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도가니에 말려들 것인가? 쇄신할 것인가?

진보진영을 올바로 바라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제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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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윤(shirasony)등록 2012.06.06 17:07
1. 시작의 발단은 북한에 대한 입장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자. 갑자기 종북 프레임에 갖친 이유는 이번 일이 북한이나 친북 발언이 나온 이후였나? 아니다. 명백히 하자. 그건 통합진보당 부정선거와 당권파 폭력사태였다. 이에 보수언론이 이들의 대북관과 연결지으며 시작되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친북적 사고가 이번 사건의 발단이 아니었음에도 통합진보당 당내 내분을 틈타 당권파의 약점을 연결시키는데 성공한 보수 언론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효과가 시너지를 낳게 만든 것으로서 당권파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다. 즉, 당권파들이 끝끝내 진보진영에 내부분열을 불사하고, 진보진영 및 반정부 여론이 믿었던 기대를 저버리면서 진보의 주도권 와해를 자초한 까닭이다. 그들의 금배지 권력욕과 선거주의가 타락으로 이어진 것이 개탄스럽다.

현재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분명 유시민, 심상정 등이 시작한 혁신 노력의 발단은 당권파의 친북관과도 거리가 멀었다. 유시민 대표도 공식석상에 말하길 당권파와의 공존에 있어 대북관이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여기에 임수경 의원의 취중진담이 다시 한번 기름을 붙는 격이 되었다. 결국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여당과 정부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공격할 틈도 없는 상황이 조성되며 오히려 반격당하는 현실이 총선 이후 또다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친북이나 평화통일을 옹호하는 다수의 생각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침묵시킬 '종북'이라는 보수의 프레임에 제대로 갖힌 꼴이 되었다.

사건의 사실적 관계 규명을 이어 올라가도 우리는 현재 진보진영의 민주주의 등 혁신과 정화의 과정이 보수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2. 빨갱이 마녀사냥에 맞서 싸우는 것과 진보 혁신을 혼동하고 있다.

이런 혼동의 대표적인 것이 진중권의 100분 토론 발언이다. 그의 진보정당의 자기 쇄신 노력에 지지를 보내고 반민주적인 당권파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위해 사용해야할 올바른 수단을 저버린 것은 엄연한 잘못이다. 마치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역사의 위대한 간지라고 추켜세우는 자들의 논리와 닮아있다.

의원직 사퇴의 기준이 적용된 자들은 분명 지역구 선출자(이상규)가 아니라 비례대표 경선 참가자들(이석기, 김재연)이다. 엄밀히 이야기해 백번 당권파가 보기 싫을 지언정 처음 이야기한 문제의 기준이 되었던 부정 선거로 당선된 의원이 아닌데 사상을 잣대로 의원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타당한 논리였는가? 척 봐도 중요 쟁점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을 준비성이나 논리의 약점을 지적할 수는 있더라도 공직에 나오면 안된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종북 프레임에 의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 북한에 대한 불완전하고 잘못된 접근에 대하여

북한에 대한 잘못된 관점 즉, 3대 세습, 억압적 사회 등에 대해 회피하는 자세 혹은 이를 옹호하는 자세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는 80년대 민주화 투쟁을 했던 본인들의 투쟁의 성과와 노력, 긍정적 프리미엄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들 민족해방 운동가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을 정치적, (특히)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국제 사회의 봉쇄 정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잘못이 있다면 이런 국제적 위협과 제재라는 수십년의 압박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북한 정권의 정당성 강화라는 논리적 귀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혹은 평화 통일의 (사실상 외교적 거래) 대상이기 때문에 그들 인권 문제에 침묵해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적 귀결(북한 고유의 논리를 인정, 북한은 계급이 없는 주민과 정권의 일치된 사회)로 이어진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봉쇄 해제와 국가간 호혜적 관계 형성을 지지해야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잘못된 것에 타협하는 것은 문제다.

북한 노동자, 주민들의 삶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측면을 더욱 선명하게 인지하고 본인들의 관점을 올바르게 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계급적, 급진적 관점을 수용하면서 북한 사회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중 잣대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북한 사회 현실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견지했다면 더더욱 비타협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국주의적 봉쇄에 반대하면서, 한편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할 수 있는 건전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미국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분명히 빈부와 특권 양방면에서 계급으로 나뉘어 졌다는 점에서 부정할 수 없는 기본적인 사회 모순이 있는 사회이다.(한국도 삼성, 현대 등 지배층의 핵심인 재벌들이 2대, 3대 세습을 하는 나라가 아닌가?) 여기에 북한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경제적 봉쇄와 정치적 위협이 이 사회를 미국의 위협을 이유로 독재와 억압을 정당화 하는 국가로 만들었다.

이는 마치 통합진보당 쇄신 과정을 검찰과 보수 언론의 외부 개입과 마녀사냥으로 왜곡되어 당권파가 외부 공격을 빌미로 자기 정당성을 강화할 여지를 찾게 된 것과 유사하다. 멀리서 찾는다면 아랍 정권들이 세워질 당시 반미, 반영을 외치며 독재를 정당화했던 사례도 그러하다. 역사적으로는 반공을 빌미로 유신 독재를 정당화 한 박정희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사회적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이런 메커니즘이 야권과 진보진영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간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반공주의로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의 관점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토론하기 거부해 왔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 사건이 사상을 이유로 공격받고 있다는 점이고, 굳이 이들의 사상을 평하자면 그 특유의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이중잣대와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미국 등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의 한 축이라는 사실이다.

4. 진보진영과 야권은 쇄신을 이유로 자살골을 넣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 패배 이후 엉뚱하게도 선거 기간 공약했던 FTA, 해군기지, 복지 등 문제를 후퇴시키고 있다. 명확히 이야기하면 민주당의 대표적인 문제가 공천과정에서 기득권 나눠먹기, 파벌 정치, 구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었는데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분석에 엉뚱한 해법을 찾고 있기는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야권 전체로 보면 종북을 기치로 한 정권의 마녀 사냥 시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언론이 진보진영의 혁신을 종북, 마녀사냥으로 몰아가는 것에 민주당이 동조하는 것도 문제다.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이 이들 의원들의 제명에 새누리당과 함께 나서겠다고 하며 이를 문대성, 김형태 제명과 함께 거래하고 있다. 나는 이해찬 의원이 북한 스스로 인권 문제를 위해서 노력했다는 발언에 동의하지 않지만 박근혜와 새누리 당의 매카시즘 시도에 맞서야 한다는 점과 국가관을 검증해 국회의원을 마녀사냥 하겠다는 논리에 맞서겠다는 점에 동의한다.

현재 당권파 폭력 이후 검찰이나 보수 언론이 가하는 공격은 진보정당의 부정 선거만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진영 전반에 대한 공격의 기회로 여기며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통합진보당 당원 명부 탈취는 현재 공무원, 교사 노조에 대한 탄압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이석기, 김재연 등의 버티기, 임수경 의원의 취중 진담 등이 비판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역으로 탄압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탄압을 수용한다면 과연 진보정치가 국회에 설 자리가 있겠는가? 모든 경우마다 사상검증을 요구받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들 국회의원들이 탄압의 명분에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 짜증이 나지만 말이다.)

진보 정당에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있었다는 쇄신 관련 토론회가 전혀 쇄신과 동떨어졌다는 점이다. 당내 운동 정치, 정파주의를 문제시한다. 그것도 촛불 운동을 통해 유명해진 박원석 의원의 입에서 운동을 부정한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촛불은 물론 민주화 운동 등 전체를 부정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보수 언론이 환영해 마지않을 일이다.

당권파 문제가 불거지자 유명한 재야 운동가인 문정현 신부의 일갈은 진보정당이 해군 기지 문제 등 운동이 벌어지고 탄압의 현장에 있지 않고 권력과 의회에 길들여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진 중공업 고공 크레인 시위 투사 김진숙 씨의 비판도 현장이 무너진 자리에 종파의 독버섯이 자란다고 한 것은 운동과 현장의 투쟁을 강조한 것이었고 본인이 그렇게 실천한 바 있다. 운동은 진보정당의 초심이고, 기반이었다.

여기에 당권파(이상규 등)고 비당권파(유시민 등)고 애국 의례를 수용하는 것도 문제다. 진보진영이 정치 세력화 한 것은 국가의 독재와 잘못된 폭력에 맞서 싸웠고 이를 정책적, 제도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전술적 이유에서 의회에 진출한 것이지 제도권에 안착하고 타협하기 위해서 간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아직도 국가 보안법이 있는 나라, 친일, 친미주의자가 망쳐놓은 지배체제 청산도 되지 않은 나라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진보정당이 해야 하는가?

1970년대 칠레에 사회주의를 표방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를 살펴보자. 아옌데는 보수정치가 과반을 장악한 의회가 요구하는 '기존 헌법' 준수 서약을 하면서 타협했다. 결과는 이런 기득권과 미국의 정치적, 물리적 공세와 쿠데타로 사살당했고 피노체트의 파시스트 독재로 이어졌다. 친미적 지배 권력이 다수를 점한 한국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기득권에 도전하던 초심이 아니라 타협하는 방식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보여준다.

1차대전 당시 독일의 사민당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노동자들과 피억압 민중들이 있는 국가에 사민당, 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진보정치가 등장했다. 이 중 노동자들의 규모가 크고 노동조합으로 잘 조직되었던 독일이 가장 유명했지만 이들이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애국주의에 타협해 국가가 1차대전에 동원되는 것을 방조했다. 진보정치가 애국가를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 사회는 10년 넘게 펼쳐진 정리해고, 실업, 빈부격차, 터무니없는 교육비용, 부동산 대란 등 해결해야 할 복지, 서민 경제, 기본권 문제가 산적해 있다. 앞서 경제 봉쇄를 당한 북한에 가장 힘든 사람들은 북한의 평범한 주민이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논리와 08년 경제위기로 가장 힘든것이 평범한 서민들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누가 해야 하는가? 바로 진보정치가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분석과 해법을 찾기를 다시한번 촉구한다. 민주당처럼 정책을 후퇴시켜도 안되고 운동을 통해 성장한 우리의 초심을 잃어서도 안될 것이다. 그렇게만이 우리가 반공 사상 검증의 도가니에서 제대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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