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청, ‘흉물계단’ 설치해놓고 ‘딴청’

국기원 앞 계단 대신 차도를 걷는 시민들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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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passgo)등록 2012.07.13 14:02

이상한 계단과 전봇대 불편한 계단 대신 차도를 걷는 시민들 ⓒ 박상건


망가진 계단, 사람 없는 인도 불편하기 그지 없는 흉물계단이 방치된 모습 ⓒ 박상건


사람 보폭에 맞지 않는 계단에 전봇대, 부러진 난간까지

강남구 역삼동 국기원 앞 사거리. 정확히 역삼동 649-3 청솔학원 앞 도로상에는 보행자에게 불편하기 그지없는 흉물계단이 설치돼 있다. 학원, 회사, 식당가, 주거지 밀집지역으로 통행량이 아주 많은 지역이다. 주말은 예식장, 국기원 등으로 몰리는 시민들의 수가 더욱 늘어난다. 이 거리는 차량이 뒤엉켜 늘 민원이 끊이지 않는데, 여기에 이상한 흉물계단까지 설치돼 보행자가 계단 대신 차도를 이용한다.

문제의 계단은 일반 아파트, 지하철, 회사 건물 등에 설치된 것과는 달리 일반인 보폭에 전혀 맞지 않게 만들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계단은 한 걸음에 한 칸씩 밟아 올라가는데, 이 계단은 한 걸음 반폭으로 걷다가, 어떤 계단은 두 걸음으로 훌쩍 뛰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 높이와 넓이가 각각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보행자가 계단을 밟을 때마다 평소 자기 걷는 습관과는 전혀 맞지 않은 행동으로 높이와 넓이가 다른 이 계단을 짜증스럽게 올라가야 한다. 한걸음 반을 계단에 내딛고 다시 다리를 구부려 절뚝거리면서 그 다음 계단을 밟다보면 피곤함과 짜증스러움이 배가된다. 이 불편한 계단에는 두 개의 전봇대까지 설치돼 있다.

이곳을 이용해본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불편함 때문에 옆 차도로 걷는다. 당연히 차와 뒤엉킨다. 운전자도 보행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언덕배기라서 사고위험이 더 높다. 밤길이면 학원가와 음식점 등을 찾는 시민들 중에 뭣 모르고 이 계단을 이용할 경우 발을 헛딛어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린다. 난간까지 부러져 날카롭게 휘어져 나왔다.     '

정상적인 계단과 비정상적인 계단 자동차와 엉킨 문제의 오른쪽 계단과는 달리 공원으로 이어진 왼쪽 계단은 일반 보행 폭에 맞게 편리하게 계단이 설치했다. ⓒ 박상건


국기원 앞 세련된 인도 문제의 계단 오른편 태헤란로로 이어지는 보행로는 경사가 비슷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보행자에 맞는 길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아주 세련되고 편리한 보행로의 전형이다. ⓒ 박상건


일정 보폭으로 만들면 노약자가 불편하다는 동문서답 
이런 계단을 설치한 이유와 보수여부를 묻자, 강남구청의 도로관리과는 "기존의 경사진 도로면을 따라 계단이 설치되어 일반계단보다 너비가 넓게 설치된 것으로 계단을 일반 실내 계단과 같은 모양의 일정보폭으로 계단을 설치하려면 현재보다 계단 경사면이 급해지고 계단수가 증가한다."면서 "계단높이가 도로면보다 높아지게 되는 등 일반 노약자들의 이용이 현재보다 더 불편해질 우려가 있어 계단 재설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계단을 고치면 노약자가 불편하다?"는 논리는 어디서 연유하는가. 일반인이 불편한 이 계단이 노약자에게는 더 편리하다는 것인가? 산악 전문가가 어렵게 오른 등반코스를 초보자에게는 편하다는 둘러대는 꼴이다.  그럼 주변의 다른 계단은 어떻게 설치돼 있을까?  주변 거리 확인한 결과 강남구청의 답변은 생뚱맞았다. 전혀 비현실적인 탁상행정의 본보기임을 재확인해줄 뿐이었다. 서울시민들이 출퇴근길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건물과 지하철 계단 등을 둘러보아도 결론은 하나였다. 보행자 보폭에 맞춘 계단으로 설계, 설치돼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으로 보면 이렇다.   

강남역 주변 보행로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국기원으로 향하는 빌딩 사이에 위치한 보행로는 강남구청에서 설치한 것인데, 문제의 국기원 옆 계단과 경사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산뜻하고 일반인 보폭에 맞게 설치돼 있다. ⓒ 박상건


지하철역 계단 1천만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개찰구로 나가는 계단은 문제의 국기원 앞 계단 보다 경사 폭이 큼에도 일반인 보폭 맞게 설치돼 있다. ⓒ 박상건


직원이 답변한 글을 구청장이 쓴 글로 둔갑
덧붙여, 강남구청 홈페이지에는 '구청장에게 바란다'는 코너가 있고 수많은 시민들이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구청에서는 작성자가 뻔히 해당과로 표시돼 있는데도 답변 란에는 "안녕하십니까? 강남구청장 입니다"로 시작해서 "강남구청장 드림"으로 끝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정직을 위한 작은 실천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해 보인다. 차라리 "저는 담당부서의 누구입니다. 구청장에게 바란다는 페이지에 남긴 글에 대해 조사한 저의 부서 의견은 이렇습니다..." 이런 식의 글쓰기 방식이 더 설득력이 있다.

문제를 지적한 현장과 구청의 거리는 자동차로 넉넉하게 왕복 30~40분이면 가능하다. 그런데 답변을 올리는 기간은 사흘이 걸렸다. 그것도 매우 방어적이다. 방어는 적극적이고 개선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대안을 생각하고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가능하면 짧게 답변하는 면피 흔적만 도드라진다. 그래서 글을 올린 시민들이 되레 분노하기까지 했다. 게시판 제목을 보면 조모씨는 "불성실한 답변 현장 확인 후 성실히...", 김모씨 등은 "동문서답?",  "이런 답변도 있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라고 힐난한다. 이 게시판에 대한 구민의 지난 6월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6점. F학점이었다.

공공건물 계단 마포의 한 공공건물 신축 계단이다. 문제의 국기원 앞 계단보다 경사가 심해도 일반 보폭에 맞게 설치돼 있다. 이 건물에는 예식장을 갖춰 주말에 노약자가 많이 몰린다. 강남구청 주장대로 라면 노약자가 불편해서 원성을 사야할 계단인 셈이다. ⓒ 박상건


솔직담백, 방어보다는 개선하려는 공무원자세 필요
글은 솔직담백할 때 감동을 준다. 솔직함이야말로 가장 좋은 정책이다. 영국 속담에 하늘은 정직한 자를 지킨다는 말도 있다. 지혜는 경험의 딸이다. 지혜는 곤란으로부터 온다. 시민이 지적한 생활 불편 사항을 애써 방어에 급급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생활의 만족감을 높여 함께 어깨동무하며 가는 행정을 펼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공존, 공생, 공감하는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런 아름다운 동행이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라는 영국속담이 있다. 매사 백성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자세 그 자체가 행정의 첫걸음이요 최상의 지표여야 한다. 백성의 소리를 귀 담아 듣고 실천하는 일, 그것이 바로 공무원의 존재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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