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놀이

[칼럼] 영화 <도가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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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근(hgyang1024)등록 2011.10.13 19:30
나는 '전기놀이'를 좋아했다. 모꼬지를 가면 어김없이 친구들에게 전기놀이를 하자고 했다. 놀이방법은 간단하다. 방바닥에 여럿이 빙 둘러 앉는다. 손에 손을 잡고, 그 위에 이불을 넓게 덮는다. 그리고 술래를 정한다. 술래는 누가 전기를 보냈는지 알아맞히면 된다. 전기는 '시작!'하는 구령소리와 함께 아무나 보내면 된다. 전기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옆 사람의 손을 꾹 쥔다. 전기는 손과 손을 통해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고, 마지막에 술래에게 전해진다.

나는 '시작!'하는 소리와 함께 양쪽 손을 꾹 쥐었다. 양 옆으로 퍼진 전기는 옆 사람, 그 옆 사람, 그 다음 사람, 또 그 다음 사람으로 흘렀다. 마치 전구에 불이 '팟'하고 켜지듯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류가 흘렀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전도체가 된 것 같았다.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그 찌릿함.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눈빛과 손끝으로 전달되는 그 느낌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최근 그런 찌릿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였다. 누가 내 손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 온몸으로 퍼진 강한 전율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끌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절규, 그 전류가 온몸으로 퍼져 찌릿하게 에워쌌다. 영화 <도가니>를 봤다. 청각장애아들의 목소리는 손과 눈빛으로 전달됐다. 그들이 보낸 전류는 내 옆 사람, 그 옆 사람에게도 계속 퍼져나는 듯 했다.

감정의 전류가 통해서였을까. 인터넷에는 온통 <도가니> 얘기다. 울분을 참지 못한 '보통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큰 원을 그렸다. 하나의 전도체가 된 우리는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했다. '청소년 성범죄 공소시효'와 '장애인 성폭력 엄중 처벌'을 토론했다. 정치권에서는 '도가니 법'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그야말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힘이다. 집단지성, 1910년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곤충학자인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면서 만들어 낸 말이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뜻한다.

우리가 그런 힘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공통의 '찌릿함' 때문이 아닐까?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닿아 전류를 공유한 덕이다. 감정의 공유는 분산된 대중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하나 된 대중은 한 목소리를 낸다. 우리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우리가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도 듣지도 못해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 않던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낸 전류가 광화문의 촛불이 되어 광장을 밝혔던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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