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필의 ‘흙’을 통해 돌아보는 인간과 자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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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faithmyth)등록 2013.01.22 18:13
흙을 그리는 화가 채성필

'흙을 그리는 화가'로 대변되는 채성필은,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며 국내외에서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한국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내고 80년대 중반 서울에 왔을 때 콘크리트 투성이인 도시를 둘러보며 어릴 적 뛰어놀던 시골에 대한 향수를 많이 느꼈고, 그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흙'이라는 단어로 다가왔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며 대학 시절에 스케치 여행을 다니던 어느 날, 그는 스케치북을 제외한 다른 재료들을 놓고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물과 흙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년이 넘도록 흙을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에게, 흙은 공간이기도 하고 재료이기도 하다.

※ 그림의 소재로서 '흙'이가지는 의미 ※

흙은 미술사에서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재료로 많이 쓰여 왔다. 고대 벽화에서부터 등장한 흙은, 가장 변색이나 변화 없이 많이 남아 있기에 어찌 보면 가장 오래도록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재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흙이라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재료이고 공간으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수없이 많은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물, 불, 바람, 흙으로 구성되는 우주의 4원소들 중 하나인 흙은 신이 인간을 만든 첫 번째 창작의 도구가 된 것이기도 하고 인간 존재 이전의 본질로서의 의미가 있다. 또한 동양 사상에서 '목,화,토,금,수' 오행의 바탕을 이루기도 하는 흙은, 네 가지 방향성을 지닌 원소들이 존재하는 기반이 되어주기도 하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재료이다.

원시향, 2009년 작 은분, 호분, 흙, 먹으로 표현한 2009년의 연작 '원시향' ⓒ 채성필


프랑스에서 세계적인 갤러리의 러브콜을 받다

예전에 많이 쓰이던 기법들을 자기 나름의 기법으로 착안하여 창조적인 화풍을 만든 채성필은, 프랑스로 유학을 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여행을 갔다가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파리에서 공모전(2004년 열린 St Briac 살롱전)에 참가해 대상을 받게 되었고, 현재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오페라 갤러리 본사를 통해 전시 제안을 받은 그는, 이미 20여 차례 이상의 특별 기획전을 통해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고향을 떠났지만,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된 다음에는 나라를 떠나게 된 그에게 흙이라는 소재는 고국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고 감정 이입의 소재가 되어 아주 소중한 하나의 정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최대한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그는, 흙이라는 것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 자체가 그림에서 나타날 수 있게끔 하려고 하는 작가이다.

그의 그림 표면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재료가 흙이며, 그 다음이 물이다. 캔버스와 종이는 나무를 상징하고, 캔버스 위 전체를 덮은 은분은 금속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먹을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그는, 자연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원소들을 그대로 자기 작품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에 대한 탐구를 통해, 내 안의 인위적인 모습을 걷어내고 싶었다."고 하는 채성필은, 복잡 다양한 현대 미술의 흐름 안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찾아가기 위한 일종의 역행을 꾀했으며 그러한 시도가 지금껏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흙과 달 시리즈

최근 그가 그린 연작인 '흙과 달 시리즈'는, 어찌 보면 영원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존재하는 두 가지 대상을 보며 떠오른 공통적인 생각을 나타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km 가면 고흐가 살다 간 마을이 있다. 현재 그 곳에서 거주중인 그는 평소와 같이 흙으로 작업을 하며 바깥을 쳐다보았는데, 둥근 달이 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흙에 대해 느껴졌던 묘한 생각들이 달을 보면서도 똑같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흙과 달을 합쳐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항아리 형상을 빌려 '흙과 달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흙과 달, 2010년 작 각기 다른 형태의 항아리 안에 '흙과 달'을 표현한 채성필의 최근 연작물. ⓒ 채성필


평생 살아가며 흙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할 것 같다는 그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면서도 본질적인 '흙'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러한 가치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한다. 그가 표현하는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세계의 표현은, 현대 미술의 자극적이고 복잡 다양한 면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리워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공간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채성필. 흙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상징적인 의미를 그림에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모든 존재의 근원적 본질이 되는 흙을 통해 본질에 가까워 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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