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분들 생각하며 웁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2012 충주 합동위령제(2012.7.16 오후 3시, 충주국민체육센터 호암예술관)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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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pleamore)등록 2012.07.17 15:18
1.
우는 이들과 함께 울어주라(로마서 12장 15절) 하시는 하나님!

땀을 흘려 일을 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워도,
우리 몸과 마음은 편해지지 않습니다.
후덥지근한 더위를 피하려 에어컨을 켜 두어도,
우리 몸과 마음은 차분해지지 않습니다.
문을 꼭 잠그고 화장실에 홀로 앉아있어도
우리 몸과 마음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와 마음의 짐이 우리 몸에 남아 있어
우리를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2.
우리는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의 광기와 미친 정치권력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았는데도,
그 목숨들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여
태연하게 일상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통에 억울하게 죽어가야 했던 분들의 몸과 생명이,
결국 우리 스스로의 몸과 생명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몸과 생명들이었고,
신비로운 호흡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분들의 죽음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상처로 아픔으로 우리 속에 깊이 남아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였거나 외면하여 왔을 뿐임을 고백하나이다.

3.
다시 우리는 그분들 억울한 죽음과 처참한 주검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그분들께는 면목이 없어서 우리는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는 우리 스스로에게도 한없이 부끄러워 우리는 웁니다. 
학살당하신 분들이 아직도 원을 삭이지 못하고 겪고 있을 아픔을 오늘은
진정 우리의 그것으로 알고 느껴봅니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있는 그분들의 상처들을 끄집어 내어 살펴봅니다. 
그 참혹했던 순간들과 중한 목숨이 처참히 살해되던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가 정말로 아파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게 하옵소서.
그분들의 숨과 일상을 지켜주지 못한 아픈 역사가 아직까지도 계속되는 데에는
우리도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이 부끄러운 역사를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를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우리가 온 힘을 쏟게 하옵소서.

4.
억울하고 처참하게 학살당하신 님들이 빼앗긴
호흡과 소중한 하루하루를 생각합니다.
가족들과, 그리고 우리와 함께 했어야 할 애틋한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무참히 짓밟힌 님들의 자존감을 생각합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으면서도
수십 년 동안 받아온 손가락질과 억울한 누명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이분들의 넋을 위로해 주옵소서.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같은 위로와 평안을 내려 주소서!

5.
우리 여기 살아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안타깝게도 학살당하신 분들이 받으신 충격과 절망과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의 깊이를 재는 것뿐입니다.
그 원한을 풀어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분들께 만분의 일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일을 지치지 않고 하는 것뿐입니다.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생각하고 말하고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가 늘 그러했듯
이 땅 한반도에는 아직도 전쟁 세력, 적대 세력이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서운 전쟁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면서도,
전쟁의 상처는 아물게 하려 않습니다.
이들이 다시 이 땅 남쪽의 정치권력을 잡아보겠다고
모든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들이 계속해서 전쟁 분위기를 돋구고, 힘을 자랑하는 한
우리에게 평화와 인권,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 싶어하는 새로운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학살당하신 분들의 상처와 그것으로 하여 우리에게 남겨진 상처는 더 깊어질 따름입니다.
우리가 이 반민족 세력,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을 편드는 자리에 앉지 않게 하옵소서!

6.
이들을 상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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