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혈액형 신도'입니까?

혈액형 분류가 가져오는 사회적 편견과 소통장벽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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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용(gideonpky)등록 2013.05.25 15:41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해서 사람을 판단하려는 시각, 이른바 'blood type personality'의 대중적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전 세계적 현상은 아니다.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 그렇다. 서양사람들은 혈액형에 대해선 잘 모르며, 별자리와 운세를 연결하는 일종의 점성술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점성술 (horoscope )은  일종의 재미일 뿐 한국과 일본사회에서 나타나듯 혈액형이 성격과 인간관계,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따위의 거대한 신념체계는 아닌 듯 하다.

혈액형별 인성분류의 원조는 일본이다. 백 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관련 연구소도 있다고 한다. 혈액형을 다룬 책들은 항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고 한다. 얘기는 매우 그럴 듯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지만 과학적,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학자들은 혀를 차지만 대중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blood type personality 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전에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정신분열증적인 심리상태라고 말한다면 너무 도발적인가? 한국인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목을 놓아 규탄하고 있고, 또 일본에 대해 민족심리적 우월감을 갖고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대중문화는 여전히 일본의 식민상태를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일본문화의 아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밑그림과 원자재는 일본의 문화요소이기 때문이다.한국의 수출기업들이 높은 실적을 올리면, 한국기업에 기초원자재와 원천기술을 제공하는 일본기업들은 가만히 앉아서 큰 수익을 올리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티비드라마, 영화는 대체로 일본 작품의 복제품 또는 번안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책은 한국출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저작이 빈곤한 한국에서는 출판사들이 호구지책으로 일본책을 번역해 독자층을 유인하는 게 다반사이다. 한국 지식인들의 정신문화와 지성의 7할은 일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일본책을 번역하는 게 나쁘다라는 얘기가 아니다. 과도한 편중현상을 우려하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일본문화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실 변방에 불과하다.국제문화의 중심에서 멀치감치 떨어져 있는 한국과 일본, 이 두 나라가 자국민 외에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바탕으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우물안 개구리라고 표현한다면 한국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질까?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던져질 수 있는 돌팔매질이 사실 두렵기도 하다. 또 있다. 퇴폐적이고 변태적이며 상업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성문화와 섹스산업. 일본의 사회적 유전자의 복제판이다.

한국인들이 한국적이라고 믿는 인식체계의 밑바탕에는 일본문화가 구렁이처럼 또아리를 틀고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한다. 사실상 일본문화의 거대하고도 강력한 자기장 영향아래 있으면서도, 그 유사문화를 만들어내고 즐기면서도, 우리는 일본과 다르다고 외치는 것의 공허함...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역설하는 많은 한국인들. 혈액형에 대한 믿음은 혹세무민하는 현대판 정감록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조잡하고 저열한 '혈액형 신앙'이 미신과 잡신이 횡행하는 일본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나는 좌절한다. 일본문화에 너무 오랫동안 순치된 탓일까? 왜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무당굿하는 듯한 역겨운 '혈액형 신앙'에 대해 한국인들은 근대적 합리성의 잣대로 걸러내는 일을 소홀히 하는가? 참으로 알 수 가 없다.

사람의 신체적 특질 또는 성격적 경향 등을 판단하기위해 어떤 사고의 틀을 만들어내고 그 틀로 개개인을 평가하려는 시도는 기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기초로 몇 개의 category를 설정한 뒤, 다양한 인간군상이 그 중 어떤 범주에 속한다고 판단하면 인간에 대한 분류작업이 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4가지 혈액형에 따른 분류외에이제마의 사상의학 -태양,태음,소양,소음- , 12지간에 따른 성격분석 - 개 띠는 이렇고, 범띠는 저러하며 소띠는 또한 이러하다는 등 - , 서양인들의 별자리운세, 주역의 64괘 등이 동일한 인식체계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체와 성격의 특징, 이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미래예측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이러한 사고의 tool 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흥미롭기도 하다. 무용지물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녀, 거주하는 지역의 풍토와 정치경제적 상황, 각 개인가정의 경제사회적 배경, 시대에 따른 차이,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개인의 신체적,지적,교육수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엄청난 차별성과 복잡성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또 그러한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심리적,지적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지나친 '환원주의'는 경계해야 마땅한 것이다.

이제 구체적 사례를 들어서  혈액형을 둘러싼 '신화적 담론' 과 그 '사회적 폐해'를 살펴보자.

2011년 3월 일본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 이후 복구과정에서 재건업무를 담당하던 각료 마츠모토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피해지역 지자체에 대해 "구체적 아이디어 없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기만 하면 지원하지 않겠다"라고 발언함으로써 커다란 국민적 분노에 직면했고, 결국 각료 취임후 며칠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됐다.
재미있는 일은 그 때 마츠모토가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진심과 달리 주변과 마찰이 생긴 것을 그의 혈액형 탓으로 돌렸다. 일본에서  B 형은 신경질적이고 충동적이며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오해를 유발하는 성격으로 알려져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일본에서의 혈액형분류는 단순한 사회적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신앙체계의 위상에 올라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츠모토의 논리대로라면  B형에 속한 사람들은 주요 공직이나 구설수가 우려되는 직책을 맡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에서 대통령 수행중 개망나니 짓을 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떠오른다. 이 양반도 자신의 소행을 혈액형 탓으로 돌렸으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일본처럼 '혈액형 신도'들이 즐비한 한국 땅에서 관대한 국민적 이해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경우 - 한국도 비슷하긴 하다 - A형, B 형, AB형, O 형 가운데 유독 B 형을 나쁜 유형으로 지목하면서 일본어로 말하자면 '이지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4가지 혈액형이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유독 B 형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본에서는 취업인터뷰시 혈액형을 묻는다고 한다. 도대체 혈액형과 업무수행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굳이 추정하자면, 조직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믿어지는 혈액형을 솎아내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좋게 본다면 혈액형에 맞는 직군에 배치하겠다는 생각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직장에서의 따돌림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아이들끼리 혈액형을 확인한 다음 왕따의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일본은 이처럼 혈액형을 둘러싼 사회병리적 현상을 '부루 -하라' (영어의 blood 와 harassment를 줄여서 붙인 일본식 명칭) 로 부른다.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한 비합리적 집착이 불러온 비극이다.

일본과 한국 모두 결혼을 위한 맞선, 또는 연애시 혈액형이 중요한 판단근거가 되고 있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행복한 결혼을 위한 수많은 변수들 예컨대 본인의 결단과 헌신,이해심,파트너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판단,다른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형성을 위한 노력 등 근본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혈액형이라는 단 하나의 지표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처리하는 시도의 과감함을...

한국은 일본처럼 광적이진 않지만 일본의 문화적 영향으로 혈액형이 성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는 듯 하다. "안 믿고 싶고 무시하고 싶지만 신기하게도 딱 맞는 오묘한 혈액형의 비밀!" , 한국사회가 혈액형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수년전 한국에 이런 영화가 있었다. 'B형 남자친구'.  B 형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열된다.  고집쟁이,자기중심적,독자적인 아이디어는 짜내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은 귀찮아함, 자신만만함, 아무렇지도 않게 규칙을 깨고 나중에 후회함 등등. 혈액형에 대한 세간의 근거없는 믿음을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영화의 흥행을 도모하고, 또한 재귀적으로 이 영화가 혈액형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을 확대재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

눈치빠른 독자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으리라 믿는다. 혈액형 운운하는 사고체계 속에 내재된 인간에 대한 편견, 인종주의의 음습한 그림자.
일본에서 혈액형에 대한 논의는 일본의 식민지 개척과정에서 이뤄졌다. 1930년과 31년 대만Taiwan에서 일본의 지배에 거칠게 대항하는 분노가 표출, 수백명의 일본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보고 동경 여자대학 후루카와 교수는 혈액형 분석을 통해 기묘한 결론을 끌어냈다.
그는 논문에서 대만의 포모산족에는 O형이 40 % 가 넘기때문에 반항적이며, 홋카이도 아이누 족의 경우 O형이 24% 에 불과해 순응적이라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대만에서는 국제결혼을 통해 O형의 비율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책적 제언까지 하게된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점이 드러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이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에 이르러 마사히코 노미 -변호사이자 방송인,의학적 지식이 부재한 인물- 에 의해 혈액형 분류가 일본사회에 재점화된다. 심리학자들은 비과학적이라며 비판을 들이댔지만 대중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과학을 빙자한 인종주의' 의 복선은 후루카와에서 마사히코 노미로 연결되는 혈액형 논의의 중심테제가 됐다.

우리가 심심풀이 농담처럼 치부했는데 어느덧 부지불식간에 사람을 평가하는 강력한 인식체계로 자리잡은 혈액형 분류의 괴물... 그 안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을 치고 편견을 조장하고 사회적.인종적 편견을 합리화하는 악마가 숨어있다고 말한다면, 침소봉대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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