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철탑엔 별 하나 촛불 두 개

[현장 르포] 1905일째 농성 중인 재능교육노동조합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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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sweetshim)등록 2013.03.13 17:09
벌써 105년이 지났습니다. 미국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 그 날은, 1908년 3월 8일이었습니다. 이때가 처음은 아닙니다. 1857년에도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경찰에 의해 곧 해산되었습니다. 2년 후 이 여성들은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50여년이 지난 1908년 무려 1만 5000명의 여성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들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인간과 시민,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권리입니다. 그로부터 105년이 지난 지금,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이하 재능교육노조) 해고노동자들은 서울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무려 1905일째 농성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두 여성은 2월 6일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 지금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최장기 투쟁일수는 나날이 경신 중입니다. '세계 여성의 날' 105주년을 맞아 '재능교육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주최한 촛불문화제에 인천여성회 회원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 이현숙 재능교육 해고자의 사회로 촛불문화제가 진행됐다.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기자로서 고민거리가 생겼다. 외국의 경우 이날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린다. 물론 '남성이 여성에게 잘 해주는 날'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나라도 있지만, 적어도 이 날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정은? 여성단체에서 기념 행사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세계여성의 날'은, 달력에 음력날짜 대신 적힌 작은 글자 정도로 취급될 뿐이다. 심지어 국내 굴지의 은행에서 받은 달력엔 표시조차 안 돼있다. 어떻게 하면 이 날의 의미를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인천여성회에서 재능교육노조 투쟁 현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따라 나섰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부평역에 하나 둘 인천여성회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다행히 이날은 낮 기온이 올라 제법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전철 안에서 김미애(42) 회원에게 이번 현장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7년 12월부터 투쟁을 시작했으니 만 5년이 넘었죠. 얼마 전 두 여성노동자가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얼마나 절박하면 그곳에 올라갔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세계여성의 날) 기념식에 가는 것도 좋지만, 연대와 지지가 절실한 곳에 찾아가 힘을 보태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어요"

재능교육노조 투쟁은 2007년 5월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비롯됐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불리며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회사에 고용돼 업무지시와 월급을 받지만, 이들은 자영업자로 취급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1999년 노조를 만들었고 해마다 사측과 단체협약을 맺어왔다. 전체 교사 7500여명 중 38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2007년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교사들의 '회원관리 수수료'를 1인당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삭감하고, 성과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고객이 늘수록 급여는 많아졌다. 하지만 고객이 줄면 거꾸로 수당을 물어야했다. 심지어 학습지를 끊은 고객을 '유령회원'으로 붙잡아두고 이 비용을 학습지교사가 대납하기도 했다. 고질적인 관행이었다.

2007년 단체협약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로 노조 집행부가 바뀌었고, 투쟁이 시작됐다. 이후 사측은 "노조활동을 계속한다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협박을 일삼았고,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며 노조를 압박했다. 

노사가 교섭을 시도한 적도 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번번이 결렬됐다. 2008년부터 노조 간부 2명을 해고한 것을 시작으로 조합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등 탄압이 심해졌다. 타협의 열쇠는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2005년 11월 대법원 판결은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싸움 끝에, 2012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조합법에서 정한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능교육 사측은 곧바로 항소해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3800여명이던 조합원은 이제 11명뿐이다. 이들은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특수고용직과 비정규직, 청년에게도 닥친 현실









   
▲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종탑에 오른 오수영·여민희씨를 향해 초와 핸드폰을 흔들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여러분의 농성을 지지하러 온 인천여성회 회원들입니다. 거기 굉장히 추워 보이던데, 눈은 녹았어요?"
"네, 눈은 녹았어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인천에서 온 아이 셋 키우는 엄마에요"
"아니, 아이들은 어떻게 하시고…"
"애들은 잘 놀고 있어요.(웃음) 힘내시라고 왔습니다"

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촉촉한 목소리가 오간다. 서울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농성장과 맞은편 혜화동성당 높이 15미터 종탑이 무선마이크로 연결됐다. 촛불문화제 시작 전, 종탑에 오른 여민희ㆍ오수영씨와 참가자들이 잠시 인사를 나눴다. 작은 점으로밖에 안 보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바로 옆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바람 끝도 점점 차가워진다. 한 젊은 남성이 장미 한 다발을 들고 나타나 여성들에게 한 송이씩 나눠준다. 105년 전, 여성들은 '빵과 장미'를 요구하며 거리에 나섰다. 장미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참정권을 의미했다. 난생 처음,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꽃을 받았다.

오후 7시, 아직 이른 시간인지 길바닥에 비닐을 깔고 앉은 이들은 50명이 채 안 된다. 재능교육 해고자 이현숙씨의 사회로 촛불문화제를 시작했다. "우리 투쟁이 비정규직 최장기 투쟁일수라는 기륭전자 불법파견투쟁 기록 1895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 투쟁을 승리로 매듭짓고 싶어서, 우리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겠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두 동지가 성당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승리를 염원하는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첫 순서는 시낭송이다. 낯익은 얼굴이 무대에 등장했다. 정세훈 인천작가회의 회장이다.

"그 위에서 얼마나 노고가 크십니까. 제가 시낭송하면서 연대를 한다고 하지만 여러분의 뜻에는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목이 메입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달라질 게 없어 더 힘드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낭송할 시는 종탑에 올라가신 두 분을 생각해서 지은 시입니다. '(전략) 비둘기나 틀법한 종탑에 /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다 / 본래의 둥지에서 쫓겨난 비둘기처럼 / 재능에서 버림받은 비정규직…"

정세훈 시인이 시 '종탑 위의 둥지'를 읽고 무대를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도 깜짝 놀라며 인사를 한다. 그는 인천 부평 콜트ㆍ콜텍 농성장에서 열리는 문화제에도 참석하고 있다. 지역을 넘어 노동현장을 찾아다니는 그의 마음이 진실하게 다가왔다. 정 시인에 이어 임희구 시인도 시 한 수를 종탑으로 올려 보냈다.

다음으로 노원청년회 회원들이 기타를 들고 무대로 나왔다. "세상에 뭔가를 알리고자 용기를 내신 두 분이 정말 멋있어서 이 노래를 준비했다"며 악동뮤지션의 '매력 있어'를 부른다. 신나는 노래에 분위기가 한결 산뜻해졌다.

곧이어 인천여성회 회원들이 준비한 선물을 전달했다. 투쟁을 지지하는 메시지로 가득한 손편지와 사진이었다. 홍선미 중동지부 회원은 "이곳에 오기 전 회원들과 여러분의 투쟁에 관해 함께 공부하며 선물을 마련했어요. 저 위에서 촛불을 들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노동자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라고 말하며 감정이 북받치는 듯 울먹였다. 덩달아 코끝이 찡해진다.

홍씨가 들어간 후 사회자가 서울청년네트워크 대표를 소개한다. 얼굴을 보니 아까 장미꽃을 나눠주던 청년이다. "서울이라고 하면 수도라는 이미지가 가장 강한데, 이곳도 굉장히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특수고용직이나 비정규직은 청년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발언을 숭실대학교 총여학생회장이 이어받았다. "1908년 오늘, 여성노동자들이 인권과 평등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10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여성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야하는 현실에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우리 대학생들도 여성노동자와 끝까지 연대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당찬 발언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서대문 나라사랑청년회에서 우쿨렐레 연주와 노래 공연을 했다. 촛불문화제 분위기는 점점 흥겨워진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100개가 넘는 초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고요?









   
▲ 인천여성회 회원들이 준비한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다시 시인들이 등장했다. 금요일마다 먹을 것을 싸들고 이곳을 찾는다는 김홍춘 시인. "예전에는 예쁘고 수줍은 아가씨였을 사람, 사랑스런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이웃이었을 사람들을 저 모진 고생을 하게 만들고 투사로 만든 자본의 속성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같이 이곳을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꼭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자꾸 발걸음을 하게 됩니다"

김일영 시인은 "저는 주로 말랑말랑한 시를 쓰는데, 이런 사람조차 거리로 나오게 만드네요"라며 직접 쓴 시를 읽는다. 그것도 세 편이나. 시가 술술 나오는 밤이다.

밤바람이 차가워져 모자를 뒤집어썼다. '춥다'는 말을 내뱉으려다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종탑 위는 칼바람이 불고 있을 테지. 시를 들으며 종탑을 올려다봤다. 자그마한 촛불 두 개가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종탑 십자가 바로 위에서 별 하나가 반짝인다. 시선을 돌려 별 몇 개를 더 찾았다. 저곳도 그리고 이곳도 별이 뜨는 서울이다. 먼지가 비처럼 쏟아져도 별빛을, 촛불을 가리지는 못한다. 괜스레 감상에 젖어든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부터 시인만 등장하면 누군가 배경음악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시와 기타, 촛불에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여러 박자가 고루 갖춰졌다.

촛불문화제 마지막 순서는 참석자들이 종탑 위 두 사람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것이었다. "오수영~~ 여민희~~" 외침에 응답이 왔다. 여민희씨였다.

"여러 가지로 바쁘셨을 텐데 이렇게 종탑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시인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저도 시 하나 읽겠습니다" 그가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시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고 있어서다. 때를 놓치지 않고 흐르는 기타 소리와 저들이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십자가 위의 별빛이 눈물을 부추기는 것 같다. 숨을 쉬려면 어쩔 수 없다. 그냥 울어버리자.

여민희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훈련된 전위부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바보도 아닙니다.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토론과 투쟁을 통해 배우고 반성하는 노동자입니다. 우리 투쟁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는 저도, 여기 계신 많은 동지들도 모르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1905일 동안 손 잡아주는 동지들이 있기에, 흔들릴 때도 있지만 꽃을 피우는 그날을 반드시 함께 맞이하겠습니다"

촛불을 든 이들이 모두 일어서 종탑을 향했다.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다~! 노동기본권 쟁취하자~!" 듣고 보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실현되는 건 왜 이리 어려울까. 갈 길이 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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