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 지주 아들과 소작인 아들의 인생 역전 이야기

<그 소년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를 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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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parkdo45)등록 2012.07.19 10:40
나는 지난 7월 10일, '딸, 아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인생길 이야기'로 <그 소년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를 펴냈다. 나는 이 책에서 "이제 내 마지막 꿈은 다음 세대들이 인생이라는 험한 개울을 건너는데 징검다리의 한 돌멩이 구실을 하고 싶다. 나는 그 꿈을 이루고자 이 책에 그 돌멩이와 같은 말을 차곡차곡 담았다"고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향도등과 같은 인생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IMG@나의 이번 책에 실린 글은 대부분 체험적인 이야기들로, 특별히 어린 시절부터 집안어른들이나 고향사람들에게 들어오고, 직접 보고 들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까맣고 쪼그만 볼품없는 소년이 대통령이 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펼쳤다.


이밖에도 정주영, 박수근, 이중섭, 김원일, 고흐, 렘브란트, 에밀리 브론테 등의 젊은 날 이야기와 '아버지의 등불'에 얽힌 이야기, 친형을 무장경찰로 호송한 다음 18년 동안 감시케 한 비정의 동생 이야기, 순경에서 검사장이 되었던 어느 변호사 이야기, 또 내가 근현대사 답사 여행길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그밖에 배우 최은희 씨의 숨은 일화 등으로 다음 세대에게 슬기로운 인생길을 명쾌하게 제시한 뒤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내일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되라. 이제 곧 너희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라. 현명한 목장 주인은 햇볕이 있을 때 건초를 마련한다. 

아래 글은 이 책 42꼭지 가운데 첫 꼭지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의 일부이다. 
- 기자의 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너희도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매우 존귀하다.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다. 이는 "천지 우주 간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너희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언저리에 이 진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왜 나는 못생겼을까?', '왜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을까?',  '왜 나는 의지력이 약할까?',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 '왜 나는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까' 따위의 이유로, 때로는 이런저런 이유도 없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학대하고, 심지어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당사자야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제삼자가 볼 때는 하찮거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너무 쉽게 자기 생명을 버린다.

몇 해 전 한 여고생이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하고 정상에 오른 채 죽겠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고, 지난해 연말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잘못 보았다고 한 수험생이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는구나. 정말 세상을 너무 모르는 철부지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역전에 다시 역전이 거듭되는 게 인생인데, 한 순간만 보고 너무 섣부른 결론을 내리니 말이다. ………….

며칠 전, 신문 보도를 보니 청소년 가운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연간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심지어 '행복 전도사'를 자처했던 나이 많은 부부에, 고위직 공직자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가난 때문에, 진학에 실패해서, 부모가 꾸중한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렸기 때문에,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게 드러나 부끄러워, 살아봐야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등 그들 나름대로 절박한 사연과 그럴 듯한 명분을 남길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은 못난 짓이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IMG@

지주의 아들

@IMG@인생은 변화무쌍한 한 편의 드라마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의 화복길흉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움)로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 아버지 고향 금오산 기슭에서 장택상 전 국무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났다.

두 집은 경부선 철길 하나 사이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졌는데, 해방 무렵까지만 해도 장택상 전 총리 집안은 영남 제일의 대부호 만석꾼으로 고향 일대에서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정도였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山口) 현에서 소학교를 다니고 도쿄에서 와세다(早稻田)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등, 온갖 부귀영화는 다 누렸다.

해방 후에도 장택상 씨는 수도경찰청장, 초대외무부장관,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 칠곡에 출마하여 5대까지 내리 네 차례나 당선하여 국회부의장, 제3대 국무총리 등 대통령을 빼놓고는 대한민국정부의 고위직은 거의 다 누려 보았다.

소작인의 아들

@IMG@이와 달리 박정희 대통령은 출생부터 한 편의 비극 드라마처럼 참담했다. 그 무렵에는 조혼으로 마흔만 넘으면 며느리나 사위를 보고 긴 담뱃대를 물고 노인행세를 하던 때에 박정희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우선 시집간 딸과 함께 해산을 하자니 식구들에게 체통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동네사람들에게 남세스럽고 더욱이 그때까지  육남매로 여덟 식구가 외가 위토(位土, 묘지에 딸린 논밭) 여덟 마지기 농사를 지어가며 근근이 살아가는데 또 한 입 보탠다는 게 아찔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임신 사실을 안 때부터 아이를 지우고자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보았다. 요즘 같은 시절이면 박정희는 세상의 빛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 뱃속 아이를 지우고자 남몰래 지랑(간장)을 한 사발 마셔보기도 하고, 섬돌에서 뛰어내려보기도 하고, 수양버들 강아지 뿌리를 달여 마시기도 하고…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아도 아이가 지워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혼자 낳은 뒤 이불에 돌돌 싸서 아궁이에 던지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자 막둥이가 귀엽고 어머니는 그동안 당신의 소행이 뉘우쳐지면서 기르기로 작정했다.

이미 말라버린 어머니의 젖꼭지에서 젖이 나오지 않아 갓난아기 박정희는 밥물에 곶감 같은 것을 넣어 끌인 멀건 죽을 먹으며 자랐다. 그래서 박정희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체구가 몹시 작았다.

박정희 아버지는 위토만으로 도저히 생활이 안 돼 장 직각(장택상 아버지 벼슬이름)댁 땅 다섯 마지기를 소작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박정희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둘째 무희 형이 지게에다 도지(賭地, 논밭을 빌린 삯)와 마름에게 줄 뇌물 씨암탉을 지고 장 직각댁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자랐다.

인생 역전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어릴 때 제대로 먹지고 못해 체구도 작은 소작인의 막내아들이 국가최고회의 의장이 되고, 곧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장택상 씨가 볼 때는 천지개벽할 정도로 놀랄 일이었다. 마름의 아들도 아닌, 상대도 하지 않았던 소작인의 아들이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던 대통령이 되다니.

그래서 장택상 씨는 5 · 16 후 군정연장반대투위 고문,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의장 등, 반 박정희 운동에 앞장서며 당시의 '박정희 의장',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공식 칭호를 붙이지 않고, '박정희 씨' '박정희 군'이라고 낮춰 부르며 매우 심한 독설을 늘어놓았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세상이 변할 줄도 모른 채 아직도 자기를 소작의 아들로 여기며 깔본다고.

제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장택상 씨가 고향 칠곡에서 입후보하자 박 대통령이 총재로 있었던 민주공화당은 30대 정치 신인을 내세워 보기 좋게 낙선시켰다. 당시 경북 칠곡 선거구는 장택상 씨가 네 차례나 70% 이상의 유효 득표율로 당선된 그의 텃밭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언론과 국민들은 장택상 씨의 당선을 낙관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깨고 장택상 씨는 무명의 정치 신인에게 참패했다.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 송한철 후보 31,446표에 자유당 장택상 후보 23,647표였다.

선거에 진 가장 큰 까닭은 칠곡경찰서에서 장택상 후보를 특별히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무장경찰 네댓 명을 앞뒤로 호위시킨 바, 시골 사람들이 무장경찰을 무서워한 나머지 장택상 유세장에는 도시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그런 뒤에도 장택상 씨가 계속 현실을 인정치 않고 "이번 선거는 장택상이가 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패한 것이다"라고 독설을 퍼붓다가 그만 병이 들었다.

항복 편지

마침 미국에 있는 딸의 초청으로 신병을 치료하고자 수속을 밟는데, 외무부에서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장택상은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마침내 '박정희 대통령 각하 전상서'라는 사실상 항복 편지를 보냈다.

"각하의 건승하심을 축복합니다. 각설 소생은 금년 1월경에 신병으로 의사의 권유에 의하여 미국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외무부로부터 회수여권을 발급받아 미국에 가서 치료를 마치고 금년 초에 귀국한즉, 의외에도 비행장에서 여권을 압수당하고 1주일 후에 다시 외무부에 가서 압수된 여권의 반환을 요청하였더니, 외무부 측은 본인의 여권은 취소되었으니 반환할 수 없다고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소생은 자양(滋養, 몸의 영양을 좋게 함)할 여유도 없거니와 일체 비용은 미국에 거주하는 소생의 여식이 부담하므로 외화 유출의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생이 비록 부덕하와 국가에 공로는 없을망정 그렇다고 해서 국가에 해를 끼친 일도 없습니다. 일제 36년간 여권으로 굶주림을 받다가 건국 후 제1대 외무부 책임자(외무부장관)로 이 나라 여권을 창조한 바가 있는 소생에게 회수여권 한 장 허용할 아량이 없대서야 참으로 가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각하의 처단이라면 소생은 다시 개구(開口, 입을 열다)할 여지조차 없지만 만일 그렇지 않고 한 하부의 처사라면 각하의 재결(裁決, 판단)이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소생은 금후도 병세 여하에 따라 미국에 가야만 하는 처지에 서 있습니다. 소생의 신상관계로 각하의 염려를 번뇌케 하여 드려 죄스러움을 미리 사과 올립니다."
- 장택상 자서전 『대한민국 건국과 나』 288~289쪽

지난날 지주의 아들이 소작인 아들에게 꼬리를 내리고 납작이 땅에 엎드려 쓴 글이다. 이 편지가 청와대에 접수된 뒤 장택상 씨는 외무부로부터 여권을 받고는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이것이 인생이다

내가 항일유적 역사현장으로 장택상 전 총리의 구미 오태동 생가(대한광복회 박상진 총사령이 부하를 시켜 장택상 아버지 장승원을 처단한 곳)를 찾아갔더니 지난날 으리으리하던 기와집은 이미 오래 전에 남의 손으로 넘어가 한때 절이 되었다가 지금은 한식집으로 바꿔 있었다. 그 시절 다 쓰러져가던 초가삼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말끔히 단장돼 경상북도 지정기념물 제86호로 날마다 전국에서 몰려든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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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한 호사가는 인동 장씨는 왕손의 명당을 찾아 인동에서 금오산 기슭 오태동을 찾아왔지만 정작 왕손의 명당자리는 박정희 아버지 박성빈 씨가 약목에서 먹고 살 수가 없어 처가 수원 백씨(박정희 대통령 외가)의 묘답을 부쳐 먹고자 등짐을 지고 찾아온 몰락한 고령 박씨에게 돌아갔다고 하더구나.

이밖에도 풍수지리설에 따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을 배격하는 나로서 너희에게는 들려주지 않겠다. 나는 좁은 대한민국 땅에다가 내 땅이네 하면서 아무데나 묘지를 쓰고 석물을 갖다놓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는 우리가 과감히 버려야 할 유산으로 보기 때문이다.

만석꾼의 자식이 말년에는 소작인 자식에게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이것이 인생이다. 이런 인생 역전 일화는《삼국지》나《18사략》 등에도,《폭풍의 언덕》과 같은 문학작품에도 숱하게 나온다. 가까운 예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사형수가 되고, 사형수가 대통령이 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인생은 변화무쌍 재미있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더라도 그때만 지나면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이 세상은 네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이런 세상에서 네 꿈을 한번 멋지게 펼쳐라. 너를 대신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곧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참으로 위대하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 살 수 없다. 누구나 이 세상에 단 한번만 주어진 삶이기에. 죽을 용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의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일에 집착하며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자살하고 싶은 사람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성공한다. 누구나 인생은 그 사람이 쓰는 한 편의 드라마다. 기왕이면 재미있는 감동의 드라마를 쓰고 하늘의 섭리에 따라 이 세상을 떠나라. 그래야 다음 세대 사람들이 그대를 아름답게 추억하리라.
덧붙이는 글 그 소년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 / 출판사 ; 오래 / 신국판 356 면 / 값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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