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가는 길’ 경의선은 “분단이자 희망”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사실상 연결…철마는 달리고 싶다

검토 완료

이윤지(ks58yj)등록 2012.07.15 13:57
  우리나라 북쪽 마지막 역인 도라산역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된 도라산역은 쉬이 접근할 수 없다. 오로지 '경의선' 열차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 서울역과 문산역을 잇는 경의선이 아니다. 문산역에서 신의주까지 연결된, 현재는 운천, 임진강을 지나 도라산역까지만 달리는 경의선이다.
                                             <첫번째 사진>

문산역을 찾았다. 전철 경의선을 탈 수 있는 1-4번 개찰구에는 많은 사람이 오갔다. 반면 국철 경의선을 탈 수 있는 5, 6번 개찰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에 한 대있는 열차가 도착했을 때도 20여 명 안팎의 사람만이 내리고 탔다.

                                             <두번째 사진>

경의선은 관광객 수가 확연히 줄고 있다. 이에 과거 1시간마다 운행되던 임진강행 열차를 6번으로, 3번 운행되던 도라산행 열차를 2번으로 줄였다. 경의선을 알고 싶었다. 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왜 경의선을 포기할 수 없는지. 경의선의 과거, 현재, 미래가 궁금했다. 다짜고짜 직원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싶다고 요청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문산역 역장님을 뵐 수 있었다.

남북의 단절·교류를 함께한 경의선
  문산역장 윤명묵씨는 경의선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저 경의선의 정식 명칭을 물은 기자에게 경의선의 역사를 줄줄 읊어주었다. 남북의 단절과 교류의 역사. 이야기 속 경의선은 단절된 남북의 역사를 함께했다.

1906년 4월 3일 서울에서 신의주를 잇는 열차로 시작했다. 남북을 힘차게 내달리며 가장 많은 운수 교통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1945년 6·25 전쟁 이후 서울역-문산으로 단축 운행 되다가, 1951년 6월 12일에는 끝내 운행조차 중단되었다.

그 후, 2000년 남북정상회의에서 경의선 복원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산에서 도라산까지 철도를 놓았고, 북한에서는 개성에서 휴전선까지 철도를 놓았다. 그리고 그 연결식이 2003년 6월 14일 군사분계선(MDL)에서 열렸다. 비로소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연결된 진정한 '경의선(京義線)'이 탄생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역장님은 "그러니까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연결이 다 돼있는 거지. 기차가 못 다녀서 그렇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놓여 있던 커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말이 이어졌다.

남북 교류의 얘기였다. 2007년도 5월 17일,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여객 열차가 한 번 운영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남쪽에서 100명, 북쪽에서 50명으로 꾸려진 인원이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갔었다고. 그 후 2007년도 12월 11일부터 2008년 11월 28일까지 약 1년간 판문점까지 화물열차를 운행했다고 한다. 원래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은 판문점이 아닌 북쪽의 봉덕역이었는데 끝내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열차는 계속 북쪽으로 안 가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발길 끊긴 경의선, DMZ로부터 해답을 찾아라
화제를 돌려 현재로 돌아왔다. 경의선의 현재 승객 수를 물어봤다. 서울에서부터 문산까지는 약 1만 1000여 명. 문산에서 임진강, 도라산까지는 백여 명이라고 했다. 숫자로 보니 더 열악해보였다. 5,6번 개찰구를 쓸쓸히 지키던 할아버님 봉사자가 순간 떠올랐다.

 현재 북한에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곳은 도라산역이다. 신분증을 소지하고, 전화번호를 적은 뒤 임진강역에서 DMZ안보관광 티켓을 구입한 후에야 접근할 수 있다.

 DMZ안보관광. 이것이 경의선의 관광객 유치에 큰 밑거름이 될 거라 여겨졌다. DMZ안보관광이 경의선 승객유치에 도움이 될까. 역장님은 "초창기에는 많이 갔었는데 지금은 한 20명 정도…"라 하셨다. '왜 줄었을까요?'. 이어 물었다. "그쪽에 이제 거의 한 번씩은 다 가봤으니까는. 그 안보관광요금이 11700원이야. 그러니까 뭐 한 번씩만 보면 다시 안 가는거지".

도라산역에서 출발해 도라전망대-제3땅굴-통일촌을 돌아 나오는 DMZ안보관광. 기자도 참여해보았으나 확실히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여타의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루트도 굉장히 짧았고, 북한에 대한 관광객의 섬세한 감각을 일깨우지 못했다.

 DMZ안보관광은 경의선의 발전에 핵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판문점, 자유의 다리 등 남북의 관계를 보여주는 건축물. 그리고 DMZ의 뛰어난 생태체험을 관광에 추가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DMZ안보관광의 변화가 발길 끊긴 경의선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경의선은 '분단'이자 '희망'
  역장님은 파주와 경의선의 발전이 중요한 이유를 얘기했다. 이것들이 차후 물류와 교통의 핵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북의 교류가 점점 활발해졌을 때, 파주가 물류기지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또한 현재 경의선을 중심으로 일산 신도시, 운정 신도시, 풍산지구 등이 형성된 것도 언급하셨다.

하지만 기자는 그보다 더 깊은 문답을 원했다. 일말의 고민 끝에 떠올린 것이 '의미'였다. 지체없이 '경의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 물었다. 역장님의 대답.

"경의선하면 어떻게 보면 분단. 먼저 생각나는 게 분단이고 한 편으로는 희망이지. 언젠가는 다 연결 돼있으니까 이제 차만 다니면 된다는. 분단도 있지만 분단과 함께 희망이지"

임진강역 근처에 있는 임진각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이름의 상징물이 있다. 6·25전쟁 때 신의주로 향하던 도중 폭탄을 맞아 그 자리에 멈춰 선 증기기관차의 화통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비무장지대 안 쪽 옛 장단역 근처에 버려져 있었다. 신의주까지 채 달리지 못한 채 탈선, 피격, 방치된 화물열차. 이 열차의 꿈이라 생각해 지어진 이름이 '철마는 달리고 싶다'이다.

난 이 꿈이 비단 과거 화물열차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이미 연결되어있는 철도 위를 달리고 싶은 철마는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또한 그러한 철마를 타길 원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을까.

                                         <세번째 사진>

서희(21,여)씨는 경의선의 느낌을 "이대로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갈 것 같아요"라 일축했다. 또한 "아는 사람이 적은 것 같아요. 홍보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란 말도 남겼다.

 현재 경의선에 내려진 차후 발전 계획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만나본 경의선은 관심과 발전이 절실해 보였다. 경의선이 차후 제 길을 온전히 달릴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건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