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알았다. 내가 만든 제품이 내 동료를 쓰러뜨리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에스제이엠 폭력사태를 바라보며,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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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miya2003)등록 2012.08.10 11:03
"15년 만에 알았다!

내가 생산한 제품이 자동차 말고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2층 높이 좁은 통로에 있는 노동자를 맞춰 쓰러뜨리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100여 명의 노동자가 저마다 요령껏 피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여기 저기서 미처 피하지 못해 피 흘리는 동지들이 늘어났다. 계단에 사무실 집기로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지만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미친 짐승처럼 올라오며 거침없이 머리를 내리친다.

어젯밤 내가 만든 제품이 내 머리에, 내 동료의 가슴으로 날아왔다. 내 동료의 노동의 대가를 통해 발생된 이익은 용역업체 직원을 불러들이는데 사용되었다. OO형은 내가 만든 제품에 맞아 시내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해 인근 도청 소재지 종합병원으로 실려갔다.

나는, 내 동료는, 왜 15년간 노동했던 이곳에서 피를 흘려야 하는가!

나는 에스제이엠 노동자다. 오늘은 이렇게 쫓겨났지만 정문이 열릴 때까지 이곳에서 투쟁할 것이다. 내 동료와 함께."

딸 넷 이후에 귀하게(?) 얻은 외아들이지만 없는 집안에선 그저 노동력일 뿐이었다. 그래서 지긋지긋한 농사가 싫어 3만 원 달랑 들고 스무살이 채 되기도 전에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밤새 달려 도망온 안산. 이 공장 저 공장을 전전하다 들어간 에스제이엠. 이곳에서 15년 이상을 일해 집도 마련하고, 결혼도 했다.

야간에 일하는 게 너무 징그러웠는데, 얼마 전 야간 근무가 처음 없어지던 날, 밤에 집에 와서 잘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믿겨지지 않았다는 사람. 노사는 협력적이고 평화적일 수 있다고 순진무구하게 믿어온 사람, 바로 내 남편이다. 그 사람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살아오면서 노래하는 일과 글쓰는 것에 지독한 콤플렉스가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짧은 글이 나를 울리고 조합원들을 울렸다.

아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멀쩡히 일한다고 작업복 입고 출근한 남편이 피투성이가 되어 공장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설마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순진한 눈을 가진 아낙들이 모였다.

용역업체 컨텍터스가 영업정지를 당하고, 안산경찰서장이 경질됐다. 그런데 업체만 바뀌어 다른 용역들이 공장안을 점거하고 있다. 노동부는 침묵하고, 쫒겨난 우리 남편들은 이 뙤약볕에 기약없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폭력을 사주한 회사는 매일같이 수통씩 조합원들에게 "불법과 타협하지 않겠다. 외부세력에 현혹되지 말라"고 협박하는 문자를 보낸다. 우리 아내들의 가슴은, 남편들의 얼굴이 새까매지면 질수록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 하면서 새벽에 용역업체 직원들을 투입해 가족을 때리라고 사주한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 새벽 "살려달라"는 외침을 외면한 공권력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우리 가족들은 모인다. 아이들의 아빠가 자랑스런 작업복 입고 다시 현장으로 출근하는 그날까지 계속 모이고 또 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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