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은 왜 강정마을에 갔을까?

[그들은 왜 연대하는가 ①]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제주 강정마을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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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amuseworld)등록 2011.11.04 17:12
지난 9월 30일 오전 7시40분. 따사로운 아침 햇살속으로 부산 김해국제공항을 출발한 에어부산 BX8101편이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늘 있는 비행기, 하지만 이 비행기에는 부당하게 정리해고를 당하고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 차해도 대표를 비롯한 조합원 8명이 타고 있었다. 복직투쟁을 하는 것도 힘든 이들이 '평화비행기'를 타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에 함께하기 위해 제주도에 온 것이었다.

제주 국제공항에서 이들과 만나 강정마을로 향하는 도중에 알게된 사실은 정투위 차해도(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대표를 제외한 7명의 조합원들이 제주도에 처음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강정마을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그들은 제주도의 자연풍경에  연신 감탄했다.

"와~, 억수로 공기 좋네~."
"이렇게 자연이 살아 숨쉬는곳에 무슨 해군기지가 들어온다는 말이고?"

강정마을에 도착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 박철순


인사도 잠시, 바로 연대투쟁에 돌입한 해고노동자들

강정마을에 도착하니 고권일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과 희망버스를 탔던 몇몇 활동가들, 그리고 전날 미리 도착을 했던 한진중공업 해고자 이용대 조합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웃으며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오전 11시 천주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해군기지사업단 정문 앞에 도착하는 순간 서귀포경찰서 소속 사복경찰들의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단체 방문이 극비리에 진행됐던터라 경찰들의 당황스러움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한편, 미사를 집전한 예수회 소속 이영찬 신부는 강론을 통해 "강정마을에 연대방문 온 해고노동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하루빨리 복직돼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투위 방문단은 오후에 진행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삼보일배 행진을 함께 했다. 그리고 강정마을에서 맞는 첫날 밤, 제육볶음과 제주 향토소주 '한라산' 한잔에 서로를 위로해주고, 강정마을에서 머무를 남은기간동안 열심히 하자는 눈빛을 보냈다.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을 생생히 중계했다. 그렇게 그들이 부르던 '희망'과 '평화'의 밤은 깊어갔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제주시 일대에서 진행된 삼보일배에 동참하고 있다. ⓒ 박철순


전국 각지에서 평화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도 놀랐던 그들의 방문

차해도 정투위 대표가 한 평화비행기 참가자와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있다. ⓒ 박철순

이튿날, 평화콘서트가 열렸다. 약 1천5백여 명이 해군기지를 반대하기위해 강정마을에 왔다. 이 날의 화제는 단연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마침 이날 부산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에게 제일 힘이 되고, 희망버스때 일명 '오뎅열사'를 만들었던 부경 아고라 회원들도 배를 타고 제주도에 왔으며, 개별적으로 아고라 회원들과 함께 제주에 내려온 윤석현 조합원까지 합류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평화콘서트에 참석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희망버스의 승객이었다. 제주도에서 재회한 그들의 만남은 하나의 행복이라고 평가하고 싶었다.

평화콘서트가 시작됐고, 각종 공연과 무대 발언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무대 위에 섰고, 최고참인 이용대 조합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저희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주시는 사랑에 연대하고자 왔는데 너무 늦게와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강정과 한진이 서로 힘을 합쳐 연대하여 서로 같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합니다"

이용대 조합원이 말할 때,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어느때보다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제주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민속보존회의 흥겨운 전통타령에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누가 누구랄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위로를 하며 둘째 날의 밤이 무르익어 갔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2차 평화콘서트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있다. ⓒ 박철순


한라산에서 희망의 '소금꽃'을 외치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 시각은 새벽 5시반, 한진 노동자들과 약속을 한 시각이었다. 한라산 등반을 해 등산객들에게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 문제를 알리고, 정상에서 함께 희망을 외치자는 것이었다.

사실 지난 8월 28일 서울에서 진행됐던 '4차 희망버스'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함께 인왕산에 등반하기로 하였다가 경찰의 제지를 당했던 일이 있었다. 그러기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자칫 경찰이 한라산 등반코스에 일일이 신분증 검사라도 한다면 경찰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상을 꼭 보러가기로 마음을 먹고 비교적 등반하기 쉬운 '영실'코스를 배제한 채 회의를 거듭하다가 '성판악'코스를 가기로 결정짓고 출발 하였다.

한라산의 매력을 많이 볼 수있는 성판악의 아침바람은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갈 정도로 상당히 매서웠다. 게다가 등산객들은 따뜻한 옷을 제대로 갖춰입고 올라가는 반면 한진 노동자들은 끝까지 파란색 작업복을 고집했다. 덕분에 알아봐주고 응원과 반가움의 인사를 해주시는 등산객들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약 3시간 뒤 한라산 정상에 다다랐다.

"한나라당은 한진중공업 국정조사 실시하라! 조남호를 처벌하고 정리해고 철회하라!"

정상에서 듣는이 없는 외로움 가득한 외침을 하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두 뺨을 스쳐간다. 이 희망의 바람이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산에서 하산해 강정마을로 향했다.

한라산 정상에 오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정리해고 철회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 박철순


부산으로 돌아가기 12시간 전, 경찰에 연행당하다

다음날 아침 부산으로 향하기 위해 저녁을 먹고 짐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급한 연락이 왔다.

"대학생들이 중덕삼거리의 펜스를 넘었는데 해군들이 폭력을 쓰고 있습니다!"

소식을 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급하게 갔으나 중덕삼거리로 가는 길목은 경찰에 의해 모두 차단됐고, 펜스를 넘은 대학생들도 모두 경찰에 연행돼 상황이 종료 된 상태였다.

이때 즈음 문제가 시작되었다. 중덕삼거리를 막고 있던 전경들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한 조합원의 발을 밟게 됐고, 이 문제로 인해 충돌을 빚어졌다. 경찰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끝날 수 있던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시끄러워지자, 네 명의 조합원을 연행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더 모이는 계기가 돼버렸다. 이때 밖으로 나가려는 경찰버스를 온 몸으로 막은 김상욱 조합원이 경찰을 향해 목청껏 외친다.

"우리는 한몸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연행하려면 우리도 연행해라!"

이러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연행자들을 태운 경찰버스는 강정포구 쪽 뒷길로 돌아서 서귀포경찰서로 향하였으며, 간단한 조사 후 제주 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입감이 되었다.

김상욱 조합원이 연행자들이 타고있을지도 모르는 경찰버스를 막아서고 있다. ⓒ 박철순


비행기 표 문제때문에 고심한 끝에 결정한 쓸쓸했던 귀경길

개천절 연휴때문인지 좀처럼 다음날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부산에서의 중요한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강정마을은 남아 있기로 한 이용대 조합원에게 맡기고 어쩔수 없이 아침 비행기로 부산으로 출발 하기로 했다.

"용대 행님, 미안합니다"
"괘안타. 여기는 신경말고 퍼뜩 올라가레이~."

김상욱 조합원의 축 처진 목소리가 이용대 조합원에게 전달된다. 어쩌면 같이 한솥밥을 먹은지 수 년이 넘은 사람들간의 우정의 연대가 이런데부터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행히 연행되었던 조합원들도 저녁에 풀려나 무사히 부산으로 출발했다.

네 명뿐이어서 쓸쓸했던 귀경길.. 하지만 이들은 다음날 부산 영도에서 재회하였다. ⓒ 박철순


어쩌면 그들도 85호 크레인에서 303일째 농성을 벌이고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처럼 한 그루의 '소금꽃나무'가 돼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강정마을에 왔을지도 모른다.

한진중공업과 강정마을의 아름다운 연대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그들은 왜 연대하는가 1 -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강정마을 연대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머물렀던 3박4일동안 현장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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