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용을 봐야 용꿈을 꾸지.

60년 만의 검은 용띠 해...상상의 동물 龍의 ‘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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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lighthouse)등록 2011.12.29 16:36

용띠해의 그림 인사 안백룡 화백이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그림 인사. ⓒ 안백룡


'용코로 걸렸다'는 말이 있다. 영락(零落)없이, 빠져나갈 한 점 구멍 없이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을 말한다. 용(龍)의 코는 무엇인가? 어쩌다 '용코로'라는 말이 생겼을까?

상상(想像)의 동물인 용은 우리에게 실제의 동물보다 더 가깝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가까운 정도는 훨씬 더 커진다. 그 가까움은 친숙함이기도 하고, 외경(畏敬) 즉 두렵거나 공경하는 감정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본 뱀은 못 그려도, 안 본 용은 그린다'는 말까지 있었을까.

용은 날짐승 들짐승 물짐승의 잘난 부분들이 모여 이뤄진 동물이다. 숨 쉬는 뭇 존재들의 합성(合成)이다. 온 세상 생명력의 총화(總和)인 것이다. 잘 난 존재, 그래서 예로부터 황제(皇帝)의 상징이었다.

문자고고학으로 본 용
 중국 문자학자 허신(許愼)의 '설문해자'는 용(龍)의 풀이를 '비늘 달린 동물 중의 우두머리'(인충지장 鱗蟲之長)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숨을 수도 있고, 나타날 수도 있으며, 아주 작거나 커질 수 있고,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도 있다.'고 이어진다.
갑골문이나 금문(金文) 시대의 글자로도 남아있다. 그만큼 역사 오랜 신비한, 신출귀몰(神出鬼沒)의, 못 하는 것이 없는 '동물'인 것이다.
금문을 보면 용은 신(辛)자를 장식(裝飾)처럼 머리에 쓴 모양의 뱀이었다. 고기(살)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달 월(月)자처럼 보이는 고기 육(肉)이 나중에 붙었다.
현대 글자(해서체)의 오른쪽 부분은,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지만, (뱀이) 날아가는 모양의 글자다. 어떤 이는 이 글자를 날 비(飛)자의 생략형으로 보기도 한다.
한한대자전(민중서림)과 같은 사전을 보면 이 글자의 변천을 볼 수 있다.

얼굴은 낙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몸통은 뱀, 머리털은 사자, 비늘은 물고기, 발은 매, 귀는 소의 그것이었다. 입가에는 긴 수염이 휘날리고, 구리판을 두들기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런데 코는 못생긴 돼지코다. 잘 났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용의 최대의 약점이 용코다. 코 얘기만 나오면 상대방은 여지없이 박살이 난다는 이야기다.

신화나 설화는 인간의 생각[염(念)]과 바람[원(願)]을 담은 이야기다. 용은 인간에게 무엇이었을까?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의 은유(隱喩), 메타포(metaphor)가 바로 용이었다. 용에 빗댄 모든 얘기에서 이런 뜻은 스며난다. 가장 절실한 것은 꿈, 즉 용꿈이다.

충(忠)자 문자도 민화(民話)의 하나인 문자도(文字圖)에서 잉어가 등용문을 지나 용이 되는 모습을 그린 충(忠)자 그림. ⓒ 국립민속박물관


특히 태몽(胎夢)으로 용꿈은 최고다. 용꿈을 꾸기 위해 신혼의 공간은 용을 그린 그림 가구 문방구 등으로 채워졌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용을 봐야 용꿈을 꾸지. 용의 이미지를 신방(新房)의 두 사람에게 진하게 심어주는 도구들인 것이다. 박물관에 엄청 많다.

사임당 신 씨는 강릉 오죽헌의 용꿈 꾸는 방 몽룡실(夢龍室)에서 율곡 선생을 낳았다. 소설이지만, '홍길동전'에서 홍 판서는 꿈에 청룡이 달려드는 용꿈을 꾸고 홍길동을 낳았다. 용꿈은 사람들의 염원이었다. 친근하지만 두렵기도 한 존재, 감히 내가 그것이 될 수는 없지만 꿈이라도 꾸어 보고 싶은 대상이 용인 것이다.

백제대향로의 용 ‘최고의 동물’인 용이 향로의 몸통을 이고 있는 모습. 백제대향로의 아랫부분. ⓒ 국립부여박물관


용꿈은 자식이 잘되는, 출세할 자식을 낳을 꿈이다. 재수가 좋고 경사가 난다. 돈 얻는다는 횡재(橫財)의 행운까지 겹치니 용꿈 자랑은 어디서도 하지 말라는 말이 맞다. 그 행운들은 휘발성이 강한가보다,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면 안 된다.

내년 2012년 임진년(壬辰年)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띠 해다. 임(壬)은 검은색, 진(辰)은 용을 각각 나타낸다. 흑룡띠 해에 태어난 아기는 신성한 기운이 있다고 하여 벌써부터 유통업체들이 들썩이고 있다. 귀 얇은 사람들을 잡으려는 영리함이다. 속설(俗說)이라고는 하나 어찌 무시해버릴 수 있으랴. 하여간 아기 많이 낳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어령 교수 강연 그는 강연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용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 역설했다. ⓒ 강상헌


새해 가까워지던 때 국립민속박물관은 '용, 꿈을 꾸다'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 날 가운데 한 날, 시민들을 모아 전문가들이 용과 용꿈에 관한 이야기 잔치(학술강연회)를 벌였다. 세밑이면 이제 으레 하려니 하는 행사지만, 묵은해를 보내고 희망으로 가득한 새해를 맞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매년 새롭다.

이어령 교수는 용 관련 여러 덕담(德談)과 '우리 청소년들에게 용의 제 모습을 보여주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서양 신화나 설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요즘 즐기는 전자오락에서 용은 '괴물(怪物)'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을 우려한 것, '용을 죽여야 공주를 구하는' 식의 영웅 게임이 우리 문화의 용의 모습을 지워버리고 있다는 얘기다.

서구문화는 용을 부정적(否定的)인 시각으로 그린다. 그 용도 원래 동아시아의 용 문화가 고대에 지금의 유럽 땅으로 건너간 것이다. 몽고족이 유럽 땅을 휩쓸었던 것과 같은 몇 번의 '무서운 아시아의 침공'이 그 곳의 용의 모습에 그런 흔적을 남긴 것으로 학계는 해석한다. 그 흔적이 지금 우리 문화의 원형에 이렇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겠다.

13년째 열린 이 전시회와 학술강연회는 지금 이 박물관 책임자인 천진기 관장의 이름을 바로 연상하게 한다. 그는 오래 전 젊은 학예연구자 시절부터 이 시기만 되면 다음 해 띠 동물에 관한 민속 등 우리 전통 문화의 여러 측면을 살핀 글을 발표하여 이런 전통을 이어왔다.

지금 언론이나 시민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런 '문화'의 샘터를 파고 지킨 이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고참 기자의 입장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박물관의 '제 뜻'이기도 할 터다.

새 해 용을 많이 보자, 용꿈을 더 꾸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시민사회신문의 논설주간인 필자는 창간 준비 중인 경제관련 웹미디어 <머니토크쇼>(www.moneytalkshow.com)의 대표를 겸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시민사회신문의 논설주간인 필자는 창간 준비 중인 경제관련 웹미디어 <머니토크쇼>(www.moneytalkshow.com)의 대표를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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