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웨이> 흥행부진, 어떻게 봐야 하나

'규모'의 영화와 시장의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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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nkw88)등록 2012.01.11 18:56
강제규 감독은 1996년에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마이 웨이> 이렇게 네 편의 영화를 발표했다. 그 15년 동안 네 편을 연출하면서도 제작이나 기획, 그리고 각본을 맡은 영화들도 꽤 되는 것을 보면 그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영화를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 겨울에 발표한 <마이 웨이>가 흥행이 부진한 것은 작품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강제규라는 이름이 지닌 영화만들기의 한 패러다임이 위기를 맞은 것일 수도 있다.

강제규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은 1990년대 이후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진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한국형 블로버스터가 등장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는 영화인으로는 윤제균 감독을 들 수 있다. 강제규 감독과 윤제균 감독의 차이는 강제규 감독이 민족주의와 멜로드라마 코드를 주축으로 한 영화들을 내놓는데 비해 윤제균 감독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장르를 주축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을 들라면 강제규 감독은 전쟁과 역사같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개인들을 다루는 반면에 윤제균 감독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하거나 친숙한 소재를 담아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윤제균 감독이 제작한 <퀵>과 <제7광구>는 지난 여름에 개봉되어 기대한 만큼의 흥행성과를 얻지 못했고 강제규 감독이 연출한 <마이 웨이>도 이번 겨울에 개봉해서 고전하고 있다. 물론 지난 여름에는 <해리포터>시리즈, 이번 겨울에는 <미션 임파서블>시리즈라는 유명 프랜차이즈와 정면승부를 벌여야했다는 상황도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개봉한 이후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이 웨이>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퍼펙트 게임>이나 훨씬 이전에 개봉한 <오싹한 연애>는 입소문에 힘입어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다시 강제규 감독의 영화세계로 돌아와보자. 강제규 감독의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이 나오던 2004년까지는 한국영화의 대형화, 블록버스터화가 계속 진행되어 오던 시점이고 그해에 한국영화의 대형화 경향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로 정점에 달했었다. 2004년까지 강제규 감독이 보여준 새로움은 '규모Scale'였다. 제작비를 많이 들인 초고예산영화들은 이렇게 찍는 것이다라는 보여주는 영화들이었다. 즉,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 영화도 할리우드, 그리고 19890년대초에 인기있던 홍콩영화에 못지않게 화려한 스펙타클과 스케일을 보여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강제규 감독이었다. 그런 식의 영화만들기는 내용은 민족주의적일지 몰라도 그 방향은 결국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 후반에 일부 영화평론가들이 '카피우드'논쟁을 벌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런데 강제규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규모'를 빼고는 딱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은행나무 침대>는 1980년대말에 나온 서극-정소동 콤비의 홍콩영화 <천녀유혼>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쉬리>는 이미 1950년대에 나온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 이래 <113 수사본부>와 같은 수많은 반공방첩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때문에 동요하는 여간첩' 모티브 를 그대로 따왔다.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형제간의 갈등, 형제 관계를 다룬 수많은 한국영화와 텔레비전 대하 드라마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다른 감독들이 대형화, 블록버스터화에 편승하기도 하고 다른 방식의 영화를 선보이며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 이후의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향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 했다. 그 이후에 두 작품을 넘어서는 대작 중에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은 별로 없다. 물론 두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같은 작품들, 그리고 그보다는 못하지만 여전히 관객을 많이 동원한 <화려한 휴가>, <디 워>같은 작품도 나왔지만 대작영화의 흥행성과는 그렇게 좋다고 볼 수는 없다.

<마이 웨이>로 돌아와 보자. 여전히 '규모'라는 면에서는 다른 어떤 한국영화도 따라오기 어려운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규모'를 담아내는 화면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화면들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이미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에 나오는 상륙작전과 별반 차이가 없고, 소련의 포로 수용소와 시베리아의 벌목 장면은 <굴락Gulag>(1985)같은 소련의 집단수용소를 다룬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강제규 감독의 경력을 살펴보면 2004년 이후에는 각본, 기획, 제작, 연출로 작품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러는 동안 그의 노선을 견지해서 그의 '규모'를 능가하려는 영화들, 그와는 다른 새로움을 제시하는 영화들이 나오고 있었다.

관객층을 보면 2004년에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았던 젊은 관객들은 이제 직장생활과 각자 다른일에 신경쓰느라 영화볼 여유가 부족해지는 삼십대가 되어버렸고, 극장은 이제 <해리포터>시리즈와 <괴물>, 그리고 케이블 채널로 <CSI과학수사대>와 <프리즌 브레이크>을 보고, 각종 공연장에 가서 화려한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차지했다.

요컨대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는 '규모'의 영화라는 노선을 고수했지만 변해버린 대중의 감성이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이준익 감독이 말하지 않았던가. 작가영화는 자기 생각을 영화로 만들면 되지만 대중영화는 대중의 취향을 파악해야하기에 더 힘들다고.

2010년대에 이르러 이전과 다른 새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제작규모가 아니라 시장의 규모이다. 예전에는 국내 배급시장에서 성공하고 해외에 수출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나 이제는 한중일 삼국의 흥행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점이다. <제7광구>가 국내흥행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중국에서 흥행에 성공했듯이, <마이 웨이>도 국내흥행은 부진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시장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퍼펙트 게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산의 야구팬들만 잡아도 영화는 성공이다라는 생각이 안이한 발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과연 일본배우와 중국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이 영화들이 일본과 중국에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오다기리 조가 맡았고 이야기 전개에 따라 일본인 주인공이 감정과 성격이 변하니까 일본에서는 기대할 지 모르지만 과연 거의 모든 대사가 일어로 된 이 영화가 판빙빙이 잠깐 나온다고 해서 중국에서도 흥행을 기대할 수 있을까.

즉, 1차 시장의 규모가 단순히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한중일을 함께 보는 시각으로 변한다면 예술영화에 중국인 배우나 일본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차원을 떠나 삼국의 관객에게 동시에 소구하는 대중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생긴다. <마이 웨이>는 그런 과제에 대한 성공적인 대답이 될 가능성은 적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 질문에 대해 처음으로 대답을 시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네21에 있는 제 블로그 '사과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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