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사평 박범신 [은교]

검토 완료

노영모(champione)등록 2012.04.22 20:46
책을 들어 표지를 보면 흰 옷을 입은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흰 천막을 살짝 들어 올려 얇은 빛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얇은 빛은 천막 뒤의 모든 어둠을 걷어내진 못한다. 어둠속의 것들은 그대로 어둠이다.
천막을 젖힌 소녀의 모습은 도발적이다. 왼쪽 손으로 살짝 걷어 올린 치마와 그 아래로 보이는 얇은 종아리 신발을 벗어 보이는 흰 발은 아직 벗고 있는 중이기에 더욱 야릇하다.
또 얇은 치마 사이로 들어온 빛은 소녀의 허벅지 실루엣을 살랑이며 비춘다.
이런 소녀를 천막 밖 한 소년이 바라보고 있다. 그는 조용히 소녀를 바라본다.
표지를 넘기면 바로 뒤에 보이지 않는 천막의 뒤가 나타난다. 천막 뒤 어둠의 구석에는 또 다른 눈길이 있다. 꽃이 만발한 밖과는 대조적인 어둠속에서 그야말로 헐벗은 한 볼품없는 노인 역시 조용히 소녀를 바라본다. 소녀를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천막 속 어둠과 대조되는 빛, 그리고 소년과 비교되며 초라하다. 그러나 소년과 노인의 눈길의 의미는 같다.
그들은 소녀를 갈망하고 있다.

시인 이적요의 일주기다. 시인은 살아생전 적요라는 그의 필명처럼 고요하고 쓸쓸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적요는 그 어떤 소리보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요의 삶을 사는 이적요 시인을 존경했다.
시인의 기념관 건립 및 그를 다시 돌아보는 1주기 행사준비가 한참인 떄 후배 변호사Q는 시인의 유언대로 그가 남긴 노트를 읽는다. 그러나 그 노트 속 시인의 삶은 언제나 고결했던 그의 모습과는 달랐다. 노트 속의 시인은 그를 극진히 모시던 그의 제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서지우를 살해한 살인자였으며, 69살의 나이로 16세의 소녀를 탐한 늙은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은교가 있다.
시인은 그의 집 안에서 새근새근 자던 은교를 우연히 만난다. 하얀 팔뚝 숨 쉴 때마다 오를각 내리락 하는 부푼 은교의 가슴, 그리고 그녀의 흰 가슴에 새긴 창끝은 누군가를 노리듯 날카롭다. 시인은 그녀의 가슴 속 더 은밀한곳에 창을 겨누고 있을 전사를 생각하며 은교를 갈망하게 된다. 동시에 시인을 친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내면 깊은 곳에 깊은 열등감을 갖고 있는 서지우도 시인의 불꽃 이는 두 눈을 본 후 언제나 무시당했더는 자신을 시인에게 보이고자 하는 갈망으로 젊고 건강한 육체로 은교를 탐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아니, 그 이상의 본능적인 갈망들의 부딪힘과 함께 극으로 치닫고 두 사람의 파멸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인간의 갈망이란
언뜻 이야기를 보면  이야기는 은교라는 여자를 사이에 둔 노인과 젊은이의 삼각관계 이야기 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조는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함축적이다. 서지우와 노인의 갈망은 단순히 육체적 갈망 혹은 사랑만이 얽힌 갈망이 아니다. 시인에게 인정받고 언제나 자신을 무시했던 시인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무력감을 선사하고 싶어했던 갈망, 서지우의 파멸을 진심으로 바라던 시인의 갈망, 그리고 은교에게 서로를 잃지 않으려 했던 서지우와 시인이 갈망이 복잡하게 얽히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때문에 소설 '은교'를 읽다보면 인간의 갈망의 시작과 그 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갈망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대상이 무엇이건 어떤 대상에 대한 갈망이 지탄을 받을 수는 없다.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갈망은 우리에게 생각거리가 되지는 않지만 우리의 갈망은 무엇이고 그 갈망의 끝이 무엇일지는 한번쯤 생각해볼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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