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개혁 어디로 가야 하나?

플랫폼을 지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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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moliwjlee)등록 2012.12.31 13:57
민주당의 역량부족 그리고 민주당의 역량강화. 이번 선거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이다. 민주당 해체하라, 해체 수준의 재창당이 필요하다는 외침이 당안팍에서 들린다. 민주당이 많은 것을 고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인적쇄신과 수혈?

인적쇄신. 지금까지 위기 때마다 써왔던 전가의 보도다. 수순은 이렇다. 먼저 책임자가 물러난다. 때로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외국으로 떠난다. 책임자의 가신그룹이나, 측근 혹은 당권파들이 일제히 일선에서 물러난다. 당직과 임명직을 내놓고 떠난다.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며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다. 때로는 현직에서 사퇴하고 떠나기도 한다.

그후에 새 피를 수혈하는 과정이어진다. 후보 단일화와 야권연대야 말로 수혈의 다른 한 가지 표현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재야인사의 입당을 통해서 인적쇄신을 이루려고 했었다. 그 이후에는 시민사회를 통해서 인적쇄신을 이루었다. 이해찬 전 대표가 재야인사 입당의 사례라면, 시민사회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이다. 그리고 이제는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민주진보 진영 전체의 후보를 내세우기도 한다.

당에 혹은 일정한 정치집단에 소위 말하는 '오너' 즉 정치보스가 있을 때 이런 방법은 흔히 사용되었다. 상도동계, 동교동계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쓰던 방법이다.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이다. 그리고는 당의 이름을 바꾼다. 당의 색깔을 바꾼다. 보수정당이 빨간 야구잠바를 입고 등장하기도 한다. 정책을 바꾸고 반대편 인사를 등용한다. 아니 등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기가 지나가면 흘러간 옛노래가 다시 들려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흔히 사용되어 오던 방법이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당권파 이른바 친노그룹에게 요구되던 것이 이것이다. 그래서 여럿이 선대위를 떠나기도 했고,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사퇴하거나 물러나 있었다. 거기에다가 후보의 의원직 사퇴와 과거 정권에 관련된 사람들은 차기 정부에서 임명직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른바 감동을 주는 퍼포먼스를 하라는 것이다. 어느만큼은 하고, 어느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한 비판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빨간 야구잠바를 입는 만큼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아주 흔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정말 효용가치가 있는 일인지 다시 한 번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

정당구조개혁과 공직후보자 선출

관련해서 정당구조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다. 개혁국민정당과 열린우리당을 거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소위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 운영을 요구하던 방식이다. 이 방식은 실패했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대중정당에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 이 방법은 이른바 소수 핵심의 전위정당에 어울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공직 후보자 선출 방식을 고친다. 당내 경선이 도입되고, 대위원과 전체 당원에 의한 선출에서, 미국 민주당에서 쓰는 방식인 공개 예비경선(open primary)가 도입되었다. 누구나 신청하고 가기만 하면 후보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것으로 국민여론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여론조사가 단일화 과정에 사용되기도 하고, 지난 서울시장 후보 선출에는 공론조사라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하고, 민주당 당대표를 선출하는 데, 전당대회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소위 모바일 경선까지 등장했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본 것 같다. 모르겠다. 견문이 짧은 탓에 아직까지 써보지 않은 방법이 있을런지도 모르지만, 아마 지금쯤 아직까지 사용해 보지 않은 방법을 찾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써온 방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앞에 나서는 사람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요약된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궁리를 하는 중이다.

물론 인적쇄신이 필요하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시늉만 할 것이 아니고, 완전히 떠나야 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유롭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방식의 인적쇄신과 수혈, 정당 껍데기 바꾸기가 어느 정도 성공하면, 정당도 조금은 나아지고 선거에서는 이기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옛모습 그대로 되돌아가곤 했다.

잃어버린 것들과 솟구치는 것들

이 일련의 개혁과정은 보스가 정치자금을 조달해서 조직을 운영하는 구시대적 정당 운영과의 결별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민주당은 오너가 없이 지리멸렬하다. 이제 새누리당에도 보스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선거비용 한계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여야 정당 모두 법정 선거비용 한계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선거 때면 개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여전히 음지에서 활동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그와 동시에 정당의 하부 기층 조직이 사라졌다. 특히 민주당 조직 약화가 두드러졌다.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하던 호남향우회와 연청이라는 과거의 조직이 힘을 잃고, 노사모도 갈 곳 없어진 민주당을 위해 바닥에서 활발하게 뛰던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다. 당대표나 후보자를 자신의 힘으로 뽑지 못하는 당원들이 자부심을 잃는 것도 당연하다. 이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잡음들은 바로 그런 일들의 결과이다.

반대로 정치참여의 욕구는 한층 더 커져간다. 투표독려운동은 정치참여 욕구의 한 형태다. 과거에도 있었던 투표독려운동이 가장 효과적이고 격렬하게 나타난 것이 이번 선거이다. 쏟아지는 팟캐스트들도 정치참여 욕구의 한 형태이다.

안철수 전 후보가 들고 나온 '새정치', 비록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모호하긴 했지만, 새정치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은 정치참여 욕구가 커져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치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며, 정치적 의사결정이 내 삶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의 표시이기도 하다. 시원하지 않은 것이다. 대의제의 한계를 공공연하게 말하는 시점이 왔다.

접촉점을 넓히고, 플랫폼 정당으로 바꿔라

민주당은 사람들(국민, 중산층, 서민, 노동자)과 연결이 끊어져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이벤트가 필요한 순간에만 연결될 뿐, 일상적이고, 상시적인 부분에서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져 있다.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진 정당이 살아남을 수 없다. 산소호흡기에 연결된 것처럼 간신히 살아 있을 뿐이다.

정치참여의 욕구가 커진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려고 할 때, 민주당을 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SNS와 팟캐스트를 통해서 떠들어댈지는 모르지만, 민주당을 통해서 하지 않는다. 민주당을 통해서 할 방법도 없고, 민주당은 왠지 구리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만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정말 흔하게 듣는다. 정당의 위기, 대의제의 위기다.

민주당이 바꿔야 할 것은 여러가지다 사람도 바꾸고 전략도 바꾸고 정강정책도 필요하면 바꿔야 하지만,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 사람들이 민주당 사무실을 거리낌없이 방문할 수도 있고, 그곳에서 활동할 수도 있어야 한다. 거리낌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지역 정치활동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강연회가 열리고, 누구나 장소를 빌려서 강연회를 할수도 있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원봉사자가 운영하는 저렴한 카페도 있고, 주부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탁아시설도 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서 가져온 음식을 데워서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개된 주방도 있고, 간단한 사무기기를 저렴한 비용으로 혹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구리지 않고, 접근성도 뛰어난 그런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마음이 열려서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너무 정치적이면 곤란하다 당원이 아니면 결단하지 않으면 갈수도 참여할 수도 없는 그런 곳에는 지금까지 처럼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함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외곽에 수많은 연구소와 재단들이 있다. 지금까지 이런 연구소와 재단들은 소위 말하는 정치적 활동과 연구작업에 골몰해 왔다. 이런 일들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정치활동과 필요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물리적이면서 심리적인)을 마련하는 데 실패해 왔다. 반면에 오히려 사람들은 벙커1에 모여서 떠들어대고 있다. 지나가다가 한 번 들러보고 가기도 한다.

안철수 전 후보가 활동을 시작할 때, 재단을 설립했는데, 이런 정치적 시민참여의 공간을 만들어서 이것을 활동의 기반으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마이크 하나 없는 그의 유세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서 "새정치는 OOO"이라고 소리통으로 외치던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제도권과 이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일 수 있을 것이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촉진자(facilitator)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려고 하는 방식에 맞추어서 정당이 모습과 활동을 바꾸어야 한다. 그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조직된 소수와 조직되지 않은 대중과 끊임없이 연결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너무나 많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또 위로 받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에 1832년의 프랑스에서의 봉기가 있다.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지만, 왕정복고와 나폴레옹의 등장 1830년과 1848년의 혁명 그리고 루이 보나파르트에 의한 공화정의 몰락까지 혼란이 반복되었다.

1871년 제3공화정이 성립되어서 안정적인 시민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할 때까지 약 100년의 시간과 피를 흘리고 또 흘리는 유혈의 혁명과 폭동과 쿠데타와 반동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표면적인 혼란의 이면에서 역사는 도도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어둡고 음울한 프랑스의 거리에 팸플릿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면, 이제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과 팟캐스트가 흘러내린다. 변화해야 하는 것은 기어코 변하고야 만다. 이 추운 겨울에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오랜만에 루이 보나파르트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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