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 하얀 마스크 1

일류대학과 홍콩의 디즈니랜드 경력에다가 우수한 영어 실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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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승(gnsnglee)등록 2013.04.10 11:22
언어를 쓰는 인간은 그 언어가 현상하고 내포하는 세계를 궁극적으로 소유하게 된다....  자신의 문화적 기원의 피살과 매장 때문에 열등 콤플렉스를 스스로 조장해왔던 식민지 민중들은…….  식민모국의 문화적 수준을 자신이 어느 정도 전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밀림의 신분을 초월하기도 하고 매몰되기도 한다.
식민지인은 자신의 원시성의 폐기를 통하여 백인화 되어 가는 존재인 것이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마스크> 중에서

중국, 잠비아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국내봉사단체 소속으로 탄자니아로 떠나게 되는 우리 팀원들은 12명이었고,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라면 다 그렇듯이 여러 문제로 시끌벅적하였다.
그리고 간만에 한국 사람들과 섞여 살다보니 새삼스럽게 내가 마흔이 넘은 남자임을 깨닫게 된다. 사라져 가는 조선 왕조의 유물일 유교적 가치관과 가부장주의가 얽혀 나타나는 나이든 남자에 대한 예의는, 묘하게도 면전에서는 '네, 네' 하면서도 어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불편함으로 나타난다. 이삼십 대가 대부분인 여자 팀원들과 사십대의 남자 사이엔 서로를 구분하고 규정하는 벽이 존재하였는데, 낯선 타인들이 만나 미리 성별과 나이에 따른 역할을 요구한다면 서로간의 대화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한국 사회의 세대별 가치관의 차이라고 말하기 전에 소통의 부재라고 함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모여 나타나는 경쟁과 대립의 모습들이었다.

봄날 유채꽃밭 사이로 줄지은 사람들 봉사활동차 머물렀던 중국 운남성 하이웨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리를 보수하러 흙을 나르고 있다 ⓒ 이근승


국제NGO 중국지부에서 활동할 당시, 소피아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동료가 있었는데, 자기소개 시마다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중국 4대 유명 대학의 하나인 충칭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홍콩 디즈니랜드 홍보팀장으로 근무…….'
태반이 고만고만한 다른 이들의 소개 사에 묻힐까봐서인지 '충칭대학'과 '홍콩 디즈니랜드'를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결연하다. 이미 자본주의의 절정을 치닫고 있는 21세기 중국이란 공간에서 새로운 신분제도일 명문대학이라는 학벌과 홍콩이 가진 발전과 선진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낡은 구시대와 대비되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버터 냄새가 풍기는 디즈니랜드란 어감이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임을 잘 아는 영악한 사람인 셈이다.

세상을 통합과 포용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경쟁과 대립을 통한 생존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소피아는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도드라지게 보일 수밖에 없었고, 드러난 모습으로 평가받기 마련인 여느 세상살이처럼 이내 팀원들을 대표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또한 그녀의 이력을 동경하는 소수의 팀원들이 그녀를 적극 옹호하여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권위를 넘어선 권력의 모양새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빠른 시간 안에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능력을 재단하고 서열화하여 만들어진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치 요란한 포장지와 질소가스로 부풀려진 봉지에 감춰진 초라한 과자 알맹이처럼, 눈과 귀를 홀렸던 겉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속을 점차 드러내고, 점차 사람들은 본질을 꿰뚫어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어수룩한 권력자는 지방대 출신에다 영어에 서투른 동료들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무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녀가 권력의 소유자임을 각인시키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권력자가 쉽게 빠지는 유혹의 함정으로, 사람들은 점차 약자에 동정어린 시선과 권력자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갖는 계기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껏해야 어린 도둑놈을 곤봉으로 제압하는 순사의 모습에서처럼 권력은 존재하고 실재로 목격되지만 서서히 무너져 가는 이치와 같다.

기금마련 공연활동 크리스마스 이브날 할인마트에서 모금 행사 공연을 마친후 팀원들과 함께 한 기념촬영 ⓒ 이근승


그렇게 알게 모르게 5개월이 흘렀고, 외국인이 드나드는 국제 NGO라고 수줍어하고 꽁무니를 빼던 팀원들은 눈에 띄게 변화해 갔다. 정확하게는 중국 본토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가졌을 외국이라는 허상을 체화하고 그토록 주눅 들었던 영어 실력도 감당할 만큼 늘어난 탓이겠다.

어느 날 열린 활동 평가회의 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차례 한사람씩 세 명의 동료가 소피아를 향해 눈물을 흘리면서 분노를 터뜨린다.
'나를 무시하지마라'
여러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관계로 봉사단체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하루가 멀게 이어지는 토론 시간에 단어 하나하나를 뱉어 문장을 조합하는 진땀어린 발표를 모두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데, 유독 소피아는 그랬다고 한다. 매 발표시간마다 자신의 말을 자르고
' 잠깐만, 됐어요.  여러분들은 잘 이해 못하시겠지만, 제가 A의 말을 정리해 드릴게요. A의 의견은…….'
하며 마치 도와주기라도 하는 양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 그리고 누구 하나 그런 소피아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존중하라고 말하지 않고 넘어갈 때 자신에 대한 커다란 비하감을 느꼈다고 한다. 더구나 사람들과 자신을 향해 얼굴에 흘리는 그녀의 미소는 닳아빠진 교활한 처세술과 같아서 무서웠다고 하였다.

3학년 영어 교실 하이웨이 초등학교에서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영어 수업을 담당하였다. 소수민족중 하나인 이족만 사는 하이웨이 마을의 조그만 초등학교에도 영어 광풍이 몰아닥쳤다. ⓒ 이근승


                                               
권력이란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권위가 어느 개인의 특정한 부분이 여러 타인들에게서 인정받아 만들어지는 긍정적 가치라면, 권력은 이 권위를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관계의 그물망에서 나타나는 힘의 행사이다. 한 개인이 가진 권위에 선호와 동경을 벗어나는 절대적 복종을 취할 때, 그리고 사람들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권력의 대상으로만 여길 때 권력은 수직화 되고 일방적인 관계로 변질되는 것이다.

일류대학과 홍콩의 디즈니랜드 경력에다가 우수한 영어 실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소피아는 팀원들 사이에서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그녀의 이력을 맹종하는 몇몇의 추종자에 의해 권력자의 위치에 올랐다. 21세기 자본주의 옷을 두른 우리들로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보다 발전된 서구의 모습과 닮아 있고 국제화 시대의 선도적 역할을 할 경쟁력 있는 인재를 아무 의심없이 대표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타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봉사단체에서 머무는 동안, 일방적인 방향뿐인 권력은 토대가 부실하여 구성원들 간에 불협화음을 일으켰고, 끝내 우리는 리더를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

이 노~옴, 왜 지각했어? 하이웨이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에 늦은 아이와 장난치고 있다. ⓒ 이근승


덧붙이는 글 검은 피부 하얀 마스크 1편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에선 1편과의 비교를 통한 국내봉사단체 팀원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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