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마임축제, 당신이 미치고 싶은 무대의 어제와 오늘

이 땅에 마임이 왜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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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cute825)등록 2012.05.29 17:44
춘천마임축제(5월 20일~5월 27일)가 올해로 24회를 맞았다. 한국마임페스티벌로 시작해 춘천국제마임축제로 성장했다. 춘천의 문화예술축제로 확고히 자리 잡은 이 축제는 겨우 9명의 마임배우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세워졌다. 지금은 900여 명의 공연자와 진행자들이 축제를 위해 힘쓰고 있는 큰 규모의 축제가 되었다. 약 15만 명이 찾는 춘천마임축제는 한국 마임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 마임의 출발'
마임은 서구적인 예술 장르다. 한국의 마임배우들이 몇 안 되는 시절에 극단 <에저또>를 창단해 무대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마임배우 중 지금의 춘천마임축제 대표자 유진규 감독도 있었다. 서구적 마임을 한국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으로 마임 무대는 계속됐지만 83년부터 그 무대가 흩어지게 되면서 마임은 떠도는 장르가 됐다.

'마임을 다시 세운 유진규 감독'

유진규 감독 사진 마임공연 중인 유진규 감독 ⓒ 춘천마임축제 블로그


유진규 감독은 마임을 그만두고 소 사육을 생업으로 하기 위에 춘천에 자리를 잡았지만 88년 마임배우 신영철의 권유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됐다. 그는 '이 땅에 마임이 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신영철과 유진규는 89년에 '제1회 한국마임페스티벌'을 벌였다. 공간사랑에서 열린 이 공연은 춘천문화방송에 초청되어 처음으로 춘천에 마임이라는 장르를 소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춘천마임축제의 성장기'
다른 장르에 비해 공연무대가 작은 마임은 서울에서 자리 잡기가 어려웠다. 마임배우와 기획자들은 본격적인 축제를 벌이기에 춘천이 제격이라고 생각해 춘천으로 내려와 90년 11월 7일 제2회 한국마임페스티벌이 춘천에서 열렸다.
지금의 춘천마임축제는 5월에 열리는데 이는 제3회 한국마임페스티벌부터 시작된 역사이다. 91년에는 2회 축제와 다르게 전국 4개 도시에서 공연되었다. 공연에는 총 8명의 마임배우들이 참여하였다. 마임배우들은 한국적인 마임을 찾기 위해 흥부와 놀부 등의 공연으로 서구적 마임과의 결합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그 결과 94년부터 한국마임페스티벌은 축제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93년까지의 마임축제는 마임을 알리고 축제의 가능성을 싹 틔운 시기라면 94~97년까지는 축제의 다양성실험으로 새로운 도약을 한 시기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축제! 한바탕 일탈의 시간!'
94년 5월 11~14일까지 3박 4일로 열린 제6회 마임페스티벌에서는 길놀이와 전야제가 처음 열림으로써 한바탕 일탈의 쾌감을 맛보는 축제의 묘미를 보였다. 또한, 도시 어디에서나 마임을 만나게 한 거리공연은 축제와 공연의 접목을 시도한 것이다.
축제는 자기 변신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이탈하고 생활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 년에 한 번쯤은 이런 살맛나는 일이 있어야한다.⌟ -94한국마임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유진규

마임축제 자원봉사자 ‘깨비’들의 단체사진 2012년 공연· 기술· 마케팅· 운영· 홍보팀 깨비 단체사진. ⓒ 춘천마임축제 사무국


95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문화시·군'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94년부터 자원봉사자를 축제를 이끌어가는 인력으로 활용했다.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을 '깨비'라고 칭하며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활동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도약한 마임축제'
94년 제6회 한국마임페스티벌을 통해 일본과의 마임공연교류가 시작되고 외국 공연팀들이 마임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또 일본과의 교류를 시작하여 합동공연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 하게 되어 춘천국제마임축제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제교류는 관객개발, 예술가개발, 국외진출 등 다원적 목표를 지향하였다.

'공연성과 축제성을 고려한 21세기'

도깨비난장 공연 사진 신명 나게 축제를 즐기고 있는 시민의 모습 ⓒ 춘천마임축제 블로그


98년 IMF를 맞아 침체한 경제 속에서 춘천마임축제는 좌절하지 않고 축제를 찾아오는 관객들에게 희망 나눔을 목표로 하였다. 즐기기 위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밤샘축제라는 해방구를 제공하여 공연예술과 축제난장을 접목한 마임축제가 대중화 시대를 열게 된다. 난장의 이름을 '도깨비 난장'으로 하였다. 첫 도깨비난장은 98년 5월 30일(토) 밤 10시부터 새벽 5까지 음악공연과 마임공연 등이 진행됐다. 한편 2000년~2009년까지 도깨비난장을 위해 춘천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경춘선 기차를 활용한 도깨비 열차가 운행되기도 하였다.
젊은이들의 축제로 자리매김한 도깨비 난장은 2001년 고슴도치섬으로 이전하여 자연 속 축제가 되었다. 2004년에는 인지도 상승으로 30대 이상의 관객이 많아짐으로 낮도깨비난장도 열려 공연프로그램과 교육, 체험행사가 진행됐다. 또 2004년에는 토요 휴일제가 생겨 금요일 밤에는 젊은이들을 타겟으로한 미친금요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도깨비난장의 예행연습으로 진행하였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실험적인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고 19금을 내세워 자유공간의 상징성을 부여했다. 2006년에는 무박 3일로 진행된 난장으로 더욱 실험적이고 젊음이 넘치는 축제로 부상하였다. 같은 해 개막식에서는 아수라장이라는 개막난장이 새로 생겼다. 춘천의 중심상가인 브라운 5번가에서 물과 불을 주제로 공연을 펼치고 관객들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난장이다. 2012년 현재는 춘천 명동의 중앙로까지 진입하며 확장된 범위에서 개막난장을 펼쳤다.

춘천마임축제는 6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었다. 또한, 축제 6회 때만 하더라도 10여 개의 팀으로 출발하였던 공연이 2012년 90여 개가 넘는 극단 및 공연단체로 규모가 커졌다. 인간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 소통수단은 언어이다. 마임은 음성으로 발화된 언어 이전에 몸짓으로 행해진 원초적 본능 시대를 훔쳐보게 한다. 시간, 국경, 문명을 뛰어넘는 마임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의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는 공연예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지은, 최진실, 이지혜 기자가 공동취재하였습니다.

*강원일보사는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함께 '2012춘천마임축제'의 생생한 현장을 기사·사진·동영상으로 전해 드립니다.  

*본 기사는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웹진 '뉴스토피아' 함께 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지은, 최진실, 이지혜 기자가 공동취재하였습니다.

*강원일보사는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함께 '2012춘천마임축제'의 생생한 현장을 기사·사진·동영상으로 전해 드립니다.  

*본 기사는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웹진 '뉴스토피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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