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처벌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된다!

대구 선관위의 <그네 생막걸리>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

검토 완료

최윤식(choisad)등록 2012.07.29 11:15
가능성을 처벌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된다!

인터넷 웹 서핑을 하다가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보았다. 재미있다고 말했지마는 사실은 너무나 슬픈 기사였다. "아,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구나!" "내가 이런 나라에서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국민은행에서 퇴직했던.. 한 평범한 시민이었던 김 종익씨. 그저 인터넷에 공개되어 이미 200만여명의 네티즌들이 본 동영상-과거 이 명박 대통령의 BBK 사건을 다룬-을 자신의 블로그에 링크 했다가 한 개인의 삶이 철저하게 파괴 되어야만 했던 민간인 사찰 사건의 망령이 되살아 나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우선 그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대구의 한 주류 유통업체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를 연상케 하는 막걸리를 출시했다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대구 선거관리위원회 는 '그네 생막걸리'<사진>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이 막걸리를 제조·판매한 데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업주 이모(45)씨를 경고 조치했다. 선관위는 또 이 상표 사용을 중지하고, 인터넷 광고 삭제, 관련 광고 전단 배부 중지 등을 명했다. '그네 생막걸리' 병에 붙은 라벨에는 표주박 그림 옆에 '그네'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어 '박그네'로 읽히고, 박근혜 후보를 닮은 여자가 한복을 입고 그네를 타는 모습도 담겨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후보 또는 후보가 되려는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 또는 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하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조선일보)

허긴 국가권력이 간통죄라는 이상한 법으로 성인인 개인의 아랫도리 까지 관리(?)해주는 나라니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건 지나친 국가 권력의 개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에 중립적이어야 함은 기본 중에 기본인데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될 거 같다.

이 막걸리 상표 라벨을 보면서 선관위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교묘하게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게 정말 궁금하다.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많지도 않을 것 같지마는 설령 그렇게 기발한 상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래서 그것이 박 근혜 후보를 찍어야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박 근혜라는 이름을 몰라서 못 찍는 유권자가 몇 명이나 될까? 박근혜는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유명 정치인인데...

내가 알기로는 법이 만들어지면 언어학자들의 감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안다. 언어학자들이 왜 법 조문을 검토 하는가? 법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자의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언어나 문자는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법 규정이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언어학자들의 검토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판사나 공무원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법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다. 판사는 법 조문이 규정하는 대로만 적용하고 집행해야 한다. 언어의 불완전성 때문에 복잡하고 미묘한 현실 세계를 일일이 다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간혹 법 전문가들의 유권해석이라는 것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유권해석이 법 조항의 취지를 거스를 수 없음은 상식중의 상식이다.

그리고 선관위는 그 막걸리 라벨에 등장하는 여자의 그림이 박 근혜 후보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 그림은 그네를 타고 있는 여자 그림일 뿐이다. 그 그림이 박 근혜 후보와 닮았다고 하는 주장은 그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 여자고 박 근혜 후보 또한 여자이기 때문에 닮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기호학에서 도상 기호는 유사성에 의해서 의미가 발생하는 기호를 말한다. 사진이나 초상화가 대표적인 Icon, 도상 기호이다. 나는 그 그림과 박 근혜 후보 사이에 어떤 유사 관계도 발견할 수가 없다.

대구 선관위의 이번 조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 권력이 일반인들의 행위가 아니라 생각을 규제하려 든다는데 있다. 이 막걸리의 경우 브랜드 네임은 <그네>다. 그네는 근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야말로 연탄과 볼펜의 관계다. 더구나 조롱박은 그림이다. 그 조롱박(그림)과 그네(글씨) 또한 연탄과 볼펜이다. 국가가 개인의 생각을 통제하고 규제하려는 발상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선관위가 하늘 처럼 떠 받는 공직선거법 조차도 기사에 따르면 후보 또는 후보가 되려는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 또는 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하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명시라는 말이 무엇인가? 조롱박 그림과 그네가 박 근혜를 명시하고 있는가? 아무리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암시했다고는 할 수 있을 지라도 명시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관위는 명시와 암시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고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어야 하는데 이것이 상식이란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이번 대구 선관위의 조치는 선거법 규정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그 막걸리 업체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그런 상표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그것을 규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고 법에 의해서만 규제할 수 있는 나라인데 법 규정은 그런 의도 까지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구 선관위의 조치의 심각성은 국민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을 통제하려는데 있고 그리고 더 심각한것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그 행위의 가능성을 규제하려 한다는 것에 있다. "저 사람은 범죄형으로 생겼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으니 감옥에 집어넣어"와 똑같은 발상인것이다. 모든 운전자는 교통 사고를 낼 가능성이 있으니 모든 운전자를 처벌해야 하는가? 의도나 가능성을 처벌하는 나라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는가? 의도나 가능성 같은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려는 발상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절대로 권력 기관이 아니다. 비정치적이고 비권력기관인 선관위가 이런 발상을 할 때 다른 권력 기관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에 더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 마디로 그네 생막걸리 사건은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첨부파일
박그네 생막걸리.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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