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바가지에 담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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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호(phshin)등록 2012.10.10 09:39
신라의 젊은 승 원효가 친구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어느날 동굴에서 잠자다가 목이 말라 찾아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다고 한다. 아침 햇살에 비친 해골을 보고 둘은 토하며 놀랬다고 한다. 그 일로 원효는 해탈을 얻은 지라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 왔고, 의상은 혼자서 당나라로 갔다. 그 후 원효는 파계 등의 기이한 스캔들(?)을 남기며 석가모니의 뜻을 행동으로 전파했고, 무수히 많은 절을 남겼다.

그가 추구한 불교는 신라 통일의 초석이 되고, 고려로 이어지며 국가 이념이 되자, 썩어문들어졌고, 그 후 조선시대에서는 배척 당했다. 오늘날 이 땅에 참 불교가 살아있는지는 아무도 단언 못한다.

1,400 여 년 전 일화를 보며, 아직도 우리는 해골바가지의 물을 들이키며 갈증을 풀고 있으나, 아무런 느낌 조차도 역겨움 조차도 못 느끼는 우매한 중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인 지상의 왕조가 아닌 대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서구에서 이식받아 이 땅의 정치 시스템으로 삼은 지 어언 60 여 년, 그 사이 독재가 기승을 부려서 이 제도가 마비된 시절을 빼면 이제 겨우 20 여 년 민주주의를 겪고 있다. 소수가 아닌 다수의 결정을 따라가는 제도에서, 참 정치가 살아 숨 쉰다고 본다면 착각 아닐까. 합의체제가 아닌 한 소수를 대표하든 다수를 대표하든 일단 선택된 권력은 권력을 독점하여 소수가 그 권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대의를 왜곡한 우민정치를 시행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마치 생명을 해골에 담아 마시는 것과 같다.

좋은 정치에 목말라 모두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가 담긴 물을 마시기는 했지만, 그 물이 든 해골 바가지를 외면하거나 보지 못하고 있다. 대의 투표가 끝난 후 다수의 위임을 받은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여 맘껏 권력을 휘두르는 한, 정치모리배와 권력을 이용하는 관료들의 세상이 통제될 리가 없고, 결국 형식만 민주적이고 실제는 독재인 정치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권력의 독재, 언론의 독재, 자본의 독재 등등... 해골 바가지에 담긴 민주주의랄까. 권력을 담은 물은 언제나 해로울 수 있다. 해탈하지 못하는 중생들에겐 그저 마실 때만 시원할 뿐.

민주주의가 담긴 물은 생명이면서 반생명인 해골 바가지 물임을 다시 새겨보고자 한다.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니라 우리 삶을 보다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 제도요 그릇일 뿐이다. 그릇의 겉모양을 자꾸 번지르르하게 만들면 내용물이 비싸지게 되고 민의의 주인공은 온데간데 없어 지거나, 혹은 내용은 보지도 않고 소유욕만 부추겨서 겉모양만 보고 살도록 부추긴다. 그럼으로써 지역감정은 수그러들줄 모르고, 세대간 격차는 해소될 줄 모른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거주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특정 지역의 볼모가 되고 있고, 불멸의 인간이 아니면서도 세대간 격차를 해소하질 못하고 있다. 이는 그릇만 보고 권력을 속단하는 단견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요, 해골 바가지를 아직도 훌륭한 그릇으로 착가하는 미몽에 휩쓸려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현재 우리가 가진 정치제도에서 좋은, 아닌 차선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릇이 이것일 뿐, 더 좋은 그릇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자본주의는 꽃을 피웠다. 이 민주주의의 그릇을 훌륭하게 광내고 때 빼겠다고 덤비는 정치인이 있다면, 해골 바가지를 아직도 보지 못했거나 외면하는 아마추어 혹은 정치 모리배와 다름 없다. 민주주의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있고, 그것을 담은 그릇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훌륭한 공약도 후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쓸모없는 해골 바가지다.

민주주의라는 틀이 자본주의라는 해골바가지에 담겼다고 상상해 보라.
더욱이 잘사는 자들 일수록 쪼잔한 그릇을 나누어 주지도 공유하지도 않는다. 그릇 부수지 말고, 주는 밥이나 불평하지 말고 잘 먹으라고만 한다.
그릇은 그릇일 뿐, 담긴 생명을 보고 담아낼 생명을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선거는 그릇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번지르르한 정책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례를 하나라도 가지고 끝장 토론하여 인물을 평가한 후 투표했으면 한다.

정책 선거도 좋고 인물 선거도 좋으나, 해골 바가지 가지고 그릇 품평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릇이 큰 인간이든 작은 인간이든 무슨 내용을 담았는지 속시원하게 솔직하게 현재의 사건과 대비하여 구체적으로 펴놓아야 한다. 단 한개의 정책만 내어도 좋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역사는 자산가들이 운영하는 은행 금고에 맡기자거나, 아빠 엄마는  그럴 분이 아니라는 해골 물을 가지고 다니는 후보가 아니라, 지금 이 문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골을 차버린 그런 후보를 보고 투표하고 싶다. 그릇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목마르다고 아무 그릇이나 내미는 그런 후보는 싫다.

민주주의는 타는 목마름으로 마실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강렬한 해탈을 지원해주는 촛불 일뿐이다. 민주주의를 기다리지 말고, 진정한 참 인간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촛불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지만, 항상 어둠이 있는 법. 인간은 불멸이 아니다. 감시하지 않으면 촛불을 훔쳐가는 해골이 넘쳐난다. 도둑은 밤이 좋다.

선거 때만 되면 약자 편이 되어, 후보 단일화 하라, 단결하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나오고 싶은 사람 다 나와서 심판 받으라고 하면 더 좋을 듯 하다. 지금 그 두 사람이 최선이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셋이 나오면 지고 둘이 나오면 이긴다는 수학적 권력 놀음에 왜 같이 휩쓸려 나의 고유한 판단을 버리고 남을 쫓아가기 바쁜가. 이런 선거를 계속하면 나의 판단은 자연스럽게 마비된다. 그리고 어느듯 나도 해골 바가지를 들고 마시고 있게 된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제도가 아니라 지금 숨 쉬고 있는 차악의 제도라고 믿고 싶다. 대중을 가장 쉽게 우매하게 만드는 제도이어서 그렇다. 겨우 4 ~5년에 한번 균등 권력을 행사하면서 세상이 바뀌길 믿는 가. 그건 가식이요 세뇌된 정치 허영이다. 진정한 자유인이요, 진정한 철인이라면 그 해골바가지를 보고 깨달음을 구하는 젊음이 필요하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꺽이지 않는 목마름으로, 무기를 들고 적을 부수는 그 날까지 투쟁하며 사는 진정 아름다운 영혼의 자유인이 많아져야 한다. 50~60대가 우리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늙은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20~30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밝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자의 그릇이지 게으르고 거만한 자의 해골 그릇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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