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를 위한 항변

-언론과 일부 국회의원의 일방적인 매도는 문제 있다.

검토 완료

박성연(history7)등록 2012.10.10 13:48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위)가 생긴 이래로 언론에서 부각되는 사태가 있었을까 싶다. 문제의 핵심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교과서 수정 권고의 문제이고 하나는 위원장인 이태진 위원장의 독재 옹호 발언이다.
먼저 수정 권고의 내용을 보자. 필자는 정확한 수정 권고안을 보지 못하고 언론에서 소개된 기사만으로 판단하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언론의 보도가 문제가 있어 보여서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1.일왕을 천황으로

우리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서는 '일왕'이라고 표현하지만 '일왕'이라는 용어는 우리만이 쓰는 용어이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유신 이후에 국가 원수에 대한 정식 용어는 '천황'이었다.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국편위의 권고 내용은 메이지유신을 설명하면서 막부시대가 왕정으로 바뀌었다는 설명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를 겪은 우리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에서 갖는 '천황'의 의미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이 때문에 '천황'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문적으로는 정식적인 명칭을 쓰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 조선말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외국에서 자신들의 가치판단에 의해서 황제가 아닌 국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 보자.
사실 일본 역시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 이에 대해서 문제 삼고 있지 않지만 외교적으로는 결례가 되는 행동임이 맞다. 더구나 학문적인 역사적 분석은 되도록 가치판단적인 요소는 제외하는 것이 맞다. 사실 천황이라는 용어는 일본 입장에서 가치판단적 용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군주를 나타내는 고유명사인 이상 그대로 써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전혀 비논리적인거나 친일적이라고 몰아 부칠 일은 아니다. 

2.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조약이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로는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를 국가 간의 합의에 따라 법적 구속을 받도록 규정하는 행위"이다. 이는 현재도 우리나라와 외국간의 협정을 맺을 때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에 반해서 '늑약'은 억지로 맺은 조약이라는 뜻이다.
우리와 일본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을사조약의 체결 경과로 보았을 때 '을사늑약'이라고 대한민국의 교과서에 쓰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학문적 입장에서는 역시나 되도록 가치중립적 용어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을사늑약'이라고 명명하는 순간에 읽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이 아닌 필자에 의해서 판단을 권유 받기 때문이다. '을사조약'의 성격이 무엇이었는가는 읽는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구자 혹은 교육자의 기본의무이다.  

3.이한열 열사 사진 삭제 요청

제목만 놓고 보면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드려다 보면 중학생용 교과서이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사진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국편위 입장이다. 그 결과 이한열 열사 사진은 명동성당 집회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물론 교체된 사진에 대해서 국편위는 권유하거나 교체된 사진을 삭제시키지 않았다. 이 역시 구지 사진 싣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국편위의 판단이 일방적으로 문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상이 성인이 아니라 중학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넣었던 것은 당시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염원 혹은 이에 대한 독재 정부의 탄압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명동성당의 집회 사진 역시 이와 같은 의도를 보여줄 수 있다. 

4.이태진 위원장과 국사편찬위원회를 위한 항변

이태진 위원장의 독재 용호 발언은 전언만 있을 뿐 정확한 맥락을 보지 못해서 판단이 어렵다. 하지만 보도된 자료만으로도 이태진 위원장과 국사편찬위원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친일적 성격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연구자로서 이태진은 학계에서 일제의 제국주의 침탈 시기에 가장 권위자이다. 그의 근대사 연구 성과는 주로 고종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데, 일제에 의해서 평가절하된 고종의 진짜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학자이다. 사실 현재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이라고 수정하라고 해서 논란이 되었지만 사실 을사조약 용어에서 을사늑약이라는 용어로 바뀌게 한 주역 중의 한명이 이태진 위원장이다. 그는 꾸준히 한일 간의 조약들의 불법성에 대해서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이태진 위원장은 『한국병합 성립하지 않았다』,『한국병합의 불법성 연구』,『조약으로 본 한국 병합-불법성의 증거들-』 등의 책을 냈다. 즉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을사늑약'이라는 단어가 일반인 들에게는 낯설었지만 현재는 익숙해진데 가장 공이 큰 학자인 것이다. 
  심지어 일부 의원은 이태진 위원장을 보고 뉴라이트계 학자라고 주장했지만 학계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도 않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매도하는 꼴이다. 역사 학계에서 뉴라이트계는 보통 '식민지 근대화론'이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학자로서 이태진은 고종의 개혁 정치를 연구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하나로 묶일 수 없는 사람이다. 실례로 몇년 전에 뉴라이트 역사학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인 이영훈 교수와 교수 신문을 통해서 격렬한 논쟁을 했던 사람이다.(이 논쟁은 현재『고종황제청문회』라는 제목으로 출판 되어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입장에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잊어졌지만 2008년 '금성 교과서'파문을 생각해 보자. 그 당시 교과부는 1차로 국사편찬위원회에 수정 검토를 의뢰 했었고 이에 국편은 포괄적인 가이드 라인만 제시하여 사실상 금성 교과서의 뼈대에 대해서는 수정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교과부는 교과부 산하에 별도의 검토 위원회를 만들어서 금성 교과서를 수정하게 만들었다. 당시 금성교과서 저자들은 국편위 검토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국편위는 교과부 산하 기관이어서 교과부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이와 같은 행위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물론 당시 위원장은 전임인 정옥자 위원장이기는 하지만 국편위는 연구기관으로써 본분을 잊고 정치적 줄서기를 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