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보이는 꽃'을 그린 화가 김종학의 작품세계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김종학, 꽃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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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faithmyth)등록 2012.12.31 17:14

호박꽃, 2003년 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인 호박꽃을 통해, 자연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나타낸 작품이다. ⓒ 김종학

글을 읽거나 그림을 감상할 때의 큰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작품을 통해 작가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말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구상한'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중 한 명인 김종학은, 주 소재인 '꽃'을 통해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며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꽃 그리기 이전, 1970년대까지의 김종학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구상화가'로 알고 있지만, 그 역시 1960년대부터 1979년까지는 박서보, 김창열 등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인 '엥포르멜(비정형)' 풍의 작품을 그렸다.

당시 스스로를 '그림 그리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무명작가'라고 했던 그는, 작가로서의 수입이 가장 역할을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1979년 부인에게 이혼을 당하고, 부모가 이혼한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 자식들에게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하여 다시금 그림을 그리겠노라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동경과 뉴욕에서의 연수를 거쳐 신진 작가 대열에 들어섰던 그가 생활고로 인해 이혼을 겪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당시 자살을 생각했다고 하는데, 형이 마련해 준 설악산의 집에 내려가 생활을 하며 자연과 진정으로 호흡하게 되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설악산 생활의 시작, 달과 꽃이 말을 걸다

'아들과 딸에게 아버지가 좋은 화가였다는 것은 알리고 죽자'는 생각에 남아 있는 예술혼을 불태우리라 마음먹은 그는, '귀양'차 내려간 설악산의 집에서 생활하며 스스로를 내려놓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을 몸에 담은 채 산의 아름다움을 따라 정처 없이 활보하던 중, 달이 말을 걸고 꽃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로 그 때부터 자연이 그를 치유하게 되었고, 그도 자연의 일부가 된 것 아닐까. 그가 치유하려 했던 것은, 비단 그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 뿐 아니라 인간의 개발에 의해 점차 황폐해져 가는 자연의 모습까지도 포괄했던 것이리라.

백화만발, 1998년 作 붉은 바탕에 갖가지 꽃들이 마치 합창을 하려는 듯 어우러져 있는 풍경은,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꽃들이 말을 걸어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 김종학


그해 힘든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 할미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본 그는 그 아름다움을 보고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꽃을 그리기 시작한 그를 향해, 동료들과 친구들은 그가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힘을 가졌고, 그의 작품들은 어느새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추상화가 대세였던 당시의 미술계에서, 그가 그린 꽃 그림들은 평단으로부터는 '이발소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보는 이들에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안식과 위로를 안겨 준 셈이었다.

마음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그려내다

'예술 작품은 그것을 보고 듣는 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단순히 본인의 재능에 취해 그것을 과시하기 위한 작품 활동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위로를 위한 작품 활동에 몰입하기 시작했던 그는, 어쩌면 인생의 가장 깊은 불행의 심연에서 진주를 발견해 낸 것 아닐까.

벚꽃, 1998년 作 벚꽃이 만개한 벚꽃 나무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은, 자연 속의 아름다운 조화를 나타낸다. ⓒ 김종학


'구상화와 추상 표현주의의 접목'이란 이론적인 수식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그의 작품에서는 삶과 사랑에 대한 성찰, 그리고 스스로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현대의 사실주의 화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성을 담고 있고, 추상화에서 대중들이 자주 접하는 난해함과 배타성을 없앤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신록의 정취, 바다의 평온함, 하늘의 드넓은 여유로움 등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안위(安爲)는 많은 부분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가 그려낸 꽃들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축하고 있는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그의 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이나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마음의 눈'으로 담아낸 그야말로, 진정한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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