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작.난.(在陵作亂)

혜화동의 삼종기도

검토 완료

구자혁(frankoo)등록 2013.04.03 17:53
2013년 2월 6일 오전 9시,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오수영·여민희 조합원이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에서 울리는 혜화성당의 삼종기도 종소리를 들으며 종탑을 바라보고 평안을 기도하다

길 건너 재능 본사 앞에서 들려오는 삼종기도 종소리를 들으며 종탑을 바라보고 평안을 기도하다 답이 없어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
자신을 쓰다버린 재능교육을 향해 소리 치고 있다.
"단체협상 원상회복" "해고자 원직복직"
수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관심이 쏠렸고 또 종탑 아래로 모였다.

그리고 우리는 종탑에 갇혀 버렸다… 종탑에 가두고 싶었던 건 아닐까?

종탑은 숭상의 대상이 아니다.

종탑에 갇혀 살던 사람이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
추악한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에 의해 갇혀 지낸 그가
그 아름다운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를 만든다는 것을 파리 시민에게 알린다는 것…
그렇다고 자신이 종을 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영원히 그 종탑 안에 가두고 싶었으리라…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는
1999년 11월 7일 9명의 발기인으로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노동청에 접수하고,
12월 17일 노동부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필증이 나왔다.
위탁계약직 최초로 노동조합을 인정받은 것이다. (2011년 재능지부발간 '희망색연필'에서 인용)

2007년 5월 17일, 재능교육 노사는 어느 학습지에도 유례가 없는 이상하고 복잡한 구조의 수수료 제도로 협약을 갱신 체결했다. 당시 노조집행부는 회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 달 그달의 영업실적에 따라 수수료는 들쭉날쭉해지고 많게는 100만원이 넘게 임금이 깎이는 교사가 생겨났다. 좀 더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받던 교사들이 대거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신수수료제도가 노사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집중 선전하며, 노동조합과 교사들을 이간질했다.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더욱 고립되었고, 스스로 이탈하는 조합원들이 속출했다.
노조집행부가 사퇴하고, 새 집행부가 꾸려졌다.
새 집행부는 2007년 12월 21일부터 재교섭을 요구하며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 길바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2011년 재능지부발간 '희망색연필'에서 인용)

재능교육의 교사 조합원만 해도 3800명이 넘었던 적이 있었다.
회사는 조합원들을 따돌리고, 협박하고, 이간하고, 회유하고, 매수하여 한명 한명씩 집요하게 탈퇴시켰다. 관리자들은 영업이나 회원지도 관리 업무보다, 소속 교사들의 노조활동 방해와 조합원 탈퇴 실적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듯했다.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회사의 개(관용으로 쓰기는 하지만 이런 표현을 할 때마다 개한테 미안하다)가 되기로 작정을 하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선악의 판단능력을 잃었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사무실에서 조합원의 책상을 외따로 배치하기도 했다.
수업을 빼버리겠다고 했다. 수업을 못하면 한 푼의 수수료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학습지 교사에게 이것은 해고 협박이다.
주부교사인 박OO 조합원,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아파트에 회사 관리자들이 술 먹고 찾아와 백지를 들이밀며 도장을 찍어달라고 협박했다. 도장만 찍어주면 탈퇴서류 잘 만들어서 보내겠단다.
미혼의 여성교사, 김OO 조합원은 회식자리에서 팀장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이래도 저래도 안되면 비굴하게 찔찔거리며 호소했다. 사정 좀 봐달라고, 자기가 짤린다고….

월말 즈음이면 하루에 십 수통씩 노조사무실 팩스로 탈퇴서가 찍혀 들어오는 것을 지켜 보아야 했다.
노조결성 파업 당시 고통도 기쁨도 눈물로 함께했던 수많은 동료들이 떠나갔다.
남는 자와 떠나는 자…, 같이 울기도 하고, 서로 눈을 못 마주치기도 했다.
농성투쟁 이후, 2010년 12월 31일까지, 12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2011년 재능지부발간 '희망색연필'에서 인용)

재능교육은 전국의 교사들을 지국장, 사업국장, 총국장이 연이어 상담하고, 조합원으로 추정되는 교사들을 발본색원하여, 그 결과에 따라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사례1> …
당사는 귀하께서 … 학습지노조에 가입하거나 지원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였는바, 별도의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귀하와의 위탁사업계약 관계를 유지할 계획입니다. 다만, 추후 귀하께서 동 단체에 가입하거나 지원할 경우 … 위탁사업계약의 종료조치가 불가피함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사례2> …
현재 귀하와의 위탁사업계약 기간 만료일이 2010년 12월 31일 인 바, 귀하는 향후에도 임의단체인 학습지노조 조합원으로 가입을 유지하고 운영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이에 당사는 더 이상 귀하와의 위탁사업계약을 유지할 신뢰가 파탄됨에 따라 위탁사업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며, 2010년 12월 31일부로 위탁사업계약이 종료됨을 통보 드립니다. (2011년 재능지부발간 '희망색연필'에서 인용)

2010년 11월 7일 혜화동 본사 앞에서 시청사옥 앞으로 농성장을 옮기고, 유명자(여) 지부장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차량의 소음과 매연, 태풍 곤파스, 겨울의 혹한…, 이런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느물거리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용역깡패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에는 이런 욕도 있었구나…, 일생에 들어보지 못했던 별별 욕을 다 들어봤어요. 얼굴을 들이밀고 귀에다가 입김을 불어 넣을 때는…, 그냥…, 죽고 싶었어요. 여기서는 그렇게는 못하네요. 외국인이 많아서인가…?"

학부모 여러분!
노조 한다고 깡패사서 여성조합원을 성추행 하는 회사, 이런 회사 학습지 시켜야 하겠습니까?
(2011년 재능지부발간 '희망색연필'에서 인용)

2011년 회사측 합의안(1. 단체협약, 체결 불가  2. 해고자 1인 제외 11인에 대해서 6~36개월 간 순차 복직) 제시.. 해고자 전원 거부 (혜화동 1번지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인용)

2012년 6월 29일 회사와 10차 교섭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2005년 대법원 판결을 제시 하며
1. 계약해지교사 복귀 / 해고자 12인 중 10명에 한해 단계복직
2. 법적 조치 상호 취하(재발방지 담보로 "가처분 결정"은 제외)
3. 단체 협약 체결 불가(노동조합 불인정)
4. 기타 : 향후 회사 비방행위 중단 약속 / 기존 회사 비방 자료(인터넷 기사, 리본 등) / 합의내용 위반 시 조치사항 / 재능교육 임직원께 드리는 글 사과입장 문건 제출 11명 전원 서명

2012년 7월 11일 교섭 결렬 (혜화동 1번지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인용)

2012년 8월 28일 재능교육 이른바 '최종안' 제시
①회사는 합의서 체결 즉시 해지교사 11명 전원과 위탁사업계약을 체결하고, 계약해지 이전 소속 지국으로 배치한다.
②회사는 위탁사업계약 체결 즉시 단체교섭을 시작한다.
③회사는 현 사태와 관련한 민 ․ 형사상 고소, 고발을 취하(가처분결정 포함)하고 처벌불원탄원서를 제출한다.
④회사는 해지교사 11명에게 생활안정지원금과 노사협력기금으로 총 1억 5천만 원을 지급한다.
⑤회사는 조합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처분하지 않는다.
※기타, 세부 사항은 별도 논의한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①해고자 전원 복직 대상자는 12인(고 이지현 조합원 포함)
②합의 시 "단체협약 체결"이 노조의 요구안임을 밝힘 (혜화동 1번지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인용)

2013년 2월 6일 오전 9시 경 오수영, 여민희 조합원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오르다

2013년 2월 8일 회사측의 교섭 요청 공문 수령

2013년 2월 18일 교섭 테이블 열리지 못함

2013년 3월 15일 회사측의 공문 수령
"해고자 11명 교섭위원에게 교섭권 위임에 대한 위임장 받아와야 교섭할 수 있다."

2013년 3월 26일 중구청 직원 시청 앞 농성장 난입 강제 철거 집행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자본가가 가져가기 위해 생산력을 높이는 것에 치중하다가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정리해고 등을 통해 남은 자들에 대한 노동 강도를 높였다.
그 후 분사, 아웃소싱, 비정규직을 거쳐 특수고용이라는 헤어 나오기 싫은 고용형태를 실행하게 되었다.
마치 아주 쿨~한 고용 형태처럼 보인다.
자유롭게 일 하며 성과를 회사와 나눈다...
단... 그 성과에 계산은 회사가 한다!!! 즉 회사 맘데로…
이런 완벽하리만큼 달콤한 고용형태를 반대할 자본가가 지구상에 있을까??

나는 지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능교육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재능 공대위)에서 활동 하였다. 그 중에서도 재능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프로젝트 밴드 '언니네농성장뺀드'를 인디뮤지션들과 결성하여 재능지부와 여러 형태의 문화제를 기획하였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재능은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라고…
특수고용직이라는 것을 없애지 않는 한 결론 날 수 없다고…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 보자… 특수고용직이라는 것 애초에 없었던 노동 형태이고
노사간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사측의 권력과 국가의 묵인이라는 불평등한 조건에서의 계약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인간이 폐지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동지가 되어야 한다.
동지의 어려움을 듣고 함께 대응을 논의하고 다양한 실천을 해내고
내일 처럼 생각할 때 우리의 승리가 한 걸음씩 우리에게 오지 않을까!!
그것이 동지들과의 연대인 것이다.

2011년 두리반과 마리…
지난 2011년 "두리반" 투쟁과 "마리" 투쟁을 본다면 명확하다.
두리반의 경우는 "반상회"를 열어 투쟁상황, 교섭상황, 차기 프로그램 등을 연대 단위들과 함께 논의하고 계획하였고 투쟁 승리 이후에도 다른 투쟁 사업장에 연대하였고 "마리"는 그러하지 못했다. 두리반은 지금도 많은 청년활동가들의 가슴에 살아 있고 안정된 식당을 운영하는 안정녀 사장님과 투쟁 현장을 지지 방문 하는 유채림 작가님을 볼 때 마다 자신의 투쟁이 자신의 연대가 옳은 일이었음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은 곳에서 확인한다.
이것이 투쟁이고 연대이며 투쟁 주체가 그날 이후에도 우리에게 보여줘야할 것들이다.

그러기에 2000여일 투쟁과 60여일 종탑 투쟁을 승리로 발전시키려면
특수고용직 투쟁의 상징인 이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 내려면 종탑 주변에서 비대위와 직무대행이라는 형식에 갇힐 것이 아니라 더 조직적으로 강한 대오를 형성하여 교섭을 해야 할 것이며 교섭 이후에는 재능지부에 더 많은 학습지 선생님들이 같이 할 수 있도록 노조를 재건해야 할 것이다.

종탑은 결코 숭상의 대상이 아니다.
종탑은 2000일 넘게 연대한 단위들과의 공동 투쟁을 토대로 서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변질 되어 주체를 망각할 때 종탑은 모래탑이 되는 것이다.

종탑에 있는 두 여성 노동자들… 이제 거의 60일이다
지금의 상황이 더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가 두 여성 노동자를 종탑에 가두는 것이다.

두 여성 노동자는 사순절이 시작될 때 올라 갔고
그곳에서 지난 주 부활절을 맞이 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우리의 몫이다…
안전하게 내려오게 하는 것 그것이다.

그러려면 재능교육 지부가 승리하는 것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제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은 승리로 끝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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