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의 특권, 현장요리로 낚시 입맛을 선물하세요

송어낚시 후 바로 맛보는 회 튀김 구이, 이게 바로 '환상의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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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dwkim)등록 2012.01.19 11:48
'물가에 앉아 조용히 찌를 보고 있으면…'으로 시작되는 낚시 예찬론은 대부분 고즈넉함이나 마음의 평화 같은 정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낚시, 혹은 낚시꾼에게 환상의 짝꿍이란 그래서 어쩌면 '고독' 같은 게 어울릴 수 있다. 적어도 1980~1990년대 붕어낚시 세대들에게는 그랬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낚시문화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낚시=마음수양'이라는 공식은 깨졌다. 특히 인조미끼를 쓰는 루어낚시가 유행하면서 낚시는 이제 다른 어떤 레저 못지 않은 활동적인 취미가 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스포츠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게 지금의 낚시문화다. 이번 겨울 화천과 평창 등에서 열리는 얼음 낚시 축제에는 가족낚시터를 따로 마련할 정도로 '나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즐기는 재미를 찾아가는 젊은 꾼들이 늘면서 소위 '패밀리 피싱' 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가족과 함께 낚시를 즐기려는 젊은 꾼들이 늘면서 최근 송어루어낚시가 훌륭한 '패밀리 피싱'으로 자리잡고 있다. ⓒ 김동욱


아이들도 쉽게 즐기는 팽팽한 손맛

아내나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낚시의 조건은 우선 쉬워야 하고, 둘째로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송어낚시와 그 요리만한 환상의 짝꿍도 없다. 냉수성 어종인 송어는 한겨울에 가장 훌륭한 가족낚시 대상어이자 만만한(그러나 아주 근사한) 낚시요리감이다.

지난해 가을 나는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송어낚시터를 겸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의 한 펜션을 찾아냈다. 그리고 동료 기자인 손종호씨 가족과 함께 가족낚시여행을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낚시터로 달려갔음은 물론이다.

손세진 군(왼쪽)이 김세정 양과 함께 막 낚아낸 굵은 송어를 들어 보인다. ⓒ 김동욱


"휙~!" 스푼(송어낚시 용 루어)이 날아가 수면에 떨어지자 아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릴을 감는다. 이내 낚싯줄이 팽팽해지고 낚싯대 허리가 확 휜다. 내 딸 세정이(9)가 먼저 한 마리 걸었다. 그러나 너무 큰 놈이 걸렸는지 쉽게 제압이 안 된다.
"으앗~! 으아~!"
스푼 바늘에 입걸림 된 송어가 물 위로 튀어 오르며 바늘털이를 할 때마다 세정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른 팔뚝만한 놈이 걸렸다.

"세정아, 낚싯대 눕히지 말고 세워, 그렇지 그렇게. 천천히 감아 천천히~."
세정이는 아빠의 코치에 따라 힘겹게 낚싯대를 세워들고 릴을 감는다. 이윽고 송어를 자신의 발 앞까지 끌어오는 데 성공해 낸다.

"아빠~, 잡았어~!" 김세정 양이 자기 허벅지 만한 씨알 굵은 송어를 낚고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 김동욱


이번에는 '미래의 프로 꾼' 손세진(8) 군이 입질을 받았다. 펜션 안에 있는 양식장에서 바로 풀어 놓은 놈들이라 활성도가 엄청나게 좋다. '어린이 프로' 답게 세진 군은 멋진 솜씨로 입걸림 된 송어를 다룬다. 낚싯줄을 팽팽하게 유지하면서 낚싯대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송어를 끌어낸다. 이렇게 두어 시간 동안 아이들은 곧잘 송어를 낚아내며 낚시재미에 푹 빠졌다. 우리는 아이들이 낚은 송어를 대부분 방생했지만 그 중 씨알 굵은 놈 세 마리는 따로 챙겨뒀다.

손맛보다 더 매혹적인 입맛

이제는 '환상의 짝꿍'을 경험할 시간. 한껏 손맛을 봤으니 송어요리를 맛봐야 한다. 우리는 펜션 앞 잔디마당에 석쇠구이 통을 준비하고 숯불부터 피웠다. 아이들이 낚은 송어 중 한 마리는 구이, 또 한 마리는 회, 그리고 제일 작은 나머지 한 마리는 송어 살 튀김으로 준비한다.

인조미끼(루어)를 쓰는 송어낚시는 그 방법이 간단해서 아이들도 곧잘 손맛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얕은 개울에 풀어놓은 송어를 낚고 있는 가족들. ⓒ 김동욱


숯불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요리용 알루미늄 호일에 잘 싸여진 송어가 노릇하게 익어간다. 송어회는 자칭 '프로 꾼'인 손종호씨의 몫. 종호씨는 익숙한 칼질로 붉은 송어 살을 이내 한 접시 가득 차려낸다.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송어는 살이 탱탱하다. 입 안에서 씹히는 식감이 여느 바닷고기 육질 못지않다. 우리 두 가족의 아내들과 아이들의 수저는 송어회 송어튀김 송어구이를 섭렵한다. 혹시나 해서 장만해 온 삼겹살은 여기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렸다.

어느덧 주위가 어두워지고 펜션 야외 식탁 주변에 예쁜 등이 켜진다. 밤공기가 꽤 차갑지만 아내들도 아이들도 방으로 들어가자는 말이 없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아이들은 금세 다른 놀이를 찾는다. 펜션 두동을 왔다 갔다 하며 숨박꼭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나도 모처럼 손종호씨와 여유 있게 소주잔을 기울인다.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에는 유성이 흘렀다.

다음날 아침 오전 7시. 평소보다 약간 늦잠을 잤다. 대충 눈곱을 떼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공기가 꽤 차갑다. 낚시터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가 본다. 두 사람이 있다. 그럼 그렇지 종호씨가 아들 세진 군과 함께 오전 피딩타임(물고기의 먹이활동시간. 이때 가장 입질이 왕성하다.)을 즐기고 있다. 부자 간의 오붓한 시간. 낚시터에는 송어 개체수가 꽤 많은 지 곧잘 바늘털이가 연출된다.

손맛을 봤으니 이제 입맛을 볼 시간. 한 마리는 회를 떠 놓고, 또 한 마리는 알미늄 호일에 싸서 석쇠에 올렸다. 혹시나 싶어 같이 구운 삼겹살은 이날 천덕꾸리가 신세가 됐다. ⓒ 김동욱


"얘가 눈 뜨자마자 '아빠 낚시하러 가자' 해서……."
흐흐. 애 핑계는……. 종호씨는 입맛보다는 손맛이 많이 고팠나 보다.
그나저나 이제는 우리 두 가족의 낚시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 짐을 정리한 후 펜션을 빠져나갈 때 아이들의 얼굴이 어둡다.

"아빠, 우리 언제 여기 다시 와?"
아이들에게는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1박2일이었던 거다.
"글쎄, 겨울에 눈 오면 그 때 또 올까? 하얗게 눈 덮인 낚시터에서 송어낚시 하는 재미도 좋을 거야. 그때는 아빠가 매운탕도 끓여줄게."

낚시로 낚아낸 송어요리. 붉은 살을 먹음직 하게 썰어 회를 만들고,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냈다. 송어낚시를 해본 꾼들만이 누릴 수 있는 환상의 짝꿍이다. ⓒ 김동욱


종호씨가 아이들에게 공수표가 될 지도 모를 약속을 덜컥 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 해가 바뀌었고 눈도 내렸다. 우리 둘은 '송어낚시 하고 회 먹으러 가자'는 아이들에게 매일 볶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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