대 중국 사회의 술이 그랬듯이, 기본적인 의미의 의식주에 속하지는 않을지언정, 현실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품목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그런 품목은 국가가 전담하고 관리하여, 일정 수준 이상을 보장하는 품질의 제품을 적정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고 모든 수요자가 고루 효능을 누릴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필수품을 민간에서 관장할 때, 실질적 필수품이라는 것을 믿고 품질을 떨어뜨리거나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버리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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