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대학가 학생회 선거를 바라보며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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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인(moonhaein)등록 2011.11.24 10:06
전국 대학들이 학생회 선거로 시끌시끌하다. 올해는 유난히 학생회 선거 관련 이슈도 많다. 올해 반값등록금 투쟁을 주도해왔던 한국대학생연합은 전국 대학에서 반값등록금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50여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를 중심으로 '반값등록금 공동선본'을 구성했다.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에 힘입어 서울시립대에서 실현된 반값등록금을 더 많은 대학에서도 이뤄내려는 움직임이다.

반값등록금, 학과통폐합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 총학생회 공약으로 논의돼

한편, 이른바 '비운동권'을 표방했던 전 총학생회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이들 선본에 선거시행세칙을 무리하게 적용해 논란이다. 국민대 '99%의 역습' 선본과 동의대 '두근두근 체인지' 선본은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당 대학의 선관위로부터 경고가 누적돼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다.

중앙대에서는 선본과 학교 사이의 대립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다. 중앙대 '진짜대학' 선본은 2010년 이후 이뤄진 인문계열학과 등 비인기학과 통폐합의 문제점을 논의하기 위해 중앙대 내 잔디밭에서 원탁회의를 개최했다가 학내 학생상벌위원회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이처럼 반값등록금이나 학과통폐합 등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들이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선본들의 공약으로 내세워지면서, 대학가는 다시금 논쟁과 토론으로 뜨겁다. 어느 선본이 당선되느냐 이전에 각 선본들이 내세운 공약을 살펴보면 현재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총학생회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기도 하다.

연세대 일부 선본, 기업의 논리로 학생의 기본권 접근해 논란 빚어

연세대 중앙도서관에 걸린 총학생회/총여학생회 출마 선본들의 현수막. ⓒ 문해인


내가 다니는 연세대도 22일부터 24일까지 24대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 투표기간이다. 올해 반값등록금 논의가 뜨거웠던 만큼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네 선본 모두가 등록금 관련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본들이 대출·분납제도 개선, 장학금 확충,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등 등록금 자체의 인하보다는 높은 등록금의 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는 부차적인 보완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이미 진행되고 있는 반값등록금 논의를 한 걸음 뒤로 퇴보시키는 발상이다.

주거나 식사와 같은 학생들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들을 기업의 논리로 풀어내려고 해 논란을 빚고 있는 선본도 있다. 'Focus ON' 선본은 교내 기숙사 부족 문제에 '가좌역 철도부지 복개사업과의 연계', 교내식당의 높은 밥값 문제에는 '선불카드 도입을 통한 할인제도'라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에 학교의 외부 투자/투기를 합리화하고 학생사회의 문제를 기업의 논리로 푼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해당 선본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답했다.

해당 선본의 학내 청소노동자와의 연대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도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모든 선본들은 학내 비정규직 문제와 성평등 문제에 책임 있는 자세를 가질 것을 공동공약으로 약속했다. 지금까지 연세대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는 '연세대 비정규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소속되어 연세대 경비미화관리노동자 조합과 연대해왔다. 공대위는 학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학생 기구들의 협의체로, 올해 초 있었던 청소경비노동자 파업과 협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듯 공대위는 학내 청소노동자의 노동여건과 권리보장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협의체다.

하지만 지난 14일 발간된 1672호 <연세춘추>에서 'Focus ON' 선본은 "공대위에서 탈퇴할 생각"이라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비정규직 문제보다는 학생들의 문제가 우선순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공대위에 참여하여 학내 비정규직 사안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선본 공동공약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이다. 해당 선본은 이후 "공대위에서 탈퇴는 해도 비정규직 문제에는 참여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총학생회가 공대위에서 '탈퇴'한다는 것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맥 끊긴 여성주의 총여학생회로 학내 소수자 대변자 역할 사라져...

한편, 이번 연세대 선거에서 들리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바로 '여성주의' 논의이다. 작년에 오랜 기간 총여학생회를 이끌어 온 여성주의 계열 선본 'Questioning'을 제치고 '졸업앨범 메이크업·헤어 제휴 서비스' 등 여학생 복지공약과 양성평등을 전면에 내건 '연세好' 선본이 당선되면서 여성주의 계열 총여학생회의 맥이 끊긴 탓이다. 최근 우석대의 한 선본이 '성형수술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어 학내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듯, 작년에도 '연세好' 선본의 '졸업앨범 메이크업·헤어 제휴 서비스' 공약은 학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연세好' 선본은 올해에도 여전히 여성주의보다는 여학생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여성주의,' 참 애매한 단어이다. 여성 중심으로 생각하자는 주의인 건지, 그렇다면 역으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3년을 지켜본 여성주의는 청소노동자,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 학내에서 가장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였다. 실제로 이전의 총여학생회는 학내 청소노동자, 장애인, 성적 소수자 문제에서 학내 어떤 학생 기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여성'만을 대변했다기보다는 '학내 소수자' 전체를 대변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그리고 '여성의 복지'만을 주창하는 '연세好' 선본은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대변했던 학내 여성주의를 남녀의 문제로 축소시켰다. 더불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소외되는 성적 소수자는 논의에서 배제시켜 오히려 전근대적인 여성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학생회, 학생 복지센터 아닌 사회적 책임 인지하는 학생들 대표기구 되어야...

연세대 정문에 걸린 총학생회/총여학생회 출마 선본들의 공약 포스터. ⓒ 문해인


반면 선본들이 제시하는 공약들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17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장애학생인권동아리 '게르니카'는 학생회에 장애관련 정책 전담국장 배정과 신입생 입학식 혹은 새내기배움터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 관련 오리엔테이션 진행을 골자로 하는 공동공약을 선본들에게 제안했다. 이는 선본들의 공약을 넘어 학생사회 아래로부터 공약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24일이면 학생회 투표가 종료된다. 사실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사그라진 요즘, 학생회 논의가 이는 시기도 1년 중 선거가 있는 11월 한 달 뿐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현 사회적 상황에서 투표라는 방법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여 학생들을 대표하는 대학 총학생회/총여학생회의 역할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서 학생회마저 학생의 복지와 취업을 돕는 복지센터 혹은 취업센터가 되어야 할지, 아니면 학내의 조그만 목소리들을 키워주는 확성기, 나아가 진정한 교육권 실현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과 학생들 사이의 긍정적인 다리가 되어야 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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