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휴가가 진부하다고요?

헌책방지기가 제안하는 여름휴가 독서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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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walee)등록 2012.08.14 10:02
저는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서 일하는 일꾼입니다.  말 그대로 여긴 헌책방이지요.  주로 중고 책을 사고파는 일을 합니다.  오늘 저는 이 뜨거운 여름을 확실하게 날려버릴 만한 비밀 방법 하나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책 읽기'입니다.  어딜 가든지 더운 요즘 같은 날씨에 책 읽기 만큼 확실한 피서가 없습니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라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책 읽기는 예로부터 돈 적게 들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그걸 실행에 옮긴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진지하게 책을 읽어 보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이것이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책 읽기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적 바쁠 땐 바쁘다고 책을 안 읽고 휴가 때는 휴가라서 책을 안 읽으니까요.  자, 올 여름에는 작정하고 책 한번 읽어 볼까요?  갑자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요?  그래서 제가 헌책방에서 파는 책 몇 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책방 영업 하는 건 아닙니다.  오해는 마세요!)

저는 책을 읽을 때 관심사에 따라서 몇 가지 책을 한꺼번에 읽는 걸 즐깁니다.  이렇게 하면 한 책만 읽을 때보다 좋은 점이 있어요.  책을 하나만 읽다보면 지루하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와 연관된 다른 책을 읽어보면 전에 읽었던 책이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시험 보다가 잘 모르겠는 문제가 나오면 다음,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방식과 비슷해요.  그러면 전에 못 풀었던 문제 답이 다른 문제를 풀면서 딱 나오는 경험, 다들 한 두 번씩 있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에 책도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네그리(Antonio Negri, 1933- ) 라는 사람을 한번 보죠.  네그리는 무척 유명해서 '내그리 주의'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분야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정작 별로 없죠.  자, 휴가를 이용해서 네그리에 관한 책을 몇 권 한꺼번에 읽어보는 것입니다.  네그리의 가장 유명한 책은 <제국>, <다중>, <공동체>가 있고 그중에 핵심은 <제국>입니다.  우리말로 번역 된 책이 있습니다.

네그리에 관련한 책들 왼쪽 위로부터 오른쪽 아래로 돌아가며 <제국>, <아우또노미아>, <미래로 돌아가다>, <네그리 사상의 진화> ⓒ 윤성근


우리는 흔히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미국'을 꼽는데요, 왜 그런지, 왜 그래야 하는지, 어째서 미국을 그렇게 봐야하는지 잘 모르고 그냥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미국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네그리의 <제국>이 미국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은 아닙니다만 제국주의에 대한 고찰은 한번 깊이 해볼 만하죠.  하지만 <제국>을 그대로 독파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그와 함께 <아우또노미아>, <네그리 사상의 진화>, <미래로 돌아가다> 같은 책을 함께 보는 걸 권합니다.  <아우또노미아>와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네그리라고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사상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아우또노미아>는 갈무리 출판사 공동대표인 조정환 님이 쓴 책으로 <제국>은 물론 다른 책에 대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쓴 글이죠.  <네그리 사상의 진화>는 네그리와 함께 <제국>과 <다중>, <공동체>를 함께 집필한 마이클 하트가 쓴 책이기 때문에 어떤 책보다도 네그리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줍니다.  <미래로 돌아가다>는 네그리와 함께 역시 최고의 진보 지성으로 인정받는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가 참여해서 쓴 책으로 우리에게 '좌파'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최근 언론에 많이 나오는 '종북 좌파' 따위의 말도 그냥 흘려듣지 말고 이런 책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접근 해 볼 일입니다.

내친김에 다른 예도 들어보죠.  이번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입니다.  이분도 이름만큼은 들어 본 적이 많을 겁니다.  '가스통'이라는 재밌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 많은 분들은 이 분이 쓴 유명한 책 <촛불의 미학> 때문이기도 하겠죠.  어쨌든 이분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프랑스 철학자입니다.  요즘 1960-70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푸코, 들뢰즈, 데리다 같은 분들이죠.)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읽히고 있는데요, 바로 그 전까지 활동한 바슐라르를 살펴보는 건 무척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바슐라르가 지은 책 왼쪽 위로부터 오른쪽 아래로 <로트레아몽>, <불의 정신분석/초의 불꽃>, <부정의 철학>, <꿈꿀 권리>. 아쉽게도 대부분 책이 절판 상태입니다. ⓒ 윤성근


바슐라르는 프랑스 최고의 대학인 소르본에서 역사철학과 학장까지 지냈을 정도로 뛰어난 지성인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랑스 철학자들의 그렇듯이 이분의 글도 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관념적이고, 난해하고, 게다가 철학책을 문학처럼 풀어쓰는 탓에 우리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방금 말한 유명한 책 <촛불의 미학>도 얇은 책이긴 합니다만 제대로 이해하며 읽어본 사람은 전공자가 아닌 바에야 거의 없을 겁니다.  자, 올 여름은 바슐라르를 읽고 아는 척 너스레를 좀 떨어보자는 겁니다.

헌책방에 있는 책을 골라봤더니 다행히 중요한 책은 다 있네요.  <로트레아몽>은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프랑스 시인의 이름을 그대로 빌린 책입니다.  유명한 시인인데 저 역시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부터 주의 깊게 봐야 할 바슐라르의 사상 중심에 '반항, 부정, 반대'라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바슐라르는 로트레아몽의 시를 해석하며 그 안에 있는 반항 정신을 끄집어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부정의 철학>과 <꿈꿀 권리>를 읽어보면 의미가 쉽게 다가오죠.  재미있는 건 <로트레아몽>은 시(詩)에 대해서, <부정의 철학>은 과학에 대해서, <꿈꿀 권리>는 미술을 가지고 이런 생각을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그에 하나 더 얹어서 <초의 불꽃(촛불의 미학)>을 본다면 이제 바슐라르를 어느 정도 읽은 티를 낼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 서점가를 휩쓴 작은 책 <분노하라>를 기억하시나요?  그와 비슷한 시기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기억하시죠?  아마 텔레비전 광고 좋아하시는 분은 '모두가 yes 라고 말할 때 no 라고 할 줄 아는 사람' 이라는 카피도 잘 아실 겁니다.  지금 우리에겐 진실을 폭로하고 거대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NO!'라고 외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바람은 최근 북유럽의 위험한 철학자라는 별명을 지닌 '지젝(Slavoj zizek, 1949- )'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지난 6월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지젝이 대중강연을 했을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얼핏 봐도 천여 명 정도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자리를 꽉 메우고 있는 모습에 무척 놀랐습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부정하고, 분노하고, 진실을 바라봐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먼저 자기 안에 든든한 사상적 기반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바람 불 때 무너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슐라르의 '부정의 철학'은 지금 꼭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휴가처럼 며칠씩 시간을 낼 수 있는 때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진중하게 맘 잡고 읽어 볼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으니까 휴가를 이용해서 이런 책을 여러 권 묶어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사회학이나 철학책이 별로 내키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다른 책도 하나 준비해봤습니다.  이건 아주 전통적인 방법인데요, 더우니까 추운 설정을 갖고 쓴 소설책을 읽어보는 겁니다.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미리 단정하지 마세요.  추운 곳을 상상하며 소설을 읽는 건 실제로 추운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만큼이나 효과가 좋습니다.  책은 그 어떤 매체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쓴 소설 한 권에 푹 빠져있다보면 절로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추운 느낌을 설정으로 해서 쓴 소설은 무척 많습니다만, 시간관계상 한 가지만 권하겠습니다.  독일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마의 산>입니다.  아마 책 제목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역시 이 책도 끝까지 읽어본 분은 많지 않을 걸로 예상됩니다.  무척 긴 소설이거든요.  워낙 긴 소설인데 토마스 만의 소설 중에서도 무척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은 축약본으로 읽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휴가니까 맘 잡고 완역판으로 한번 도전해보는 겁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정말 재미있고 서늘한 내용입니다.  일단 배경 자체가 스위스 산 위에 위치한 멋진 요양소거든요.

동서문화사판 <마의 산>문고본. 오래 된 책이지만 작고 휴대하기 좋습니다.삼중당 문고는 세 권으로 분권된 것이 있고 최근엔 을유문화사에서 새로 번역되어 나온 책도 있습니다. ⓒ 윤성근


소설 <마의 산>의 실제 배경 문고판 책 안쪽에 있는 사진.소설 속 배경인 요양소 자리인데, 지금은 스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군요.오래 된 사진이지만 이것만 봐도 무척 시원하지 않습니까? ⓒ 윤성근


무척 긴 책입니다만 내용을 말하자면 짧습니다.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제 스물세 살이 된 청년으로, 스위스에 있는 국제요양원 베르크호프에서 요양 중인 사촌을 만나러 왔습니다.  애초 계획은 사촌의 안부만 확인하고 조금만 머물다가 돌아가려 했는데 요양소에서 그만 병이 옮아 무려 7년간이나 뜻하지 않은 요양생활을 하게 됩니다.  책 내용은 이렇게 요양소에서 머물며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입니다.  굉장히 많은 요양소 사람들이 저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등장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서 인간의 존재 이유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과감하게 파고듭니다.  긴 소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주눅 들지 말고 휴가 기간 동안 천천히 읽어본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이내 소설 속 스위스 요양소에서 주인공과 함께 생활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물론 요양소에서의 생활이 그리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니지만요.)

어떤가요?  휴가를 이용해서 책 읽어 볼 마음이 좀 생겼나요?  혹시 올해 벌써 휴가를 다녀오신 분이라면 내년에 한번 도전해보세요.  가족과 함께 바다나 산으로 놀러가는 것도 좋지만 읽을 책 여러 권을 정해서 헌책방 순례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돈은 적게 들면서 몸과 마음, 그리고 지식까지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 읽기 휴가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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