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의 새로운 지평, '우리 시대 이야기꾼'을 섭외하라.

[분석] 1인 토크쇼에 감춰진 신화와 소비의 미학

검토 완료

김민관(minkwan)등록 2012.11.23 10:49
지난주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한 유홍준 교수의 제주도 자연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 문화재청장 시절 당시 있었던 일화는 꽤나 흥미롭고 또 감동적이었다. 과거 단독으로 출연했던 <황금어장-무릎팍도사>보다도 더 흥미로웠다.

1인 토크 형식의 프로그램

하정우 편,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2009년 방송분 캡처 ⓒ MBC


과거에도 프로그램에 한 사람을 초대해 그의 삶을 듣는 형식은 많이 있었다. 이러한 형식을 더욱 발전시킨 프로그램이 <무릎팍도사>일 듯 싶다. 물론 <무릎팍도사>가 최초의 형태라는 말이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의 흐름에서 <무릎팍도사>가 1인 토크 프로그램 활성화를 촉발하는 지점이 됐다는 뜻이다.

초대받은 이의 내밀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선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충실한 청자로서 역할이 요구된다. 평소 듣지 못할 이야기를 긴 시간 동안 전해 듣는 <무릎팍도사>는 정작 그것과 상이점을 갖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강호동이 떠나면서 사라졌는데,

1인 초청이 아닌 다수 토커(talker)들을 초대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강심장>이 그런 예인데, 이는 무작위로 토크 주제들을 꺼내 '배틀'을 하는 형식으로, <서세원쇼>(1998-2002)는 그 전신으로 보인다. 1인 토크쇼 형식이 성공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무래도 한 명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끄집어내며 그 사람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공력을 들여 듣고 맞장구칠 때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더 다가설 수 있고, 진실에 가까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어떤 추상적 전제가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배틀' 형식의 진행과 여러 사람 가운데서 짧은 이야기를 빠르게 전해야 하는 환경은 더 자극적인 편집점을 가져가기 쉽고, 출연자 역시 더 자극적인 부분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측면이 있다.

'소비되는 눈물', '소모되는 이야기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지난 10월 29일 방송분 캡처 ⓒ SBS


자극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상반되는 가치로 여겨지는 바는 소위 '진정성(authenticity)'이다. 강호동이 <무릎팍도사>에서 남발했던 용어 역시 공교롭게도 진정성이었다. 현재 <고쇼>가 콘셉트에 따라 게스트의 캐릭터를 재구성하는 식으로, 진정성보다는 역할에 대한 적합성을 찾는 과정을 따르는 것이나 앞선 토크쇼 형식의 <강심장>을 제하면 대부분이 1인 토크 형식이다. 1인 토크 형식의 프로그램들에는 진정성이라는 전제가 전반에 깔려 있고, <강심장>에 종종 나오는 눈물 고백들 역시도 마찬가지에 해당한다.

<승승장구>, <힐링캠프>, <이야기쇼 두드림>, 그리고 여기에 <놀러와>도 얼마 전 가세했다.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의견을 따르면 방송 대다수를 장식하는 연예인의 내밀한 인터뷰 형식은 우리가 차마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우리 삶의 폐부를 비춰 내며, 그에 몰입하게 한다. 우리는 낯선 타자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닌 우리가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연예인의 모습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실상 <강심장>에서 그토록 많이 눈물을 보이며 삶의 간증을 하던 연예인들의 모습은 일견 진실이지만, 끊임없이 눈물과 삶은 소비되고 검색어에 오르며 다시 지워지고 밝은 모습으로 그들은 TV를 누빈다. 여기에 가려 있던 밝지 않은 그들의 면모는 다시 인터뷰 형식의 토크쇼에서 드러나고, 이후 또 밝기만 한 그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스토리를 엮어 내는 대신 스토리텔링 장치를 활용하라

<강심장>, 지난 11월 6일 방송분 캡처 ⓒ SBS


결국 그렇게 얼마나 진정성을 띠느냐의 이야기가 기실 얼마나 자극적일 수 있느냐의 척도로 판단되고 잠깐의 순간으로 소비되는 일련의 과정 안에 흡수되는 것을 본다면, 실상 1인 토크쇼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제 1인 토크쇼와 여러 명이 나오는 토크쇼의 구별은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토크쇼에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무릎팍도사>를 수없이 보며 느꼈던 것은 의외로 유명한 아이돌 연예인이나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 대신 잘 나가지 않은 공력 있는 배우나 오히려 연예인 아닌 종사자가 나왔을 때 재미가 급등한다는 것. 이러한 토크쇼에는 늘 연예계 내의 반복된 삶을 겪는 화려한 연예인 대신,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자신의 현실과 부딪치며 그에 대해 성찰해 온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정말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오히려 케이블 방송에서 눈물 등으로 담보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그러한 진정성의 측면과 상관없이 프로그램의 콘셉트에 완벽하게 게스트를 적응시키는 '역할 게임'의 구조를 가져오는 <비틀즈코드>나 그와 매우 비슷한 <라디오스타>등이다.

여기에는 진정성에 대한 가치를 부당하게 부여하거나 확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스트들이 고이 모셔지기보다 깨지고 부서지는 가운데서 그들 스스로의 처절한 적응과 고투가 요구되며 재미를 준다. 다소 출연자들에게는 잔인한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리얼'은 즉석에서 얻어지는, 진행형의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놀러와> 지난 11월 5일 방송분 캡처 ⓒ MBC


연예인의 사적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오히려 견문이 넓고 풍부하며 몸으로 지식을 체화해 온 유홍준 교수와 같은 사람의 말은 TV에서 오히려 신선하고 또 감동을 준다. 그들이 TV에 그리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니 더더군다나.

진정성이라는 신화에 우리는 그간 속고 있었던 것 아닐까. 또한 연예인의 신변잡기에 우리의 비루한 삶에 대한 정당성을 공공연하게 획득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유홍준 교수의 강연은 그런 측면과는 다른 순전한 이야기, 더 정확히는 학식을 공감 가능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푸는 완벽한 스토리텔링의 장이었다.

소위 인터뷰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면 그것을 포장하는 것은 리얼이 아니다. 마치 출연자가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아 '힐링'(healing: 치유)이 됐다거나, '두드림'으로 공감을 얻어 방청객들이 꿈을 향해 나아갈 힘을 찾았다거나, 내지는 이번 이야기로 지금까지의 삶에 방점을 찍고 이후 '승승장구'할 힘을 내라고 하는 식의 포장 어린 끝을 내는 것보다는 진정 콘텐츠를 가진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이 백방 나을 것이라는 것이다.

곧 유명한 누군가의 이야기 자체를 심층 조명하는 것, 정말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을 섭외해 예능과 교양의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 같다. 지식을 강요하는 교양과 유희적인 말놀이만 반복하는 예능 사이에서, 인문학 강좌 열풍과 실상 책 한 권도 읽을 시간이 없는 현대인의 크나큰 간극의 현실에서, 삶을 새롭게 볼 수 있는 풍부한 시각의 이야기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누군가의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과 삶의 극진한 이야기들이 또 다른 이야기로 대체되는 끝없는 과정들 속에 사실 대중매체 전반의 소비의 미학만이 자리할 뿐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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