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튈곳없는 한국의 자화상

최해갑을 위한 나라는 없다

검토 완료

서문원(drewermann)등록 2013.03.08 09:22
주민등록번호, 지문날인, 부동산광풍과 재개발, 구사대, 정치부패 등등 이 모든 것이 모여있는 영화가 <남쪽으로 튀어>이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화한 이 작품은 임순례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윤석, 오연수가 주연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3월까지 누적관객수는 83만명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다. 그렇다면 영화가 재미없었을까? 그건 아니다. 최해갑으로 연기한 김윤식의 연기력과 반전을 거듭하는 대사와 장면들은 하나도 버릴게 없는 작품이다. 

스토리도 좋았다. 386운동권출신이자 다큐멘터리영화감독 최해갑, 체게바라를 닮고 싶어하는 그를 중심으로 서민들을 위협하는 여러 악재들이 하나 둘씩 선을 보인다. 최해갑과 가족을 도청, 감시하는 국정원, TV수신료납부가 부당하다며 전기세 납부마저 거부하자 여지없이 끊어버리는 한전 직원의 모습도 어디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는 국민연금 문제도 거론된다.

결국 최해갑과 가족이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남쪽에 부모님이 살았던 작은 섬으로 떠난다. 하지만 이곳도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결국 아버지가 살았던 옛 집마저 건설업자들과 맞서 싸우다 뺏기고, 주인공 최해갑은 무인도로 떠난다. 비극적인 역사인 용산참사는 이렇게해서 전국으로 확대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지난 2006년에 출판된 일본소설이 어떻게 2013년에 이르러 우리사회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됐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이 소설은 그리스출신 故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의 1984년 작품인 '시테라섬으로의 여행'의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국인 그리스를 위해 무장독립투쟁을 하고도 좌파라는 이유로 소련으로 망명한 스피로라는 노인. 소련과 그리스간의 포로협정이 맺어져 고향 땅을 밟지만 현지는 재개발로 갈 곳조차 없어지고, 백발노인이 된 주인공 스피로는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부인과 임시 선착장을 뗏목 삼아 머나먼 바다로 떠나간다.

그리스와 한국, 한 세기를 넘어 튈곳조차 없다!

물론 코믹드라마인 <남쪽으로 튀어>와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은 다른 영화다. 그러나 본질은 똑같다. 다시말해 1984년과 2013년은 달라진게 없다. 자본주의라는 매개체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상황은 똑같다. 그래서 두 작품은 영화배경이 된 나라는 달라도 서글프고 왠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그럼에도 <남쪽으로 튀어>가 나은 점은 적어도 결말을 긍정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이 현실적이다.

특히 <남쪽으로 튀어>라는 영화가 많은 관객이 못 본 것은 이 나라사람들이 얼마나 부정부패와 약육강식이 만연됐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 아울러 정의와 공정함이라는 것이 사라진 대한민국은 오로지 권력과 힘으로만 대다수 국민을 제압하려는 자들의 세상이 된 것이다.

영화<남쪽으로 튀어>는 한 마디로 영화를 넘어 이 시대의 주인공 최해갑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고 단언할 수 밖에 없다. 좌파, 우파는 커녕 일본 지식인과 시민단체들도 거부운동을 펼치는 지문날인 반대운동마저 터부시되는 이 사회. 즉 미국식 리버럴조차 통용 안되는 부자연스러운 나라가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