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있다? 없다 라는 유치한 질문

가장 현실적은 종교학

검토 완료

박연주(gotozoo3)등록 2011.10.23 15:22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논쟁이 된 화두 일 것이다. 유신론자들은 절대자인 신이 존재하며 그는 지구의 모든 것을 창조했고 설계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진화된 존재는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나중에 출현할 수 밖에 없으므로,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신은 망상이다." 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을 빌려 신이란 의지가 약한 자들 혹은 마음이 허한 자들이 의존하는 미신적 존재로 일갈했다. 즉, 무신론자들에게 신과 우상은 다를 바 없었다.

한국컴퓨터선교회(KCM)이 펴낸 '세계선교지도 2011년판' 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전 세계인구 (68억 5245만명) 중 무종교인은 13.66%이다. 만약 이를 연령층으로 분포해본다면 젊은 층의 무종교적 성향은 더욱 강할 것이다. 이미 무신론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흐름이 되어버린 지도 모른다. 무신론을 믿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신을 믿으라.", "신은 존재한다." 라는 일부의 외침은 조롱을 낳을 뿐이다. 특히 한국기독교의 높은 첨탑과 소망교회 등으로 불리는 일부 대형교회의 모순적 행동과 어이없는 그들의 정치의식은 한국 젊은이들로 하여금 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주 충분하다.

신에 대한 존재를 증명하고 혹은 존재를 부정하고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의미 없어진 세상에서 종교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알랭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종교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그것은 우리네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쉽게 비웃는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여러 가지 기능에서 종교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종교가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위한 반성을 시간을 가지지 않을 것이며 경외감이나 존경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기기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그것은 가장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주며 금욕이나 절제를 가르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상당히 유혹적이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상품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유혹당하지 않고 절제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종교는 이를 신에 대한 태도로 설명하며 지키도록 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라마단과 같은 종교행사는 신에 대한 경건함과 믿음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신론자들의 경우 이런 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또한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공동체를 부여한다. 개인화가 극심해져서 이제는 혼자인 게 당연하고 타인의 관심은 부담스럽기만 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미가 상실된 세상의 각박함에 질려서 인지 아니면 고독이 주는 자유는 사랑스러우나 외로움은 싫기 때문인지 공동체를 꿈꾼다. 종교는 이런 욕구를 해소해주기도 한다. 또한 예술이나 인생의 지혜를 전달해준다는 의미에서도 종교는 긍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가장 현실적으로 종교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건 혹은 존재하지 않건 그건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종교가 존재함으로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무신론자에게 이러한 종교적 장점들이 과연 필요 없는 것인가? 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우리는 책의 말미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신의 존재를 믿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사 종교가 없다고 할지라도 종교가 주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상 중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되돌아 볼 시간, 금욕과 절제를 위한 기간, 감사와 공경의 마음 등 무신론자들은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많은 장점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신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할 것인지 말이다. 그것이 무신론자들의 새로운 종교가 될 테니 신은 필요 없지만 우리에게 종교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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