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과 김근태, 삭개오와 예수

한국기독교의 천박한 회개-구원관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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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춘(isaiah)등록 2011.12.16 16:07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다 파킨슨씨병, 뇌정맥혈전증으로 투병중인 김근태님의 고문을 주도한 고문기술자 이근안 목사가 '고문은 일종의 예술'이고,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일할 것,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라고 인터뷰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저 전직 고문기술자의 망발이려니 하면 그만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가 현직 목사라는 사실은 단순히 잘못된 성서해석의 신앙을 가진 자연인 이근안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독교 전체가 안고 있는 회개와 구원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반성서적인 인식의 문제이기에 회개와 구원에 대한 성서의 온전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바라봄으로써 한국 기독교가 회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사도 바울의 구원관은 당시 로마 또는 로마문화의 지배를 받는 지역에 기독교를 빠르게 확산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의도한 것인지 또는 의도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든지 간에 '불의를 행하며 살아가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는 이 단순함은 현세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도 내세를 보장받을 수 있는 달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기독교도 이런 달콤함을 무기로 선교를 해왔다. 평생 예수와는 관계없이 살았던 사람이 병상에 누워서 죽을 날을 기다리다가, 목사를 만나 지난날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이 놀라운 구원의 메커니즘은 기독교의 교세를 확장시키는데 있어서 아주 유용한 도구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9절)

이근안이 자수를 결심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된 배경으로 인용한 성서구절이다. 이근안의 삶에 대입하면 이런 문구가 된다. '이근안이 지난 시절 고문 등으로 지은 죄를 자백하면, 좋으신 하나님은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근안의 죄를 사하시고, 이근안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참 간편하고 놀라운 방법이다. 만일 죽을 날짜만을 예측할 수 있다면, D day 전일에만 이 성서를 붙들고 회개하면 되는 묘약이 되는 셈이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회개와 구원관이 오늘의 교회와 목사들의 현실이라는 점이 참으로 난감하다.

한국 기독교회는 아마도 과도한 비약이라고 할 것이다. 웃기는 얘기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그렇게 하고 있다. 이근안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측 총회신학교 통신신학부 4년 과정을 옥중에서 밟고 출소 후 소정의 과정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4년 동안 한국 기독교의 목사들이 그런 신앙인을 만든 것이고, 그를 목사로 안수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 기독교와 목사들의 천박함이 이런 것이다. 전혀 성서적이지 않고, 예수의 말씀과는 무관한 회개와 구원관을 단지 교인의 숫자를 늘리는데 유용하다는 이유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성서로부터 읽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결코 성서적이 아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장 7절)

이근안이 은혜롭게 읽고 결심했다는 요한복음 1장 9절의 두 구절 앞인 7절 말씀이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놀랍지 아니한가? 회개와 죄 사함의 관계는 바로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의 전제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그것도 두 구절 앞에서 말이다.

사도바울의 '이신득의-믿음으로 구원에 이름'이 맞느냐? 야고보의 '이행득의-행위로 구원을 받음'이 맞느냐는 논쟁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가 천박한 '기독교 판촉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는 회개와 구원관에 대해서 통렬히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와 삭개오의 만남이 나온다. 삭개오는 로마의 대리수탈로 치부한 세관장이다. 그는 예수를 만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 주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에 예수는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라고 화답하며 구원을 선포한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회개와 구원관이다. 이것이 예수고 기독교다.

이근안과 이근안에게 목사 안수를 한 교단, 그리고 한국 기독교는 김근태 고문에게 무릎을 꿇어라. 고문으로 고통당한 이들의 아픔을 네 곱절로 갚기 전까지 너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믿음의 후손도 아니다. 예수를 팔아서 챙긴 재산이 있거든 반이라도 나누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줘라. 그렇지 않고는 예수의 구원이란 너희에겐 없다.

김근태 고문의 쾌유를 기도하며, 이근안과 한국기독교에 예수의 음성을 전한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마태복음 5: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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